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아비브 욥바교회 2024년 4월 6일 설교 이익환 목사
여호수아서 강해 8 진멸의 목적
“그들이 게셀에 거주하는 가나안 족속을 쫓아내지 아니하였으므로 가나안 족속이 오늘까지 에브라임 가운데에 거주하며 노역하는 종이 되니라” (수 16:10)
제로섬(zero sum)이란 말이 있다. 전체의 이익이 일정하기 때문에 한 쪽이 이득을 보면 다른 한 쪽은 그만큼 손해를 보게 되는 상태를 말한다. 가나안 정복 전쟁은 일종의 제로섬 게임이었다. 한 쪽이 100을 차지하면 다른 쪽은 100을 잃게 되어 득과 실의 총합이 제로가 되는 전쟁이었다. 오늘 본문에는 에브라임 지파가 땅을 분배 받는 장면이 나온다. 그런데 그들은 게셀에 거주하는 가나안 족속을 쫓아내지 않는다. 이것이 이스라엘 역사에 어떤 결과를 가져왔을까? 오늘 살펴보며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한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 있을 동안 그들을 먹여 살린 것은 요셉이었다. 야곱은 요셉의 두 아들을 자신의 아들로 삼았는데, 그 때 에브라임을 므낫세보다 앞세워 장자로서 축복을 한다. 그래서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 에브라임 지파는 12지파 가운데 장자 역할을 하게 된다. 가나안 정복을 이끈 여호수아도 에브라임 지파였다. 야곱은 요셉을 위하여 빌었던 축복기도에서 “위로 하늘의 복과 아래로 깊은 샘의 복”(창 49:25)을 구했다. 이 축복대로 에브라임과 므낫세 지파는 강우량이 많은 가장 비옥한 땅을 분배 받게 된다. 지도를 보면 에브라임 지파는 북쪽으로 므낫세 지파, 서쪽으로 단 지파, 남쪽으로 베냐민 지파 사이에 위치에 있다. 이스라엘의 가장 중심부이다. 에브라임 지파 땅의 주요 도시로는 먼저 길갈이 있다. 가나안 정복 전쟁 당시 여호수아의 헤드쿼터가 여기 있었다. 또한 실로가 있다. 하나님의 성막이 여기에 세워졌다. 하나님은 이 실로에 있는 성막을 통해 당신의 임재를 나타내셨다. 그래서 실로는 가나안 정착 이후 이스라엘의 정치적, 종교적 중심지가 되었다. 해마다 절기가 되면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 실로에 올라와 여호와의 절기를 지켰다. 또한 중요한 도시가 게셀이다. 오늘 우리가 집중해서 살펴볼 곳이다.
게셀은 해안길에 위치한 도시다. 동쪽으로는 예루살렘, 남쪽으로는 이집트, 북쪽으로는 다마스커스로 가는 교통의 요지였다. 그래서 게셀은 3000년 전 이집트인들에게도 잘 알려진 주요 도시였다. 성경은 여호수아가 이 도시를 정복했다고 나온다. 수 10:33, “그 때에 게셀 왕 호람이 라기스를 도우려고 올라오므로 여호수아가 그와 그의 백성을 쳐서 한 사람도 남기지 아니하였더라” 그런데 이후 또 다른 본문에는 에브라임 지파가 게셀에 거주하는 가나안 족속을 쫓아내지 아니하였”다고 나온다. 그들이 쫓아내지 못한 도시 게셀은 이스라엘이란 나라에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 궁금해졌다. 그래서 지난 주 아내와 게셀에 갔다. 텔에 올라가니 가장 먼저 가나안 시대 당시의 성문이 나타났다. 이곳으로 많은 상인들이 지나갔을 것이다. 물저장소도 있었다. 이 밑까지 가기 위해 175개의 계단을 내려가야 했다. 다음으로 솔로몬 시대의 6방형 성문도 볼 수 있었다. 솔로몬이 지은 국고성이 하솔과 므깃도에도 있는데, 거기에 있는 성문과 같은 형태로 지어진 것이다. 이 도시는 지정학적으로 중요했기 때문에 이처럼 높은 성벽과 튼튼한 성문으로 보호되야 했다. 다음으로 본 것은 열 개의 입석이다. 이것은 무슨 용도로 쓰인 물건이었을까? 안내판에는 이곳이 산당(high place)이라고 나와 있다. 그리고 여기 세워진 돌들은 게셀과 게셀이 동맹을 맺은 다른 9개의 도시 국가를 상징하는 것이라는 학자들의 견해가 있다고 밝힌다. 과연 이것이 사실일까?
