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복음서 강해 12 하나님의 일 Vs. 사람의 일

 텔아비브 욥바교회 2017년 1월 28일 설교 이익환 목사

사복음서 강해 12 하나님의  Vs. 사람의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 [22]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여 이르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23]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25]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마 16:21-25)

 

한국의 설날이다. 새해에 관한 시 한 편 읽어 드리겠다. 정연복 시인의 시다.

 

새해 아침에

 

인생은 더러 쓸쓸해도

참 아름다운 것

 

벌써 오십 년을

넘게 살고서도

 

새해를 맞이할 때마다

아직도 마음 한 구석

 

미묘한 떨림이

있는 것은

 

새로운 삶에 대한 희망이

꿈틀대기 때문

 

내가 보듬어야 할 가족들

내가 사랑해야 할 사람들 생각에

 

나도 모르게

두 손을 고이 모은다

 

공감이 되는 시다. 내 나이 딱 오십이 넘어서 그런 것 같다. 올 한 해 어려운 일들이 많이 예상되지만 내가 사랑해야 할 사람들을  생각하며 다시 소망을 품게 되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사복음서에는 이제 공생애의 마지막을 향해 방향 전환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그려진다. 이제 예수님에겐 그의 생애에서 1년 남짓의 시간만 남아있었다. 예수님에게 하루 하루가 얼마나 소중한 시간들이었을까? 이제 예수님의 시간표는 예루살렘과 거기서 당할 고난을 향해 맞춰지고 있었다. 그 내용들을 함께 살펴보며 은혜를 나누고자 한다.

지난 주 우리는 가이사랴빌립보에서 했던 베드로의 위대한 고백에 대해 살펴보았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란 고백이었다. 예수님은 그 고백을 듣고 흥분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제자들에게 경고하셨다. ‘자기가 그리스도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고 하셨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씀이 21절이다. 마 16:21,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신이 이제 예루살렘에 가면 고난 받고 죽임 당하고 다시 살아나야 할 것에 대해 처음으로 말씀하셨다.

제자들의 위대한 신앙고백이 있고난 후 예수님은 그들에게 내 교회를 세우겠다는 말씀을 하셨다. 제자들은 그 이후 예수님으로부터 더 희망적인 미래에 대해 듣기 원했을 것이다. 이제 그들은 예수님이 예루살렘이라는 중앙무대에 진출하셔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시고 메시아 왕국을 건설할 꿈에 부풀었는지 모른다. 그들은 노상에서 ‘누가 더 크냐’의 문제로 노상 다투었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에서도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님이 영광의 자리에 앉게 되면 자신들도 주님의 우편과 좌편에 앉게 해달라고 청탁했다. 넘버 투, 넘버 쓰리가 되게 해달라는 것이다. 그들은 어쩌면 그런 영광스러운 순간을 기대하며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를 쫒았던 것이다. 이런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내가 예루살렘에 가면 죽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기대에 가득찬 제자들에게 찬물을 뿌리는 상황이다.

이 때 제자들 중 넘버 원이었던 행동파 베드로가 나선다. 마 16:22,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여 이르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여기서 항변하다는 말은 헬라어로 ‘에피티마오’다. 이 말은 ‘꾸짖다, 엄히 따지다’라는 뜻이다. 예수님이 바다를 꾸짖고, 귀신을 꾸짖을 때 사용된 단어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옆으로 불러 따지듯 꾸짖은 것이다. 여기에는 물론 예수님에 대한 베드로의 애정이 담겨져 있다. 그러나 예수님이 죽으신다는 말씀에 그들은 미래에 대한 불안이 엄습해오고, 그동안 예수님을 따랐던 자신들은 뭐가 되나 하는 염려가 들었을 것이다.

이에 대한 예수님의 반응은 단호했다. 마 16:23,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바로 조금 전 자신의 신앙고백 때문에 칭찬을 받았던 베드로였다. 칭찬과 함께 천국의 열쇠를 약속받았던 그였다. 그런데 졸지에 사탄아 물러 가라는 꾸지람을 듣게 된다. 그의 생각 속에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는 사단의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그는 꾸지람을 듣게 된 것이다.

사단은 하나님의 일이 아닌 사람의 일을 하도록 부추긴다. 예수님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일은 무엇인가? 예루살렘에 올라 가는 것이었다. 거기서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삼일 만에 부활하는 것이었다. 그것이 온 인류의 구원을 위해 계획하신 하나님의 일이었던 것이다. 그러면 사람의 일은 무엇인가? 고난을 피하고 죽음을 피하는 것이었다.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죽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는 힘있는 메시아가 되는 것을 바라는 것이었다.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은 사람의 일을 생각했다. 이스라엘이 정치적으로 회복될 것만 꿈꿨다. 이런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고난 받고 죽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들이 믿고 따른 예수님은 그들의 관심사를 이루어주는 메시아가 되어야 했다. 그들은 예수님을 주님으로 따랐다기 보다는 예수님을 통해 자신들이 원하는 왕국을 기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예수님은 이 순간을 가르침의 기회로 삼으셨다. 마 16:24-25,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25]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제자도에 관한 말씀이다. 제자로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이 지불해야할 댓가에 대한 것이다. 그것은 자기 자신을 부인하는 것이다. 자신의 십자가를 지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을 위하여 자기 목숨까지 잃을 것을 각오하는 것이다. 너무도 혹독한 댓가지불이다. 예수님은 자신만이 아니라 자신을 따르는 자들도 자기 십자가를 져야한다고 가르치신 것이다.

