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강해 11 내가 머문 곳에서 

텔아비브 욥바교회 2017년 10월 28일 설교 이익환 목사

사도행전 강해 11 내가 머문 곳에서 

그 후에 바울이 아덴을 떠나 고린도에 이르러 [2] 아굴라라 하는 본도에서 난 유대인 한 사람을 만나니 글라우디오가 모든 유대인을 명하여 로마에서 떠나라 한 고로 그가 그 아내 브리스길라와 함께 이달리야로부터 새로 온지라 바울이 그들에게 가매 [3] 생업이 같으므로 함께 살며 일을 하니 그 생업은 천막을 만드는 것이더라 [4] 안식일마다 바울이 회당에서 강론하고 유대인과 헬라인을 권면하니라” (행 18:1-4)

 신약성경에서 가장 이상적인 부부를 꼽으라 하면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아닐까 한다. 오늘은 이 부부를 중심으로 이들이 어떻게 하나님나라에 헌신했는지 살펴보며 은혜를 나누고자 한다.

행 18:1-2, “그 후에 바울이 아덴을 떠나 고린도에 이르러 [2] 아굴라라 하는 본도에서 난 유대인 한 사람을 만나니 글라우디오가 모든 유대인을 명하여 로마에서 떠나라 한 고로 그가 그 아내 브리스길라와 함께 이달리야로부터 새로 온지라 바울이 그들에게 가매” 아굴라는 유대인으로 로마에 살았다. 그의 아내 브리스길라는 성경에 브리스가라는 이름으로도 나오는데 로마의 귀족가문이었다. 이들은 로마에서 천막장사를 하며 살았는데 AD 49년경 로마를 강제로 떠나야만 했다. 당시 로마 황제 글라우디오가 유대인 추방령을 내린 것이다. 로마 역사가 수에토니우스에 의하면 글라우디오 재위 제9년인 49년에 유대인들이 ‘그리스도’에 관한 문제로 자주 폭동을 일으키자, 모든 유대인들을 로마 시에서 추방하는 포고령을 내리게 되었다고 한다. 유대인들이 믿는 유대인들을 향해 폭동을 일으킨 것이다. 그래서 모든 유대인들이 로마에서 추방당할 때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도 로마를 떠나야 했던 것이다.

사업을 접고 삶의 터전을 떠나올 때 얼마나 막막했을까? 그러나 신앙인의 역사에는 결코 우연이란 없다. 이 부부는 고린도에 정착한지 약 2년 뒤인 AD 51년경 바울을 만나게 된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바울을 만났을 때 바울은 많이 지쳐있었다. 아테네에서의 사역이 미미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고린도라는 도시의 영적인 환경도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후에 이렇게 기록한다. 고전 2:3,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노라” 바울이 고린도에서 왜 그리 약한 모습을 보이며 떨었을까?

고린도 전경

당시 고린도는 ‘로마 제국의 허영심의 박람회장’이란 말이 있었다. 고린도는 주전 46년에 쥴리어스 시저에 의해 재건된 항구도시로 많은 이주민들이 특혜를 받고 이 도시에 정착했다. 바울 당시 고린도는 인구 65만명의 도시였는데, 아가야 주의 수도이며 상업의 중심지로, 도시가 갖고 있는 그 위상 때문에 고린도 시민들은 자부심이 대단했다고 한다. 이 도시에는 아크로코린트라는 바위 언덕이 있는데, 그 정상에는 사랑의 여신인 아프로디테의 신전이 있었다. 천명의 여자 노예들이 그 여신을 섬겼고, 그들은 밤에는 창기가 되어 거리를 돌아다녔다고 한다. 그리하여 고린도의 성적인 문란함은 악명이 높았다. ‘고린도스럽다’는 말은 ‘음란하다’란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런 곳에 도착한 바울은 이 도시의 분위기, 사람들의 태도 때문에 마음이 무거웠던 것이다.

그런 바울에게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위안이 된다. 행 18:3, “생업이 같으므로 함께 살며 일을 하니 그 생업은 천막을 만드는 것이더라” 바울 역시 텐트메이커였다. 바울은 아굴라 부부의 집에 함께 살며 텐트 만드는 일을 했다. 아굴라 부부는 로마에서 부터 믿는 가정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바울을 만나자마자 그를 환대하며 함께 사역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한편 바울은 주중에는 일하고 안식일에는 회당에서 말씀을 전하며 유대인과 헬라인을 권면했다.

