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로새서 2 그리스도의 할례

2018년 8월 4일 텔아비브 욥바교회 설교 이익환 목사

골로새서 2 그리스도의 할례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육의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 [12]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 2:11-12)

 

구약시대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 되는 조건이 있었다. 할례를 받는 것이었다. 신약시대에도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 되는 조건이 있다. 마음의 할례가 있는 자가 되는 것이다. 바울은 그것을 오늘 본문에서 ‘그리스도의 할례’라고 말한다. 오늘은 그리스도의 할례가 무엇인지 살펴보며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한다.

 

창세기 11장 바벨탑 사건 이후 하나님께서는 온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아브라함을 부르신다. 12:1-2,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땅으로 가라 [2] 내가 너로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통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열방을 위한 제사장 나라가 될 한 민족을 만들기 원하셨다. 그 민족이 바로 ‘이스라엘’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99세가 되었을 때 한 명령을 내리신다. 17:10, “너희 남자는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언약이니라 그리하여 할례는 아브라함만이 아니라 그 후손들이 반드시 지켜야할 언약 백성의 증표가 된다. 하나님께서는 할례를 받지 않으면 언약백성에서 끊어질 것이라 말씀하셨다. 17:13-14, “너희 집에서 자든지 너희 돈으로 자든지 할례를 받아야 하리니 이에 언약이 너희 살에 있어 영원한 언약이 되려니와 [14] 할례를 받지 아니한 남자 포피를 베지 아니한 자는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니 그가 언약을 배반하였음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그 후손이 언약에 합당한 자가 되길 원하셨다. 99세에 아브라함은 할례를 행하며 자기 몸에 하나님의 언약을 새겨 넣었다. 그것은 영원히 하나님을 사랑하고 내 평생을 하나님과 함께 가겠다는 다짐이었다. 몸의 할례와 함께 아브라함은 그의 마음에도 분명 할례 받은 자로서의 다짐이 있었다. 그 후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백 세에 얻은 아들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고 명령하신다. 이 기괴한 명령에 아브라함이 순종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그의 몸과 마음에 할례의 언약이 살아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하나님께 순종하는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다. 내 의지, 내 뜻 보다도 하나님의 뜻이 중요하다.’ 그는 자신의 포피를 베면서 육신의 의지마저도 하나님 앞에서 베어버린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순종한 아브라함에게 다시 한번 언약의 말씀을 주신다. 창 22:16-17,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17]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이 말씀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언약적 축복이 이루어지는 전제는 몸뿐 아니라 그 마음에도 할례가 이루어진 때임을 알 수 있다.

 

