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라포션 5 장자권

이번 주 토라포션: 창25:19-28:9 /말1:1-2:7 /눅3:1-18

토라포션 5 장자권  

아이들이 장성하매 에서는 익숙한 사냥꾼이었으므로 들사람이 되고 야곱은 조용한 사람이었으므로 장막에 거주하니 이삭은 에서가 사냥한 고기를 좋아하므로 그를 사랑하고 리브가는 야곱을 사랑하였더라 야곱이 죽을 쑤었더니 에서가 들에서 돌아와서 심히 피곤하여 야곱에게 이르되 내가 피곤하니 붉은 것을 내가 먹게 하라 한지라 그러므로 에서의 별명은 에돔이더라 야곱이 이르되 형의 장자의 명분을 오늘 내게 팔라 에서가 이르되 내가 죽게 되었으니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리요 야곱이 이르되 오늘 내게 맹세하라 에서가 맹세하고 장자의 명분을 야곱에게 판지라 야곱이 떡과 팥죽을 에서에게 주매 에서가 먹으며 마시고 일어나 갔으니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김이었더라” ( 25:27-34)

 

나는 2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그런데 형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나는 중학교 1학년 때 장남, 그것도 2대 독자가 되었다. 갑자기 인생이 무거워졌다. 형의 몫까지 살아야한다는 책임감이 누가 말하지도 않았는데 내 어깨에 얹혔다. 짐을 들어도 남들보다 두 배를 들었던 것 같다. 일을 잘하다보니 교회에서 임원을 도맡아 했고 지금 교회의 일꾼인 목사가 되었다.

이번 주 토라포션은 히브리어로 톨돗, ‘세대들’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한 세대는 아들을 통해 이어진다. 오늘은 하나님의 언약이 세대를 통해, 특히 장자들을 통해 어떻게 이어지는지 살펴보며 은혜를 나누고자 한다.

t3

홍수 심판 이후 하나님은 구원 역사를 새로 시작하셔야 했다. 그래서 찾은 사람이 셈의 후손 중 아브라함이었다. 하나님은 그에게 언약을 주신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겠다. 가나안 온 땅을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겠다’는 약속이었다. 씨와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는 것이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그 축복에는 목적이 있었다.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는 약속이었다. 이것은 아브라함과 그 후손들이 열방에 복이 되는 제사장 역할을 한다는 내용이다. 이 하나님의 언약은 아브라함의 장자 이스마엘에게 이어지지 않고 이삭에게 이어진다. 그리고 이어서 이삭의 장자 에서가 아니라 야곱에 의해 이어지게 된다. 하나님의 언약이 단순히 육신의 장자가 아니라 장자권을 가진 자를 통해서 이어진 것을 알 수 있다.

이삭은 40세에 결혼해서 20년 동안 아이가 없었다. 아내가 임신하지 못하자 이삭이 하나님께 간구한다. 그러자 하나님은 그의 간구를 들으시고 그의 아내 리브가가 임신하게 하신다. 하나가 아닌 쌍둥이다. 창 25:22, 그 아들들이 그의 태 속에서 서로 싸우는지라 그가 이르되 이럴 경우에는 내가 어찌할꼬 하고 가서 여호와께 묻자온대 여기서 그는 누구일까? 이삭이 아니다. 리브가다. 영어성경, 히브리성경에는 분명 그녀로 나온다. 물론 남자들도 기도생활을 한다. 그런데 보통 여자들이 더 세밀한 기도를 하는 것 같다. 태 속에서부터 두 놈들이 싸우는데,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내가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구한 것이다. 즉 하나님의 의도와 방향제시를 구하는 기도를 리브가가 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리브가의 질문에 응답해 주신다.

창 25:23,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더라

리브가는 결국 기도를 통해 자녀들을 향한 하나님의 데스티니를 듣게 된다. 리브가가 이 사실을 이삭과 나누었을까? 이삭이 장남인 에서를 더 좋아했던 걸 보면 그런 것 같지가 않다.

하나님의 계획을 들은 리브가는 아무래도 야곱에게 더 마음이 기울었다. 자, 친할아버지인 아브라함은 이 때 연세가 어떻게 되었을까? 100세에 이삭을 낳고 이삭이 60세에 아들을 낳았으니 160세였다. 아브라함은 에서와 야곱 중 누구를 더 좋아했을까? 구약성경에는 나오지 않지만 희년서에는 아브라함이 야곱을 사랑했다고 나온다.