그러던 중 바울이 더 힘들어지는 일이 발생한다. 행 18:5-6, “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로부터 내려오매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언하니 [6] 그들이 대적하여 비방하거늘 바울이 옷을 털면서 이르되 너희 피가 너희 머리로 돌아갈 것이요 나는 깨끗하니라 이 후에는 이방인에게로 가리라 하고” 복음을 들은 유대인들의 대적과 비방이 상당히 심했음을 알 수 있다. 바울은 그들을 향해 옷을 털면서 이제 자신은 이방인에게로 가겠다고 결심한다. 그러나 밤에 주께서 환상중에 바울을 위로하신다. 행 18:9-10,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10]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라” 이 도시에 내 백성이 많다는 이 한 말 때문에 바울은 인간적인 눈으로 볼 때 힘든 곳이었으나 고린도에서 일년 육개월을 더 머물며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게 된다. 그리하여 교만과 허영과 음란으로 가득한 세속 도시 한복판에서 말씀의 씨앗이 자라게 된다.

이 후 갈리오라는 사람이 아가야의 총독이 되었을 때 유대인들이 바울을 대적하여 법정 소송을 벌이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 사건 이후 바울은 고린도를 떠나 시리아 안디옥으로 향한다. 이 때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도 함께 동행한다. 이것은 단순한 동행이 아니라 이주였다. 자신들의 사업을 다 정리하고 바울을 따라 나선 것이다.

행 18:19, “에베소에 와서 그들을 거기 머물게 하고 자기는 회당에 들어가서 유대인들과 변론하니” 바울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를 에베소에 남겨두고 자신은 시리아 안디옥으로 향한다. 에베소가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하는 중요한 위치에 있는 도시였기에 바울은 그들을 거기에 전략적으로 남겨 둔 것이다.

AD 53년경 에베소에 아볼로라는 유대인이 찾아온다. 그는 언변이 좋고 성경에 능통한 자였다. 그러나 그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 사역자로 거듭나게 된다. 행 18:25-26, “그가 일찍이 주의 도를 배워 열심으로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가르치나 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이라 [26] 그가 회당에서 담대히 말하기 시작하거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듣고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더 정확하게 풀어 이르더라”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어떻게 해서 하나님의 도를 더 정확하게 알 수 있었을까? 그들은 바울과 함께 일년 육개월 고린도에 있는 동안 열심히 성경공부를 했던 것이다.

행 18:27-28, “아볼로가 아가야로 건너가고자 함으로 형제들이 그를 격려하며 제자들에게 편지를 써 영접하라 하였더니 그가 가매 은혜로 말미암아 믿은 자들에게 많은 유익을 주니 [28] 이는 성경으로써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증언하여 공중 앞에서 힘있게 유대인의 말을 이김이러라”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겸손했다. 자신들이 아볼로를 한 수 지도했다고 자랑하지 않았다. 오히려 아가야에 있는 고린도 교회에 편지를 써주며 아볼로를 그 곳 사역자로 세워준다. 아볼로는 거기서 그의 언변으로 유대인의 말을 이기며 바울이 하지 못했던 사역의 열매를 맺는다. 고린도교회를 떠나왔지만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계속해서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것이다.

아굴라 부부는 에베소에서 5년간 더 교회를 섬긴다. 바울이 에베소에 머물렀을 때 고린도교회에 편지하는 장면에서 바울이 아굴라 부부의 문안을 전한다. 고전 16:19, “아시아의 교회들이 너희에게 문안하고 아굴라와 브리스가와 그 집에 있는 교회가 주 안에서 너희에게 간절히 문안하고” 아굴라 부부의 집이 에베소에서 교회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AD 57년경 아굴라 부부는 다시 로마로 이사한다. 로마가 제국의 수도로 너무 중요한 곳이기에 글라우디오 황제가 죽은 후 그들은 다시 로마복음화를 위해 이주했던 것이다. 바울은 로마에 있는 교회에 편지하면서 그들에게 문안의 인사를 전한다. 롬 16:3-5, “너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인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 [4] 그들은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들의 목까지도 내놓았나니 나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그들에게 감사하느니라 [5] 또 저의 집에 있는 교회에도 문안하라” ‘저의 집에 있는 교회’라는 표현에서 아굴라 부부의 집이 로마에서도 가정교회로 사용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바울이 고린도에서 쫓겨나고 에베소 연극장에서 죽음의 위협에 처했을 때도 동행했다. 아굴라 부부는 이처럼 바울이 가장 어렵고 힘든 순간을 함께 했던 동역자가 되었다. AD 51년 바울을 만나고 AD 62년 바울이 순교할 때까지 약 12년이 넘는 세월을 이들은 바울과 함께 있든, 서로 다른 곳에 있든 하나님나라를 위해 헌신한 동역자로 살았던 것이다. 초대교회는 이처럼 복음을 위해 자신의 삶의 현장까지도 바꿀 수 있었던 사람들이 있었기에 제국을 흔드는 영향력이 있었던 것이다.

