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강해 6 막을 수 없는 하나님

텔아비브 욥바교회 2017년 9월 23일 설교 이익환 목사

사도행전 강해 6 막을 수 없는 하나님 

그런즉 하나님이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주신 것과 같은 선물을 그들에게도 주셨으니 내가 누구이기에 하나님을 능히 막겠느냐 하더라 그들이 이 말을 듣고 잠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하니라” (행 11:17-18)

미국 달라스에 조엘 파레스라는 사진작가가 있다. 그는 사람들이 갖고 있는 편견을 사진작품으로 다루어 메시지를 전하는 작가다. ‘Juging America’라는 작품을 보자.

사진 1. 인종차별주의자처럼 보이는 사람이 사실은 목사다.

 

사진 2. 갱처럼 보이는 사람이 사실은 하버드 졸업생이다.

 

사진 3. 정원사처럼 보이는 사람이 사실은 포춘이 선정한 500기업  CEO다.

 

우리가 누군가를 편견을 가지고 보지는 않았는지 돌아보게 하는 작품이다.

조지 에이큰은 이런 말을 했다. “만일 우리가 어느 날 아침 일어났는데 모든 사람이 동일한 인종, 신념, 피부색의 사람이란 사실을 발견한다면 우리는 정오까지 편견을 갖기 위한 또 다른 이유를 찾을 것이다” 편견을 버리기가 그만큼 쉽지 않음을 강조한 말이다.

오늘 본문에는 편견에 사로잡힌 한 사람이 나온다. 베드로다. 그가 어떤 편견에 사로잡혔는지, 그리고 하나님은 그 편견을 어떻게 다루셨는지 살펴보며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한다.

만약 베드로가 가이사랴에서 고넬료를 우연히 처음 마주치게 되었다면 베드로의 반응은 어땠을까? 그냥 별반응 없이 스쳐가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고넬료는 당시 가이사랴에 주둔했던 로마군의 백부장이었다. 오륙백명을 통솔하던 장교였다. 그는 이스라엘에 파견나와 독특하게도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경외했던 사람이었다.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던 사람이었다. 그가 아무리 좋은 사람임을 알았다해도 베드로는 그와 교제할 이유가 없었고 그와 함께 밥을 먹을 수도 없었다. 왜냐하면 베드로는 유대인이었고, 고넬료는 이방인이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는 것처럼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음식법을 철저히 지킨다. 레위기 말씀을 지키기 위해서다. 레 11:45-47,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46] 이는 짐승과 새와 물에서 움직이는 모든 생물과 땅에 기는 모든 길짐승에 대한 규례니 [47] 부정하고 정한 것과 먹을 생물과 먹지 못할 생물을 분별한 것이니라”  

하나님은 왜 이런 음식법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셨을까? 구별됨을 위해서다. 세상 사람들과 구별된 거룩한 백성이 되게 하기 위해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먹는데서부터 구별되기 원하셨다. 아무 제한없이 우상에게 드려진 제물을 먹던 이방인들로부터 구별되고 보호되기를 원하셨다. 따라서 음식법은 이스라엘이 거룩한 하나님 백성이라는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이었다.

이처럼 음식법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제사장 나라로 구별되게 하기 위한 장치였다. 이방인들과 구별되지 않았다면 유대인들은 쉽게 이방문화에 영향받아 그들의 정체성이 사라졌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유대인들이 음식법을 잘못 적용한 것이다. 자신들의 구별됨을 위해 주신 음식법을 이방민족을 차별하는 차별법으로 적용한 것이다. 유대인들은 부정한 음식을 먹는 이방인들을 부정하게 보았다. 그래서 이방인들과의 친교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게 되었다. 밥을 같이 먹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열방의 복이 되라고 세운 제사장나라 백성들이 그들이 세운 음식법이라는 분리장벽 때문에 이방인들에게 갈 수 없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발생했다. 

온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구속역사가 음식이라는 장벽 때문에 멈춰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새로운 구속역사를 시작하셔야 했다. 바울은 이방인 교회인 에베소교회 성도들을 향해 말했다. 엡 2:13-16,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14]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15]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16]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여기서 나오는 둘은 이방인과 유대인을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유대인과 이방인이 한 몸된 주의 공동체가 되는 새로운 구속역사를 시작하신 것이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유대인과 이방인들이 하나가 될 수 없는 모든 장벽을 허셨다. 구약의 제사와 음식법을 폐하시고 이방인, 유대인 모두가 하나가 되어 한 가족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올 수 있게 하신 것이다. 이제 신약의 교회는 왕같은 제사장이 되어 함께 친교를 나누며 열방에 복음을 전하는 부르심을 이어가게 된 것이다.