희년서 19:4, 아브라함은 에서의 행동들을 보았다. 그리고 그는 그의 이름과 후손을 야곱 안에 두어야 함을 알았다. 그리고 그는 리브가를 불러 야곱에 관한 명령을 주었다. 왜냐하면 그녀가 에서보다도 야곱을 사랑하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야곱이 5살 때 리브가와 야곱을 불러 말한다.

희년서 19:5, 내 딸아, 나의 아들 야곱을 보살펴라. 왜냐하면 인간 자손들가운데 복을 위하여, 또한 셈의 모든 후손의 영광을 위하여 그가 나를 대신하여 땅 위에 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야곱도 어린 나이였지만 이러한 믿음의 계보에 대해 흘려 듣지 않았을 것이다.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집착 때문이었을까? 야곱은 에서가 사냥 후 그가 피곤한 틈을 노려 팥죽 한 그릇에 장자권을 팔라고 한다.

창 25:32-33, 에서가 이르되 내가 죽게 되었으니 이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리요 야곱이 이르되 오늘 내게 맹세하라 에서가 맹세하고 장자의 명분을 야곱에게 판지라 에서가 판 장자권은 무엇일까?

t4

장자권은 히브리어로 ‘베코라’다. ‘태를 열다’라는 동사에서 나온 말이다. 어미의 첫 태를 연 자가 가지는 특권을 말한다. 장자의 특권은 무엇인가? 다른 형제에 비해 두 배의 재산을 상속받는다. 그리고 가정을 다스리는 아버지의 권위를 이어 받는다. 그런데 아브라함과 이삭의 뒤를 잇는 장자에게는 또 하나의 특권이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언약이다. 하나님은 인류 구원 역사를 시작하시면서 그의 영광을 나타낼 자를 찾다가 아브라함을 찾아 선택하셨다. 그리고 아브라함에게 복 주실 것을 약속하셨다. 후손과 땅에 관한 것이었다. 가나안 땅을 주고 자손이 많게 하여 열방에 복이 되게 하겠다는 약속이었다. 에서는 그 언약적 축복을 가볍게 여긴 것이다. 그는 지금 당장 먹을 것이 더 중요했다. 그래서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긴 것이다.

아버지 이삭의 임종을 앞두고 야곱은 장자를 위한 축복까지 확실히 가로챈다. 이 일은 어머니 리브가에 의해 주도된 일이었다. 에서는 들에 나가고 엄마가 망보는 사이 야곱이 속여서 장자의 축복을 받아버린 것이다. 이삭이 축복한 내용을 보자.

창 27:28-29, 하나님은 하늘의 이슬과 땅의 기름짐이며 풍성한 곡식과 포도주를 네게 주시기를 원하노라 만민이 너를 섬기고 열국이 네게 굴복하리니 네가 형제들의 주가 되고 네 어머니의 아들들이 네게 굴복하며 너를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고 너를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기를 원하노라

이 축복대로 야곱은 12 아들을 낳는다. 그리고 애굽의 비옥한 곳에서 430년 동안  200만이 넘는 민족으로 인큐베이팅된다. 그리고 하나님의 약속대로 가나안 땅에 돌아와 제사장 나라가 된다.

출 4:22, 이스라엘은 내 아들 내 장자라

출 19:5-6,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6]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이 하나님의 언약적 축복은 야곱의 장자인 르우벤을 통해 이어지지 못했다. 그가 아버지의 첩 빌하와 통간함으로 장자권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그 대신 장자권은 대신 형제들을 먹여 살렸던 요셉에게 돌아갔다.