바울이 이방세계에 복음을 전하며 교회를 세울 수 있었던 것은 결코 바울 혼자만의 힘이 아니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와 같은 평신도 지도자들이 있었기에 하나님나라는 로마의 주요도시에 세워져 갈 수 있었던 것이다.

바울이 편지한 내용을 보면 이후 AD 55년경 고린도교회는 여러가지 문제가 발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교회 안에 분쟁이 있었고, 믿는 자 간에 소송문제가 벌어졌으며, 음행의 문제가 이어졌다. 목회자로서는 이런 교회는 목회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 교회다. 그러나 바울은 고린도교회를 ‘하나님의 교회’라고 부른다. 그곳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성도’라고 부른다. 그리고 그들을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들로 끝까지 견고하게 하실 것을 믿고 기도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 안에서 벌어진 음행사건에 대해 듣고 그 음행한 자를 내어쫓으라고 편지한다. 육신적으로는 교회의 몸에서 분리되는 고통이 있지만 영으로 주 예수의 날에 구원을 받게 하려는 목적이었다.

몇년 전 우리 교회에서도 출교조치를 해야만 했던 일이 있었다. 우리 교회는 이 사건을 통해 타격을 입었다. 영광스러워야 할 교회의 모습에 흠집이 났다. 다 지나간 얘기를 왜 할까? 타락한 도시에서 고린도 교회가 복음의 교두보로 여전히 중요했던 것처럼 이 세속도시 텔아비브에 있는 우리 교회가 하나님나라 선교의 완성을 위해 여전히 중요하기 때문이다. 복음이 시작된 이스라엘 땅에 복음이 열방을 지나 다시 이 세속도시 한복판에 주님의 교회가 세워졌다. 하나님의 장자 유대인들이 다시 복음에 접붙여지기까지 이방 교회인 우리에겐 사명이 있다. 유대인들이 시기하며 돌아오기까지 주님을 예배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는 교회가 되야 하는 것이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는 바울이라는 사람에게 헌신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그들이 경험한 복음 때문에 하나님 나라에 헌신한 것이다. 그러다가 만난 것이 바울이었고, 아볼로였다. 그러다가 섬긴 것이 고린도교회였고, 에베소교회였고, 로마교회였다. 교회는 하나님나라를 확장하는 통로였기에 그들은 지역교회에 헌신한 것이다. 교회 안에는 여러가지 문제가 많았지만 그들의 섬김은 중단되지 않았다. 하나님나라가 인간의 연약함 때문에 중단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끝까지 하나님이 세우신 사람들과 교회와 동역하며 하나님나라를 확장하는데 자신들의 삶을 아낌없이 드렸던 것이다.

이동하는 삶이 많아진 시대다. 여러분들도 어쩌다 주재원으로, 연구원으로, 학생으로, 키부츠 발룬티어로 이곳까지 왔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우연이란 없다. 여러분이 여기 있는 이유가 있다. 바라기는 여러분이 지금 머문 곳에서 여러분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가 세워지길 바란다. 욥바교회를 통해서도 여러분 안에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신앙이 견고히 세워지길 바란다. 말씀 위에 확고히 서야 사역의 감각이 생기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람들을 돕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법과 뜻대로 그들을 세워가는 사역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바라기는 여기 있는 여러분이 지금 내가 머문 곳에서 교회의 필요를 섬기며 그것으로 하나님나라 역사의 한모퉁이를 담당할 수 있게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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