히 9:9-12, “이 장막은 현재까지의 비유니 이에 따라 드리는 예물과 제사는 섬기는 자를 그 양심상 온전하게 할 수 없나니 [10] 이런 것은 먹고 마시는 것과 여러 가지 씻는 것과 함께 육체의 예법일 뿐이며 개혁할 때까지 맡겨 둔 것이니라 [11] 그리스도께서는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것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12]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이 말씀에 의하면 신약의 백성들은 더이상 코셔를 지킴으로 정결해지는 것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오셔서 우리를 위한 속죄의 피를 흘리셨기에 우리가 그것을 믿음으로 정결하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 사실을 유대인에게 가르쳐주시길 원했다. 그리하여 새로운 선교역사를 시작하기 원하셨다. 그래서 하나님은 유대인인 베드로, 초대교회 수장에게 환상을 보여주신 것이다. 행 10:11-13, “하늘이 열리며 한 그릇이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보자기 같고 네 귀를 매어 땅에 드리웠더라 [12] 그 안에는 땅에 있는 각종 네 발 가진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있더라 [13] 또 소리가 있으되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어라 하거늘” 하나님은 유대인들이 절대 먹지 못하는 기는 동물들까지 보자기에 넣어 베드로에게 주셨다. 뼈 속 깊이 유대인이었던 베드로는 당연히 질겁을 했다. 행 10:14,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하지 아니한 것을 내가 결코 먹지 아니하였나이다” 하늘에서 소리가 났다. 행 10:15, “또 두 번째 소리가 있으되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하더라” 하나님은 유대인으로서 베드로가 갖고 있는 이방인에 대한 편견을 뿌리 채 뽑기 원하셨다. 그래서 이런 일을 세 번이나 반복하셨다. 이 환상의 결론은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이방인에 대해 속되다는 생각을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이 일 후에 베드로는 자신을 만나기 위해 사람을 보내 온 이방인 고넬료를 만나러 간다. 당시 유대인이 이방인과 교제하며 가까이하며 하는 것은 금기시 되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께서 아무도 속되다 하거나 깨끗하지 않다 하지 말라고 하셨기에 그 말씀에 순종하여 간 것이다. 베드로가 그의 집에 찾아가 복음을 전했을 때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성령이 임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아, 하나님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을 부어주시는구나…’ 베드로는 놀랐다. 행 10:34-35, “베드로가 입을 열어 말하되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아니하시고 [35]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다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 그는 이 경험을 통해 이방인에 대해 갖고 있던 편견이 깨진다. ‘구별됨이 다가 아니었구나, 하나님이 받으시는 사람들에게 나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구나’라고 깨닫게 된 것이다. 유대인 사도의 편견이 무너진 곳에서 그동안 막혔던 하나님 나라 선교가 다시 시작된 것이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하나님 나라의 열쇠를 주셨다. 마 16:19,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문은 누가 여는가? 열쇠를 사용하는 사람이 연다. 하나님은 베드로를 사용하시기 위해 그의 편견이라는 빗장을 거둬내야만 했다. 그가 편견을 버리고 열린 사람이 되었을 때 그는 비로소 복음으로 세상을 여는 사람이 될 수 있었다. 그는 천국 열쇠를 사용하여 세계를 열고 교회를 세우는 사람으로 쓰임받았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갖고 있는 고정관념, 편견이 무너져야 우리와 다른 그룹의 사람들과 친교가 시작된다. 다른 사람과 친교가 안되는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인가? 나는 괜찮고 쟤는 괜찮지 않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나와 너가 다르다는 것으로 분리장벽을 쌓기 전에 하나님은 우리가 판단하는 그 사람을 받으신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베드로가 이일 후에 예루살렘에 올라갔을 때 할례자들이 그를 비난했다. 이유는 베드로가 무할례자의 집에 들어가 함께 먹었기 때문었다. 베드로는 그가 환상을 보았던 장면과 그동안 일어났던 일들을 그들에게 설명한다. 행 11:15, 17, “내가 말을 시작할 때에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기를 처음 우리에게 하신 것과 같이 하는지라… [17] 그런즉 하나님이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주신 것과 같은 선물을 그들에게도 주셨으니 내가 누구이기에 하나님을 능히 막겠느냐 하더라” 하나님이 여시는 것을 베드로는 막아설 수 없었다. 하나님의 작정 앞에 베드로의 오래된 편견은 무너져내려야 했다. 하나님이 여시는 것을 사람이 막을 수 없다. 반대로 하나님이 닫으시는 것을 사람이 열 수가 없다. 한 해 우리 앞에 놓인 문들의 열쇠는 하나님이 쥐고 계신다. 우리가 하나님의 작정에 주목할 때 우리는 하나님이 여시는 것을 함께 열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행 11:18, “그들이 이 말을 듣고 잠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하니라” 예루살렘에 있었던 할례자들의 편견도 무너져 내리는 장면이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음을 인정했다. 이러한 일이 있었기에 바울과 여러 사도들을 통한 이방인 선교가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이다. 편견을 버리고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주목한 유대인들이 있었기에 이방인인 우리가 코셔를 안해도, 할례를 받지 않아도 구원받게 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교회인 우리에게 세상을 여는 열쇠를 주셨다. 우리가 세상을 열어갈 때 하나님의 나라가 그곳에 임하게 된다. 그런데 우리 안에 편견이 있다면 우리는 그 열쇠를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 나라는 거기서 멈추게 된다. 편견을 내려 놓고 우리 자신이 열려야 우리는 다른 사람을 열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유대인의 새해가 시작되었다. 올 한 해도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통해 열어가기 원하시는 영역이 있을 것이다. 주위가 다 막힌 것 같아도 하나님이 작정하시면 반드시 열린다. 가능성이 다 열려있는 것 같아도 하나님이 막으시면 막히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작정에 주목하며 하늘의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도록 기도해야 할 것이다. 바라기는 내 계획, 내 편견을 내려놓고 하나님이 열어가시는 일에 동역할 수 있는 우리가 되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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