성지행전 6 사마리아

성지행전 6 사마리아: 믿음의 눈으로 전망하라 

 

엘리사가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일 이맘때에 사마리아 성문에서 고운 밀가루 스아를 세겔로 매매하고 보리 스아를 세겔로 매매하리라 하셨느니라 [2] 때에 왕이 그의 손에 의지하는 장관이 하나님의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하늘에 창을 내신들 어찌 이런 일이 있으리요 하더라 엘리사가 이르되 네가 눈으로 보리라 그러나 그것을 먹지는 못하리라 하니라” (왕하 7:1-2)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의 미래를 알고 싶어한다. 학생들은 내가 이 다음에 뭐가 될지 궁금해 한다. 아직 결혼 안 한 사람들은 내가 누구와 결혼해서 살지 궁금해 한다. 직장에 몸 담고 있는 사람들은 내가 일하는 기업의 전망이 어떨지 궁금해 한다. 5년 뒤, 10년 뒤 나는 어떤 직위에 오를지도 궁금해 한다. 미래를 예측하기 위해 사람들은 점쟁이를 찾아 가기도 한다. 예언의 은사가 있는 분들에게 내 미래가 어떨지 기도를 받기도 한다. 경제전문가, 미래 전문가가 내놓는 미래 예측들을 참고하기도 한다.

미래를 어떻게 전망하느냐의 차이는 그 사람의 운명을 결정한다. 오늘 우리는 엘리사 시대에 사마리아에서 있었던 한 역사의 사건을 살펴보고자 한다. 현실의 위기를 어떻게 평가하고 미래를 어떻게 전망하느냐에 따라 운명이 갈리는 사건을 볼 수 있다. 함께 살펴보며 우리의 미래를 전망하는 지혜를 얻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사마리아는 북이스라엘의 수도였다. 아합왕의 아버지 오므리가 왕이 된 후 수도로 정한 곳이었다. 오므리는 세멜이라는 사람에게 은 두 달란트를 주고 그 땅을 산다. 그리고 그 땅 주인이었던 세멜의 이름을 따라 그 땅을 사마리아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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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이스라엘의 수도 사마리아 (BC 885- BC722) 왕궁터

 

아합왕이 죽고 아들 여호람이 사마리아에서 왕이 된다. 오늘 본문에는 아람왕- 오늘날 시리아다-  벤하닷이 북이스라엘을 쳐들어 오는 상황이 나온다. 그는 군대를 이끌고 와서 사마리아 성을 에워싼다. 성 안에 식량이 떨어지면 항복할 것으로 예측한 것이다. 그가 예측한 대로 성 안에서는 먹을 것이 없어 난리가 난다. 왕하 6:25, “아람 사람이 사마리아를 에워싸므로 성중이 크게 주려서 나귀 머리 하나에 팔십 세겔이요 비둘기 사분의 갑에 다섯 세겔이라 하니   부정한 짐승이라 사람들이 먹지 않았던 나귀 머리도 은 80세겔에 팔린다. 당시 은 1 세겔이 노동자 한 달 월급이었으니까 거의 6년 6개월치 월급에 해당하는 액수다. 비둘기 똥도 팔린다. 사분의 1갑은 0.25리터인데, 이것이 은 다섯 세겔에 팔렸으니 5개월 월급에 해당하는 액수였다. 엄청난 인플레이션이 발생한 것이다. 상황이 안 좋아지자 더 엄청난 일이 발생한다.

26-29절을 보자. 왕하 6:26-29, “이스라엘 왕이 위로 지나갈 때에 여인이 외쳐 이르되 나의 왕이여 도우소서 [27] 왕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를 돕지 아니하시면 내가 무엇으로 너를 도우랴 타작 마당으로 말미암아 하겠느냐 포도주 틀로 말미암아 하겠느냐 하니라 [28] 이르되 무슨 일이냐 하니 여인이 대답하되 여인이 내게 이르기를 아들을 내놓아라 우리가 오늘 먹고 내일은 아들을 먹자 하매 [29] 우리가 드디어 아들을 삶아 먹었더니 이튿날에 내가 여인에게 이르되 아들을 내놓아라 우리가 먹으리라 하나 그가 그의 아들을 숨겼나이다 하는지라먹을 것이 없자 어린 자녀를 잡아 먹는 끔찍한 일이 발생한 것이다.