대상 5:1-2, 이스라엘의 장자 르우벤의 아들들은 이러하니라 (르우벤은 장자라도 그의 아버지의 침상을 더럽혔으므로 장자의 명분이 이스라엘의 아들 요셉의 자손에게로 돌아가서 족보에 장자의 명분대로 기록되지 못하였느니라 유다는 형제보다 뛰어나고 주권자가 유다에게서 났으나 장자의 명분은 요셉에게 있으니라

야곱은 임종 전에 요셉의 아들들을 축복한다. 요셉은 장남인 므낫세를 아버지의 오른손쪽으로 향하게 하고, 차남인 에브라임을 아버지의 왼손쪽으로 향하게 한다. 그런데 야곱이 손을 엇바꾸어 얹게 된다. 요셉이 교정하려 들자 야곱은 “나도 안다 내 아들아 나도 안다”라고 말한다. 야곱은 하나님의 언약적 축복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안 것이다. 결과적으로 가나안 땅에서는 에브라임 지파가 장자 역할을 한다. 성막이 에브라임 지파 땅인 실로에 있었고 에브라임 지파의 여호수아가 리더십을 발휘한다.

그러나 에브라임 지파로 대표되는 북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언약에 충성하지 못하고 바알 숭배에 빠짐으로 멸망하고 만다. 장자의 명분보다 풍요롭게 먹고 사는 문제에 더 가치를 두었던 결과였다. 북이스라엘 멸망 후 장자권은 유다지파를 통해 이어진다. 그러나 유다지파 역시 하나님의 언약에 충성되지 못하여 멸망 당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장자로 부름받아 제사장 나라의 역할을 해야 했다. 그러나 장자로 살지 못하고 바알에게 그 장자의 명분을 팔아버린다. 그 결과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것이다. 포로로 끌려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게서는 회복의 비전을 주신다.

렘 31:33,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나님의 법이 마음에 기록되는 백성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 일이 언제 이루어지는가? 예수님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눅 22:20, 저녁 먹은 후에 잔도 그와 같이 하여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예수님의 피가 부어짐으로 새 언약 백성이 되는 길이 열렸다. 유대인들 중에 제자들이 일어났고 이들을 통해 삼천명, 오천명 구원받는 역사들이 일어났다.

히 1:2-3,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또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언약을 이어갈 만유의 상속자로 예수님을 보내신 것이다.

롬 8: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은 당신의 언약을 이어갈 장자로 당신의 아들 예수님을 세우신 것이다.

예수님을 통해 새로운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하나님의 언약적 축복을 이어가는 세대들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예수님의 천국 복음이 전해졌을 때 유대인들이 오해한 것이 있었다. 자신들이 장자라는 것이다. 자신들이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적 축복이 당연히 자신들의 몫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바울은 변론한다.

롬 9:6-8, 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요 또한 아브라함의 씨가 다 그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이삭으로부터 난 자라야 네 씨라 불리리라 하셨으니 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요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

육신의 장자인 유대인들이 당연히 하나님의 언약적 축복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유대인이었던 에서도 하나님의 언약적 축복에서 제외되었다. 오직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따른 자만이 하나님의 언약적 축복을 받는 것이다. 그것은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차별이 없는 것이다. 즉 첫째라고 장자권을 얻는 것이 아니다. 장자권에 주목하는 자가 얻는다. 유대인이라고 자동적으로 장자권을 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 그 부르심에 주목한 자만이 장자권을 얻는 것이다.

롬 10:12-13,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분이신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아브라함의 혈통적 자녀만이 아니라 이방인인 우리도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는 언약의 자녀가 된 것이다. 

요 1:9-12,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서도 에서처럼 그 권세를 사용하지 못하고 살아간다. 히 12:16은 말한다. 음행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음식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없도록 살피라 르우벤은 음욕 때문에 장자의 명분을 상실했다. 에서는 당장의 배고픔 때문에 장자의 명분을 팔았다. 우리는 우리의 욕심에 이끌려 하나님의 부르심과 상관없이 살 수 있다. 영적인 것에는 관심 없이 세상의 물질과 먹고 사는 것에만 정신 팔려 살아갈 수 있다. 자녀이면서도 하나님 자녀로서의 권세를 사용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언약을 이어가는 장자로 살지 못하는 것이다.

요 8:44,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예수님이 유대인들에게 한 말이다. 하나님 아버지가 이끄시는 삶을 살지 못하면 거짓 아비 마귀가 이끄는 삶을 살게 된다. 우리는 하나님의 장자 예수님을 본받아 하나님이 이끄시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럴 때 우리도 하나님의 언약을 이어가는 장자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장자로 우리는 무엇을 상속받는가?