그런데 게셀에는 현대의 고고학자들이 밝히기를 꺼려하는 사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1902년에서 1908년 사이 진행된 아일랜드 고고학자 맥칼리스터(Robert Alexander Stewart Macalister)의 발견이다. 그는 이곳에서 불에 탄 영아의 뼈가 담긴 항아리를 발견한다. 여러 개의 항아리가 산당 곳곳에서 발견되었다. 그리고 산당 주변에서는 아스다롯상과 몰렉을 상징하는 청동 뱀의 형상도 발견되었다. 이것은 아이를 불에 태워 바치는 몰렉 제사가 이곳에서 드려졌다는 강력한 증거였다. 자녀를 바치는 것은 가장 극단적인 우상숭배다. 부와 쾌락을 원하는 부모들의 욕망 때문에 극단적인 희생제사가 이곳에서 몰렉에게 드려졌던 것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이런 예언을 하셨다. 창 15:16, “네 자손은 사대 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가득 차지 아니함이니라 하시더니” 이 예언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으로 돌아올 때에는 이 땅에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가득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직전에 이런 경고의 말씀을 주셨다. 신 12:31, “네 하나님 여호와께는 네가 그와 같이 행하지 못할 것이라 그들은 여호와께서 꺼리시며 가증히 여기시는 일을 그들의 신들에게 행하여 심지어 자기들의 자녀를 불살라 그들의 신들에게 드렸느니라” 레 18:21, “너는 결단코 자녀를 몰렉에게 주어 불로 통과하게 함으로 네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가나안 민족은 이처럼 어린 자녀를 희생하는 제사가 있었다. 이것이 그들의 종교이자 문화이기 때문에 존중 받아야 할 풍속일까?그렇지 않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렇게 명하신다. 레 20:2,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또 이르라 그가 이스라엘 자손이든지 이스라엘에 거류하는 거류민이든지 그의 자식을 몰렉에게 주면 반드시 죽이되 그 지방 사람이 돌로 칠 것이요” 하나님은 이처럼 무고한 희생을 막기 위해 심판을 행하시는 정의의 하나님이시다. 그리고 그 정의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나온 것이다.
하나님은 이렇게 명령하셨다. 신 7:1-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인도하사 네가 가서 차지할 땅으로 들이시고 네 앞에서 여러 민족 헷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히위 족속과 여부스 족속 곧 너보다 많고 힘이 센 일곱 족속을 쫓아내실 때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게 넘겨 네게 치게 하시리니 그 때에 너는 그들을 진멸할 것이라” 여기서 진멸하라는 명령은 히브리어로 ‘하람(חרם)’이다. ‘봉헌하다’ ‘온전히 바치다’라는 뜻이 있다. 명사형은 헤렘이다. 악에 대한 완전한 파괴를 통해 더럽혀진 곳을 하나님께로 온전히 돌려놓는 것이 바로 성경이 말하는 ‘진멸 (헤렘)’의 의미다. 따라서 하나님이 명령하신 헤렘은 가나안 땅에 하나님 나라를 시작하기 위한 전쟁이었다. 그 땅의 100%를 하나님의 것으로 되돌리기 위한 전쟁이었고, 조금이라도 남아 있으면 100%가 될 수 없는 전쟁이었다. 이 가나안 정복 전쟁의 최고 명령은 ‘쫓아내라’는 것이다. 그보다 하위 명령은 ‘진멸하라’ ‘통혼하지 말라’ ‘조약을 맺지 말라’는 것이다. 왜 원주민들을 쫓아내야 할까?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원주민들과 결혼할 수 있고, 그 결과 그들이 하나님을 떠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렇게 명령하셨다. 신 7:2-4, “그들과 어떤 언약도 하지 말 것이요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도 말 것이며 또 그들과 혼인하지도 말지니 네 딸을 그들의 아들에게 주지 말 것이요 그들의 딸도 네 며느리로 삼지 말 것은 그가 네 아들을 유혹하여 그가 여호와를 떠나고 다른 신들을 섬기게 하므로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진노하사 갑자기 너희를 멸하실 것임이니라” 따라서 헤렘은 가나안 땅에서 신앙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한 명령인 것이다. 그것은 결국 적을 몰살하라는 명령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악을 진멸하여 나의 삶을 하나님께 100% 봉헌하라는 명령인 것이다.