신명기의 저주언약이 성취된 것이다. 28:53, “네가 적군에게 에워싸이고 맹렬한 공격을 받아 곤란을 당하므로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자녀 몸의 소생의 살을 먹을 것이라이것은 이스라엘이 풍족한 가운데 전심으로 여호와를 찾지 않고 우상을 섬긴 결과 받게 된 저주였다. 신명기서에서 이미 경고한 일이 일어난 것이다. 이쯤 되면 왕은 상황의 심각성에 반응해야 했다. 자신을 비롯하여 온 백성이 여호와 신앙으로 돌이키도록 전심으로 회개해야 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의 반응을 보자. 왕하 6:30, “왕이 여인의 말을 듣고 자기 옷을 찢으니라 그가 위로 지나갈 때에 백성이 본즉 그의 속살에 굵은 베를 입었더라 베옷은 회개를 상징한다. 그는 속에 베옷을 입고 있었지만 겉에는 여전히 왕의 옷을 입고 있었다. 그는 찢어진 옷 사이로 베옷을 보일 정도가 아니라 온 백성과 함께 베옷을 입고 회개해야 했다. 도와달라고 요청한 여인에게 여호람왕이 한 말을 다시 보자. 27, “왕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를 돕지 아니하시면 내가 무엇으로 너를 도우랴 타작 마당으로 말미암아 하겠느냐 포도주 틀로 말미암아 하겠느냐 하니라이것은 결코 신앙적인 말이 아니다. 왕으로서 자신이 책임을 지지 않고 하나님께 모든 책임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가 어떤 왕이었는지 성경역사의 평가를 보자. 왕하 3:1-3, “유다의 여호사밧 열여덟째 해에 아합의 아들 여호람이 사마리아에서 이스라엘을 열두 동안 다스리니라 [2] 그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으나 그의 부모와 같이 하지는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가 그의 아버지가 만든 바알의 주상을 없이하였음이라 [3] 그러나 그가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이스라엘에게 범하게 죄를 따라 행하고 떠나지 아니하였더라그는 아합의 아들, 즉 이세벨의 아들이었다. 비록 바알의 주상을 없애긴 했지만 북이스라엘의 뿌리깊은 우상숭배의 죄 가운데 있었던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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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합왕의 상아궁터

 

그는 위기상황에서 하나님께만 책임전가를 한 게 아니었다. 당시 선지자였던 엘리사에게도 책임전가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 왕하 6:31, “왕이 이르되 사밧의 아들 엘리사의 머리가 오늘 몸에 붙어 있으면 하나님이 내게 위에 벌을 내리실지로다 하니라왜 위기에 대한 책임을 엘리사에게 돌리며 그를 죽이려 한 것일까?

엘리사가 누군지 살펴보자. 사실 엘리사는 위기 때마다 여호람왕을 도왔던 사람이다. 왕하 6:8-10절을 보자. “ 때에 아람 왕이 이스라엘과 더불어 싸우며 그의 신복들과 의논하여 이르기를 우리가 아무데 아무데 진을 치리라 하였더니 [9] 하나님의 사람이 이스라엘 왕에게 보내 이르되 왕은 삼가 아무 곳으로 지나가지 마소서 아람 사람이 곳으로 나오나이다 하는지라 [10] 이스라엘 왕이 하나님의 사람이 자기에게 말하여 경계한 곳으로 사람을 보내 방비하기가 한두 번이 아닌지라

엘리사에겐 예지의 능력이 있었다. 그래서 아람의 군대가 습격해 올 때마다 미리 알고 왕에게 알려 위기를 넘기도록 도왔던 것이다. 그리하여 여호람왕은 엘리사를 “내 아버지여”라고 부를 정도로 엘리사를 따랐다. 그런데 이번 위기 때에는 엘리사가 침묵하고 있자 그것이 불만이었던 것이다.

엘리사는 과부의 기름그릇에 기름이 불어나게 하는 기적도 행했던 사람이었다. 보리떡 20개로 백명이 먹고 남게 하는 기적도 행한 사람이었다. 이런 전력이라면 성 안에 먹을 것이 없을 때 또 다른 기적을 행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 그가 잠잠하자 여호람왕은 심기가 불편해진 것이다. 그는 현실의 위기에 대한 책임을 엘리사에게 돌리고 실제로 그의 목을 베려고 사람을 보낸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엘리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한다. 7:1, “엘리사가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일 이맘때에 사마리아 성문에서 고운 밀가루 스아를 세겔로 매매하고 보리 스아를 세겔로 매매하리라 하셨느니라물가가 정상으로 돌아 온다는 예언이었다. 어떤 근거에서 하는 말인지 주변 사람들은 믿기 힘들었다. 그래서 여호람왕이 의지하는 한 장관이 응답한다. 2, “여호와께서 하늘에 창을 내신들 어찌 이런 일이 있으리요이 사람은 왕이 총애하는 사람이었다. 재무부장관 정도 되는 사람으로 나름 경제통이었던 것 같다. 그는 자신이 현실을 볼 때 ‘하나님이 하늘에 창을 내신들’ 지금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부정적인 전망은 겉으로 보이는 상황에만 초점을 두기 때문에 최악의 상황만을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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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 30년 헤롯대왕은 사마리아를 재건하고 도시 이름을 세바스테로 하여 아우구스투스에게 헌정한다. 

