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라포션 26 성막에서 만나는 하나님

이번 주 토라포션: 레 12:1-15:33/ 왕하7:3-20/ 막9:14-50; 눅9:51-10:42

토라포션 26 성막에서 만나는 하나님

 

둘째 해 첫째 달 곧 그 달 초하루에 성막을 세우니라 [18] 모세가 성막을 세우되 그 받침들을 놓고 그 널판들을 세우고 그 띠를 띠우고 그 기둥들을 세우고 [19] 또 성막 위에 막을 펴고 그 위에 덮개를 덮으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되니라 [20] 그는 또 증거판을 궤 속에 넣고 채를 궤에 꿰고 속죄소를 궤 위에 두고 [21] 또 그 궤를 성막에 들여놓고 가리개 휘장을 늘어뜨려 그 증거궤를 가리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되니라 [22] 그는 또 회막 안 곧 성막 북쪽으로 휘장 밖에 상을 놓고 [23] 또 여호와 앞 그 상 위에 떡을 진설하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되니라 [24] 그는 또 회막 안 곧 성막 남쪽에 등잔대를 놓아 상과 마주하게 하고 [25] 또 여호와 앞에 등잔대에 불을 켜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되니라 [26] 그가 또 금 향단을 회막 안 휘장 앞에 두고 [27] 그 위에 향기로운 향을 사르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되니라 [28] 그는 또 성막 문에 휘장을 달고 [29] 또 회막의 성막 문 앞에 번제단을 두고 번제와 소제를 그 위에 드리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되니라 [30] 그는 또 물두멍을 회막과 제단 사이에 두고 거기 씻을 물을 담으니라 [31] 모세와 아론과 그 아들들이 거기서 수족을 씻되 [32] 그들이 회막에 들어갈 때와 제단에 가까이 갈 때에 씻었으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되니라 [33] 그는 또 성막과 제단 주위 뜰에 포장을 치고 뜰 문에 휘장을 다니라 모세가 이같이 역사를 마치니 (출 40:17-33)

 

오늘 토라포션은 출애굽기의 마지막 부분이다. 출애굽을 한지 딱 일년 만에 성막이 세워지는 장면이 나온다. 광야를 지나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성막에서 하나님을 만났고 그분의 영광과 임재를 체험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을 만나주시기 원하신다. 나와 여러분도 만나주시기 원하신다. 그런데 정한수를 떠놓고 기도한다고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아니다. 죄에 빠진 인간이 거룩하신 하나님을 직접 만나면 죽을 수 밖에 없다. 하나님은 성막을 통해 하나님께 나아올 수 있는 방법을 보여주셨다. 성막은 인간이 세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직접 설계하신 것이다. 설계하신 분의 의도를 알아야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 성막이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라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성막 그 자체보다 하나님께서 성막을 통해서 보여주시고자했던 실제가 무엇인지를 주목해야 한다. 오늘 성막을 통해 하나님께 어떻게 나아갔는지 살펴보며 우리의 삶속에서도 하나님 나아가는 길을 발견하게 되는 은혜가 있기를 바란다.

성막은 인간이 하나님을 만나는 곳이다. 성막은 사방이 세마포 울타리로 둘러쳐졌다. 그리고 오직 동쪽으로 난 하나의 문을 통해 들어갈 수 있었다. 이것은 인간이 하나님 앞에 이르는 길이 하나의 문 밖에 없음을 예표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요 10:9,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요 14:6,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이 동쪽문을 통해 성소에 들어서면서 구원의 여정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 번제단에서는 매일 일년된 어린 양 두마리가 번제로 드려졌다. 번제는 히브리어로 ‘오라’다. 올라간다는 뜻이다. 제물을 태울 때 연기가 올라가기 때문에 올라가는 제물이란 뜻이다. 이것은 아침과 저녁으로 늘 드리는 상번제이다. 그리고 백성들이 죄를 지었을 때마다 속죄를 위해 가져오는 번제물이 있었다. 그들은 소나 양이나 염소를 가져왔다. 제사장들은 그 제물이 흠이 없는지 검사했다. 흠이 없으면 그 제물에 안수를 한다. 죄인으로부터 고백받은 죄를 그 동물에게 전가하는 것이다. ‘아내 몰래 바람을 피웠습니다’라고 고백하며 양을 가져왔다면 이제 그 양은 바람 핀 양이 되는 것이다. 번제물을 가져오는 사람은 최소한 이 제물이 나의 죄를 대신해서 피흘리고 죽는다는 믿음이 있었다. 제사장은 그 양을 잡아 피를 내고 그 피를 번제단 사방에 뿌린다. 그리고 몸은 각을 떠서 불로 태운다.