그동안 오병이어와 수많은 기적을 통해 예수님이 메시아인 것이 드러났다. 제자들은 그러한 인식이 있었기에 ‘주는 그리스도시요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고백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고백 위에 교회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그러한 교회에게 먼저 요구된 것은 십자가였다. 세상 속에서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하는데는 핍박과 고난이 따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교회가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기 위해 반드시 통과해야 할 길이었던 것이다.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사람의 일을 버리고 하나님의 일을 선택하는 것이다. 사람의 일은 고난이 없는 영광을 구하는 것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삶이 아니라 먼저 나의 안전과 유익을 구하는 삶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당장 눈 앞에 보이는 사람을 두려워하며 그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사는 것이다. 한국교회가 신사 참배를 했던 것도 자기를 부인하지 못하고 사람의 일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은 실용주의와 합리주의로 가득한 세상에서 참 어울리지 않는 일이다. 그래서 요즘 교회도 세상을 닮아가는 것 같다. 점점 섬김과 희생이 사라지고 있다. 사람들은 섬김이 요구되는 교회보다 편안하게 신앙생활 할 수 있는 교회를 찾는다. 교회를 섬기더라도 더 쉽고 실용적인 방법으로 대신하려고 한다.

고난과 희생 없이 사람의 일을 통해 하나님 나라는 세워지지 않는다. 십자가 없이 하나님의 영광은 드러나지 않는다. 하나님의 일을 하고 싶지 않는 사람은 없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고 싶지 않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그것이 잘 안되는 이유는 자기 부인을 못하기 때문이다. 나의 관심사를 놓지 않으면서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고 하나님나라를 구할 수 없는 것이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에게 이렇게 편지했다. 빌 2:19-22, “내가 디모데를 속히 너희에게 보내기를 주 안에서 바람은 너희의 사정을 앎으로 안위를 받으려 함이니 [20] 이는 뜻을 같이하여 너희 사정을 진실히 생각할 자가 이밖에 내게 없음이라 [21] 그들이 다 자기 일을 구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하지 아니하되 [22] 디모데의 연단을 너희가 아나니 자식이 아버지에게 함같이 나와 함께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였느니라” 모두가 다 자기 일을 구하는 세상에서 묵묵히 예수의 일을 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러나 예수의 일을 하는 사람을 통해 복음이 나눠지고 하나님나라가 이 땅에 보여지게 된다. 여러분이 사람의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 예수님의 일을 하는 성도가 되길 축원한다.

또한 자기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무엇인가? 예수님을 따를 때 자신이 감당해야할 몫의 피흘림이 있다는 것이다. 피흘림을 좋아할 사람은 없다. 고통스런 순간과 남들이 짊어지지 않는 십자가를 내가 지는 것은 유쾌하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고 이 땅에 하나님나라를 심기 위해 피흘리셨다. 아무도 지지 않는 십자가를 스스로 지셨다. 자기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주님을 따르는 자들이 자신에게 허락된 십자가를 피하지 않는 것이다. 스스로 자원해서 그것을 감당하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그를 따르는 무리들을 가르치며 끝으로 이렇게 약속하신다. 마 16:26-27,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 [27]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 예수님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른 자들에게 각 사람이 행한대로 갚아주시겠다고 약속하신다. 

십자가를 감당한 자에게 영광을 주는 것은 하나님의 원리다. 이것은 예수님이 십자가를 통해 친히 경험하신 것이다. 빌 2:8-11,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교회는 이 세상에서 복음을 위해  예수님의 십자가를 함께 나누어 지는 공동체다. 바울은 교회를 향한 그의 사명을 이렇게 고백한다. 골 1:24-25,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25] 내가 교회의 일꾼 된 것은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직분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니라” 교회의 일꾼이 된 것은 하나님이 주신 직분이다. 오늘 신임으로 집사 직분을 받은 분들이나 이미 집사 직분을 받으신 분들은 하나님이 교회를 위해 세우신 것이다. 교회의 일꾼이 되었다는 것은 바울의 고백처럼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각자 자신의 몸에 채우라는 부르심이다. 한마디로 이 직분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몸과 마음이 고달프다는 말이다.

올 한 해 우리 교회는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고난과 역경이 예상된다. 그동안 나 자신도 어떤 것이 하나님의 일인지, 어떤 것이 사람의 일인지, 그 사이에서 많은 고민이 있었다. 구분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런데 다시 주시는 마음은 내 자신부터 교회를 위해 고난을 몸으로 감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올 해는 몸으로 많이 뛰는 한 해가 될 것 같다. 복음이 시작된 땅, 그러나 예수님을 환영하지 않는 이 땅에 이방인들의 교회가 세워졌다는 것은 기적이다. 이 교회가 관문이 되어 이 땅에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게 될 것이다. 유대인들이 다시 구원의 가지에 접붙혀질 때까지 하나님의 영광은 중단 없이 선포되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의 일이다. 하나님의 영광이 영광으로 드러나기까지 우리는 우리 교회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함께 감당해야 한다. 교회만이 니라 여러분의 가정, 여러분의 직장이 바로 사역의 현장이다. 바라기는 올 한 해 우리에게 맡겨진 일들을 통해 사람의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이루는 삶이 되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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