롬 8:17,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영광과 고난을 상속받는 것이다. 베드로는 신약 백성들을 이렇게 정의한다.

벧전 2: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의 언약 백성들은 세상의 복이 되는 장자의 역할, 제사장의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가 이 땅에서 장자 노릇을 하게 하기 위해 그의 권세를 사용하라고 말씀하신다.

요 14:13-14,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마 28:18-20,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야곱의 손이 어긋나서 에브라임을 축복하여 그가 장자가 되었던 것처럼 이방인인 우리도 하나님의 축복의 손길이 어긋나 유대인이 아닌 우리가 하나님의 언약을 이어가는 장자가 되었다. 그러나 언약을 이었던 장자라도 그가 그 신분 자체에 안주하고 있을 때 그 장자의 사명을 다할 수 없었다.

한국 교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에 안주하면 안된다. 영적인 것과 하나님의 언약이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지 관심조차 없다면 언제 하나님의 축복의 손이 어긋나게 될지 모르는 일이다. 한국 교회인 우리는 이제 영적 장자로서의 권세를 회복하고 사용해야 한다. 우리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이어 내려온 하나님 언약의 상속자이기 때문이다.

나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이다. 왕같은 제사장이다.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이다. 만유의 상속자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의 권세를 가진 왕의 자녀들이다. 장자의 권세를 회복하여 이 땅에서 하나님의 복을 나누는 제사장으로 살아가게 되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텔아비브욥바교회 샤밧설교 2015년11월14일

토라포션 5 장자권”의 2개의 생각

  1. 박민영 답글

    샤밧 샬롬! 안녕하세요! 목사님 장자권에 대해서 찾아보다가 궁금한 점이 있어서 연락드립니다.

    야곱에서 왜 장자권이 에브라임으로 넘어간 건가요? 제가 알고 있는 메커니즘으로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아서 질문드립니다. 르우벤과 시므온 레위가 잘못을 했다면 바로 유다에게 넘어갔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왜 요셉의 막내 아들인 에브라임에게로 간 건가요?

    • telavivchurch33 글쓴이답글

      대상 5:1-2, “이스라엘의 장자 르우벤의 아들들은 이러하니라 (르우벤은 장자라도 그의 아버지의 침상을 더럽혔으므로 장자의 명분이 이스라엘의 아들 요셉의 자손에게로 돌아가서 족보에 장자의 명분대로 기록되지 못하였느니라 유다는 형제보다 뛰어나고 주권자가 유다에게서 났으나 장자의 명분은 요셉에게 있으니라”

      위의 말씀에 답이 있는 것 같습니다.

      유다는 야곱의 네번째 아들이었지만, 르우벤, 시므온, 레위의 실패로 법적으로 첫번째 순서가 되었습니다. 유다를 향한 야곱의 축복은 “다스리는 권위”에 강조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창 49:10, “규가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통치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이르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 이 야곱의 축복대로 예수님께서는 유다 지파의 후손으로 오셨습니다. 유다 지파에게는 다스리는 자의 권리가 계승이 되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한편, 야곱은 요셉의 아들인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자신의 아들로 삼으면서, 그들이 르우벤과 시므온처럼 자신의 것이 될 것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창 48:5, “내가 애굽으로 와서 네게 이르기 전에 애굽에서 네가 낳은 두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는 내 것이라 르우벤과 시므온처럼 내 것이 될 것이요”

      야곱은 또한 요셉을 이렇게 축복합니다.

      창 48:15-16, “그가 요셉을 위하여 축복하여 이르되 내 조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이 섬기던 하나님, 나의 출생으로부 터 지금까지 나를 기르신 하나님, 나를 모든 환난에서 건지신 여호와의 사자께서 이 아이들에게 복을 주시오며 이들로 내 이름과 내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의 이름으로 칭하게 하시오며 이들이 세상에서 번식되게 하시기를 원하나이다.”

      자신을 비롯한 조상의 이름들이 요셉과 그의 후손을 통하여 일컬어지며, 그들이 세상에서 번식하게 될 것을 구하고 있습니다. 이것으로 우리는 장자의 명분 자체는 요셉과 그의 후손 (야곱이 오른 손으로 축복한 에브라임)에게 돌아갔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박민영에게 댓글 남기기 댓글 취소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