의로우신 하나님은 죄를 반드시 심판하셔야 했다. 히 9:22, “율법을 따라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하게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하나님의 심판에는 예외가 없다. 봐주는 것이 없다. 내가 죽거나 누군가 내 대신 피를 흘려서라도 내 죄의 대가를 치르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이다. 구약에서 번제단을 통해 속죄의 길을 여신 하나님께서는 이것이 우리의 죄를 사하는 영원한 속죄의 상징이 되게 하셨다.

히 9:27-28,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28]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흠없는 예수님께 전가하신 것이다. 그 분이 십자가에서 피흘리게 하심으로 우리의 죄가 옮겨지고 용서받게 하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번제단에서 죄인이 더 이상 죄인이 아니라 의로움을 얻게 되는 것을 보게 된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번제단을 통과해야 한다. 즉 내 죄가 예수님께 옮겨졌다는 것, 그래서 그분이 나를 위해 대신 피흘리고 죽었다는 최소한의 믿음이 요구되는 것이다.

번제단 다음으로 만나게 되는 것은 물두멍이다. 번제를 드린 제사장이 성막에 들어가기 전에 반드시 물두멍에서 손과 발을 씻어야 했다. 출 30:19-20,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그 두멍에서 수족을 씻되 [20] 그들이 회막에 들어갈 때에 물로 씻어 죽기를 면할 것이요 제단에 가까이 가서 그 직분을 행하여 여호와 앞에 화제를 사를 때에도 그리 할지니라”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나올 때 우리는 손을 씻을 때도 있고 그냥 나올 때도 있다. 그러나 물두멍 수족을 씻은 일은 선택사항이 아니다. 제사장들이 죽고 사는 문제가 달렸기에 반드시 해야하는 것이다.

물이 상징하는 것은 씻음이다. 애굽에서 노예로 살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홍해를 통과하며 그들의 과거를 집단적으로 씻어냈다. 바울은 그것을 세례로 표현했다. 고전 10:1-2, “형제들아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에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2]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예수님을 통해 죄의 문제를 해결한 사람들은 이제 과거를 씻어낼 필요가 있다. 그것은 세례를 통해 나의 옛자아를 장사지내고 새로운 피조물로 살겠다고 결단하는 것을 의미한다. 골 2:12,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우리가 번제단에서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님을 보았다면, 이제 물두멍에서는 나를 위해 다시 살아나셔서 나를 새롭게 씻으시고 일으키시는 예수님을 보게 되는 것이다. 이번 유월절에도 우리가 요단강에 가서 세례식을 하려고 한다.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은 지금도 세례를 통해 그리스도와 함께 내가 죽고 그와 함께 내가 다시 일으키심을 받았음을 고백하는 믿음을 통해 되는 것이다.

번제단과 물두멍을 지나야 비로소 우리는 성막에 들어가게 된다. 이제 성막은 구약의 제사장만 들어가는 곳이 아니다. 번제단과 물두멍에서 예수님을 믿음으로 고백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막에 들어가는 것이다. 히브리서 기자는 그 사실을 이렇게 말한다. 히 10:19-22, ”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20]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21] 또 하나님의 집 다스리는 큰 제사장이 계시매 [22]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성막에 들어서면 왼쪽으로 금촛대가 놓여있다. 제사장은 오직 이 촛대에서 나오는 빛을 통해 성막 안을 분별할 수 있게 된다. 요 8:12절은 말한다.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예수님이 우리의 삶을 비춰주실 때 우리는 어둠에 다니지 않게 된다. 우리가 누구인지 알게 되고 우리가 어디로 가야할지 알게 된다. 성막 안의 금촛대는 결국 생명의 빛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이다.

성막 안 오른 쪽에는 떡상이 있고 그 위에는 매주 안식일 마다 12개의 빵이 새로 놓여지게 된다. 한국어로는 진설병인데, 히브리어로 ‘레헴 파님’이다. 파님이 얼굴이란 뜻인데, 얼굴 빵, facebread가 하나님 앞에 진열되는 것이다. 12지파를 생명의 떡으로 먹이겠다는 하나님의 의지가 담겨져 있는 것 같다. 요 6:35절은 말한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의 자녀들은 예수님을 통해 공급받고 참된 만족을 누리는 삶을 살게 된다. 결국 성막 안의 떡상은 예수님을 통해 당신의 자녀들을 공급하심을 상징하는 것이다.