자 그런데 에브라임 지파는 게셀에 있는 가나안 족속을 쫓아내지 않았다. 그들을 남겨 자신들을 위해 노역하는 종이 되게 했다. 게셀은 에브라임 지파의 전체 땅 중 5%도 안될 것이다. 그러나 이곳을 남긴 결과는 어떠했을까? 호세아 선지자는 에브라임을 이렇게 책망한다. 호 4:17-19, “에브라임이 우상과 연합하였으니 버려 두라 그들이 마시기를 다 하고는 이어서 음행하였으며 그들은 부끄러운 일을 좋아하느니라 바람이 그 날개로 그를 쌌나니 그들이 그 제물로 말미암아 부끄러운 일을 당하리라” 물론 여기서 에브라임은 북이스라엘 전체를 가리키는 말이다. 에브라임의 영향력이 컸기 때문에 에브라임은 북이스라엘 전체를 상징하는 말이 된 것이다. 결국 우상과 연합한 에브라임은 북이스라엘 전체에 영향을 미쳤고, 그 뿐 아니라 남유다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 결과 솔로몬 왕은 몰렉을 위해 산당을 짓는다. 아하스왕도 몰렉을 위한 제사를 드린다. 대하 28:1-3, “아하스가 왕위에 오를 때에 나이가 이십 세라…이스라엘 왕들의 길로 행하여 바알들의 우상을 부어 만들고 또 힌놈의 아들 골짜기에서 분향하고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 사람들의 가증한 일을 본받아 그의 자녀들을 불사르고” 므낫세 왕도 몰렉 제사를 드린다. 대하 33:1, 6, “므낫세가 왕위에 오를 때에 나이가 십이 세라… 힌놈의 아들 골짜기에서 그의 아들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며 또 점치며 사술과 요술을 행하며 신접한 자와 박수를 신임하여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많이 행하여 여호와를 진노하게 하였으며” 우상 숭배로 인한 하나님의 진노는 전체 이스라엘의 멸망으로 이어졌다. 에브라임 지파가 게셀에서 가나안 족속을 다 쫓아내지 않고 남겨 놓은 결과 결국 그들이 그 땅에서 쫓겨나는 비극을 경험하고 만 것이다.
인간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다. 성경에 기록된 최초의 전쟁은 뱀과 여자의 후손과의 싸움이다. 창 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이것은 사탄과 여자의 후손인 하나님의 백성들과의 싸움으로 전개되어 왔다. 이 싸움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바울은 그 싸움을 이렇게 규정한다. 엡 6: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바울은 성도들이 벌이는 싸움은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믿음의 자녀인 우리들은 지금 사탄의 세력과 영적 전쟁 중에 있는 것이다. 이것은 여호수아가 벌였던 진멸 전쟁과 성격이 같다. 죄의 세력을 진멸하지 않고 남기면 그것이 우리를 삼키게 되는 제로섬 게임인 것이다. 여기서 진멸의 대상은 하나님께 온전히 바쳐지지 않은 우리의 자아인 것이다. 하나님께 나의 전부를 드리지 않는 우리의 마음인 것이다. 결국 이 땅에서 우리가 벌이는 전쟁은 우리의 전부를 드리기 위한 전쟁인 것이다.
이 땅의 정사와 권세를 장악하고 있는 세상의 신들은 오늘도 사람들에게 성공과 부를 약속하며 전 존재를 건 희생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을 희생제물로 내어주셨다. 자녀를 내어주는 것은 전 존재를 걸고 하는 언약이다. 바울은 그 언약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롬 8: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고 복 주시기 위해 자신의 아들을 걸었다. 전부를 건 것이다. 그리고 그 아들을 통해 이 땅에서 벌어지는 영적 전쟁에 승리하는 길을 여셨다. 골 2:13-15, “또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 십자가는 하나님께 전부를 내어드린 순종을 의미하는 것이다. 사탄은 십자가에서 예수님의 발꿈치를 상하게 했지만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하나님께 순종함으로 그의 머리를 박살내셨다. 이 십자가로 이미 승리가 시작되었지만 우리에겐 아직 남아 있는 전쟁들이 있다. 우리는 이 전쟁을 다른 방법이 아닌 십자가로, 우리의 전부를 드리는 순종으로 승리해야 하는 것이다.
아담의 타락 이후 세상은 아직도 죄와 우상 숭배로 가득한 곳이다. 많은 사람들이 세상 신들에 절하며 자신의 육체의 소욕을 따라 살아가고 있다. 이곳에서 우리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 온전히 되돌려 바치는 헤렘 전쟁을 벌여야 한다. 세상 신과 그를 추종하는 세력들이 세워놓은 마귀의 진들을 무너뜨려야 한다. 그런데 그것은 결과적으로 남들을 죽이는 전쟁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죄를 진멸하는 전쟁이어야 한다. 죄와 싸우되 피 흘리기까지 싸워야 한다. 죄를 진멸하지 않으면 죄가 우리를 삼키기 때문이다. 가나안 땅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곳의 우상들을 제거하고 하나님을 예배할 때 거룩한 하나님의 나라가 되었다. 마찬가지로 이 세상은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가 죄와 우상을 진멸하고 하나님만 예배할 때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될 것이다. 타락 이전의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이 회복되는 아름다운 땅이 될 것이다. 진멸은 정복을 위한 것이 아니라 회복을 위한 것이다. 죽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살리기 위한 것이다. 바라기는 우리를 통하여 이 땅의 우상들이 무너지고 하나님 나라가 회복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안녕하세요, 샤밧날에 차가 없어 12km를 걸어서 욥바교회애 가서 예배를 드렸던 인천그리스도보혈교회에 나가는 이윤규입니다. 목사님의 하나님말씀에 감사드립니다.
네 여기서 다시 뵈어 반갑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