BC 27년 로마의 원로원이 로마 초대황제 옥타비아누스에게 Augustus (“존엄한 자”)라는 칭호를 주었을 때 발빠르게 도시를 재건하여 황제에게 충성하는 의미로 도시 이름을 지은 것이다. 

라틴어로 아우구스투스는 헬라어로 세바스토스이다. 

 

상황이 어려울수록 우리는 현실을 기준으로 미래를 전망하는 것을 멈춰야 한다. 현실이 어려울수록 우리는 우리의 판단을 내려 놓고, 하나님의 전망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엘리사는 이 전망을 얻기 위해 개인적으로 기도했을 것이다. 또한 자신을 찾아온 장로들과 함께 의논하며 하나님의 전망을 구하였을 것이다. 엘리사는 확신가운데 부정적인 전망을 내 놓은 그 장관에게 말한다. 2, “네가 눈으로 보리라 그러나 그것을 먹지는 못하리라 하니라곡식 가격이 내려가는 것을 보지만, 그것을 먹기 전에 밥숟갈 내려놓게 된다는 말이다. 그런데 엘리사의 말대로 그 일이 이뤄진다. 왕하 7:16-17, “백성들이 나가서 아람 사람의 진영을 노략한지라 이에 고운 밀가루 스아에 세겔이 되고 보리 스아가 세겔이 되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이 되었고 [17] 왕이 그의 손에 의지하였던 그의 장관을 세워 성문을 지키게 하였더니 백성이 성문에서 그를 밟으매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죽었으니 왕이 내려왔을 때에 그가 말한 대로라장관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카운트하지 않았다. 그의 현실 판단은 당연히 옳았을 것이다. 문제는 믿음의 눈으로 전망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불신앙의 댓가는 컸다. 그는 위기를 넘어 전진하는 하나님나라에 참여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당시 상황은 이스라엘이 굶어 죽을 위험 때문에 백기를 들고 항복할 것이 뻔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개입하신 것이다. 왕하 7:6-7, “이는 주께서 아람 군대로 병거 소리와 소리와 군대의 소리를 듣게 하셨으므로 아람 사람이 서로 말하기를 이스라엘 왕이 우리를 치려 하여 사람의 왕들과 애굽 왕들에게 값을 주고 그들을 우리에게 오게 하였다 하고 [7] 해질 무렵에 일어나서 도망하되 장막과 말과 나귀를 버리고 진영을 그대로 두고 목숨을 위하여 도망하였음이라아람 군대가 도망하면서 이스라엘의 위기는 끝난다. 하나님께서 하늘에 창을 내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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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바스테의 아우구스투스 신전터

 

인생을 살면서 우리는 모두 위기 상황을 지나갈 때가 있다. 학업의 위기, 회사의 위기, 가정의 위기, 공동체의 위기를 맞이 하게 된다. 위기 속에서 엘리사는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라고 선포했다. 우리 역시 위기 속에서 여호와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여호람왕처럼 “어찌 더 여호와를 기다리리요”라고 반응해선 안 된다. 한 장관처럼 “여호와께서 하늘에 창을 내신들” 상황은 변하지 않는다고 단정해선 안된다. 우리는 기도하며 믿음으로 하나님이 하실 일들을 전망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하늘에 창을 내시는 분이다. 우리는 현상을 보되 그 현상 너머로 움직이고 있는 하나님 나라의 질서를 보아야 한다. 문제와 위기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숨겨져 있다. 위기는 고통스러운 것 같으나  거기엔 하나님의 사랑과 소망이 담겨져 있는 것이다

그래서 위기는 단지 현상에 불과하다. 그 위기 속에 담겨져 있는 하나님의 뜻이 본질이다. 이 본질을 붙들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나의 잘못과 죄악이 무엇인지 돌아보며 그것을 발견해 내야 한다. 거기서 돌이키며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를 구해야 한다. 또한 마음에 불편, 원망, 책임전가를 버려야 한다. 위기상황 속에서 사람들은 희생양을 찾으려는 못된 습성이 있다. ‘내가 위기에 처한 것은 이 사람 때문이야..’ 그래서 그 사람을 보내버리려 한다. 그 사람을 보낼 처지가 못되면 자기가 떠나려고 한다.  그런데 가만 보면 관계가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매 사건, 만나게 하신 모든 사람들 속에서 하나님의 계획이 있음을 신뢰해야 한다. 그리고 그 관계를 끝내면서 문제를 해결하기 보다 관계 안에서 함께 위기를 극복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바라기는 여러분의 현실 속에서 위기를 만날 때, 기도하며 하나님이 여시는 창을 보게 되길 바란다. 위기의 현실 속에서도 믿음의 눈으로 전망하며 여러분이 당한 위기를 통과하는 모두가 되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텔아비브 욥바교회 샤밧설교 2014년 11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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