성막 안 정면에는 향단이 놓여져 있다. 제사장은 이곳에서 아침과 저녁으로 향을 피웠다. 출 30:7-8, “아론이 아침마다 그 위에 향기로운 향을 사르되 등불을 손질할 때에 사를지며 [8] 또 저녁 때 등불을 켤 때에 사를지니 이 향은 너희가 대대로 여호와 앞에 끊지 못할지며” 예수님 당시에 있었던 성전에서는 이 향단에 불을 붙이는 시간에 백성들이 기도하는 시간이었음을 알 수 있다. 눅 1:9-10, “제사장의 전례를 따라 제비를 뽑아 주의 성전에 들어가 분향하고 [10] 모든 백성은 그 분향하는 시간에 밖에서 기도하더니” 다윗도 시 141:2절에서 고백한다. 나의 기도가 주의 앞에 분향함과 같이 되며 나의 손 드는 것이 저녁 제사 같이 되게 하소서” 따라서 성막 안의 향단은 하나님을 향한 기도를 상징하는 것이었다. 제사장은 이 향이 꺼지지 않게 하는 사명이 있었다.

성막 안 휘장을 지나 지성소에 이르면 속죄소가 있다. 속죄소는 히브리어로 ‘하카포레트’다. 속죄하는 곳이인데, 영어로는 mercyseat, 은혜의 보좌, 시은좌라고도 한다. 코레르는 역청인데, 노아가 방주를 만들고 역청으로 방주를 덮었다. 키푸르는 속죄라는 뜻인데, 욤키루르는 죄를 덮는 날이었다. 이 속죄소가 언약궤 위에 놓여져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출 25:21-22, “속죄소를 궤 위에 얹고 내가 네게 줄 증거판을 궤 속에 넣으라 [22]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령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 언약궤 안에는 무엇이 들어 있나? 율법을 상징하는 십계명 돌판이 놓여 있다. 누구든지 율법을 다 지키지 못하면 사망의 심판을 받을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 돌판 위에 속죄소, 은혜의 보좌가 있는 것이다. 대제사장은 일년에 한 번 이 지성소에 들어가 속죄소 위해 희생제물의 피를 뿌렸다. 레 16:15, “또 백성을 위한 속죄제 염소를 잡아 그 피를 가지고 휘장 안에 들어가서 그 수송아지 피로 행함 같이 그 피로 행하여 속죄소 위와 속죄소 앞에 뿌릴지니” 자, 피가 뿌려진 속죄소는 단순히 언약궤를 덮고 있는 것이 아니다. 십계명 돌판으로 상징되는 율법을 덮고 있는 것이다. 즉 율법을 범하면 죽을 수밖에 없는 백성들을 향한 율법의 저주와 진노를 덮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은 이 속죄소 위에서 우리 인간을 만나시는 것이다. 율법의 기준이 아니라 그 위에 뿌려진 속죄의 피를 보시기 때문이다. 긍휼이 심판을 이긴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대제사장 되시는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겂없이 갈 수 있게 된 것이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 사실을 이렇게 말한다. 히 4:14-16,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16]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우리가 살펴본 것처럼 예수님을 믿는 신약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계시는 지성소에 까지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지성소는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곳이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계시되는 곳이다. 지성소에 이른 사람은 결국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의 뜻을 이 세상가운데로 옮기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여러분이 지금 있는 곳은 어디인가? 광야 한복판이라면 성막문을 통해 성소의 뜰로 들어와야 한다. 여러분 자신의 구원을 위해 첫걸음을 옮겨야 한다. 성소의 뜰을 밟았다면 뜰만 밟다가 가면 안 된다. 번제단과 물두멍을 지나야 한다. 성소를 지나 지성소의 은혜의 보좌 앞까지 나아가야 한다. 그리고 그곳에 계신 하나님을 만나야 한다. 행 15:16-17, “이 후에 내가 돌아와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지으며 또 그 허물어진 것을 다시 지어 일으키리니 [17] 이는 그 남은 사람들과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모든 이방인들로 주를 찾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 하나님을 찾고 찾았던 다윗의 장막이 여러분의 삶에 회복되길 바란다. 출애굽 이후 하나님의 영광과 임재가 있었던 성막이 여러분의 삶에 세워지길 바란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은 무너진 장막을 회복하는 사람이다. 그곳에게 하나님을 찾는 사람이다. 바라기는 여러분의 예배의 장막이 회복되어 그곳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그분의 자녀가 되는 축복을 누리며 살게 되는 모두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텔아비브 욥바교회 샤밧설교 2016년 3월 12일 이익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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