아브라함 이후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다시금 할례에 대해 말씀하신다. 그것은 단순히 육신의 포피를 베는 할례가 아니라 마음의 가죽을 베는 마음의 할례였다. 모세가 가나안 땅을 앞에 둔 백성들에게 ‘마음의 할례’를 행하라는 이유는 분명했다. 그것은 이스라엘이 언약의 땅을 받기에 합당한 백성이 되라는 것이었다. 하나님의 약속은 아무에게나 던져지는 것이 아니다. 마음의 할례를 통해 ‘하나님께 속하여 그 분께 순종하는 자’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약속의 땅인 가나안에 이르기 전 백성들의 상태를 아셨다. 그들은 애굽에서 노예로 살았고 광야에서도 종종 노예 근성 때문에 멸망을 자초했다.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지 않고 여전히 노예처럼 살아간다면 그들에게 가나안은 무의미한 것이었다. 하나님은 광야2세대들에게 ‘하나님의 언약백성’이라는 분명한 정체성이 새겨지길 원했다. 그래서 요단강을 건넌 후 길갈에서 할례를 행하게 하신다. 할례를 행한 후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셨다. 수 5:9, “내가 오늘 애굽의 수치를 너희에게서 떠나가게 하였다 하셨으므로 그 곳 이름을 오늘까지 길갈이라 하느니라” 히브리어 ‘길갈’은 ‘굴러가게 하다’란 뜻이다. 하나님은 이곳에서 애굽의 수치가 굴러가게 하셨다. 애굽에서의 육신의 성향과 노예라는 자기이미지를 굴러가게 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할례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 안에 새로운 정체성을 심어주신 것이다. 과거 하나님과 상관없이 살던 정체성을 굴려버려야 이들이 가나안 땅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어내는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 살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할례를 통해 새롭게 된 마음은 하나님의 마음을 읽을 수 있게 한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방향을 볼 수 있게 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방향을 따라갔을 때 이스라엘의 대적들은 그러한 이스라엘을 막아설 수 없었다. 그러나 그들이 한 순간이라도 하나님의 뜻을 구하지 않고 스스로 전쟁에 나섰을 때 그들은 패배할 수밖에 없었다. 이스라엘 민족에게 가나안 땅에서 최대의 적은 가나안 족속들이 아니었다. 할례 받지 않는 마음으로 하나님과 상관없이 살아가는 그들 자신이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결국 가나안 땅을 선물로 받게 된다. 그러나 그 땅의 문화 속에서 살면서 그들은 처음 할례를 통해 새롭게 된 그들의 마음, 그들의 정체성을 놓치게 된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그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회개를 촉구했다. 렘 4:4, “유다인과 예루살렘 주민들아 너희는 스스로 할례를 행하여 너희 마음 가죽을 베고 나 여호와께 속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너희 악행으로 말미암아 나의 분노가 불 같이 일어나 사르리니 그것을 끌 자가 없으리라”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할례 받은 백성이라는 선민의식으로 살았다. 육신의 할례를 행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언약백성이 되었음을 자신했다. 그러나 그들은 언약백성답게 할례 받은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순종의 삶을 놓치고 말았다.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이 약속으로 받은 가나안 땅에서 쫓겨나고 만다.

 

그 후 하나님께서는 에스겔 선지자를 통해 다시 새 언약 백성을 일으키겠다고 선포하신다. 겔 36:24-26, “내가 너희를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인도하여 내고 여러 민족 가운데에서 모아 데리고 고국 땅에 들어가서 [25] 맑은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하게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 숭배에서 너희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26]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그것은 새 영을 통해 마음의 할례를 받은 백성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 약속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진다. 골 2:11, “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의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는 마음의 할례를 의미한다. 바울도 그 사실을 강조했다. 롬 2:28-29, “무릇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니라 [29]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영에 있고 율법 조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이제 육신의 할례를 한 유대인이 자동적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마음의 할례를 한 사람이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 된다는 것이다.

 

바울은 말한다. 갈 3:29, “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 정체성이 바뀌었다. 하나님의 언약이 마음에 새겨진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 된 것이다. 그리하여 하나님나라를 유업으로 받게 된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받을 유업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유업을 받기에 합당한 자로 사는 것이다. 구약의 백성들과 마찬가지로 우리 역시 마음에 할례 받은 자로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육의 몸을 벗는 것’을 ‘그리스도의 할례’라 정의한다. 육의 몸을 벗는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바울은 이어지는 구절에서 이렇게 말한다. 골 2:12,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육의 몸을 벗는 것은 나의 옛 자아가 세례와 함께 죽는 것을 말한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음에서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주님과 함께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나는 것을 말한다. 그리스도의 할례가 있어야 우리는 하나님의 언약백성으로 태어나는 것이다.

 

바울은 말한다. 롬 8:12-14,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13]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14]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나님이 약속하신 유업에 이르는 길은 하나님의 영, 성령의 인도를 따르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마음의 가죽을 베어내야 한다. 과거 나를 지배했던 육신의 성향을 제거해야 한다. 죄의 종으로 살아왔던 나의 옛자아에 대한 이미지도 굴려버려야 한다. 하나님의 언약백성으로 살기 위해 우리는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야 하는 것이다.

 

신명기서는 말한다. 신 30:6,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마음과 네 자손의 마음에 할례를 베푸사 너로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게 하사 너로 생명을 얻게 하실 것이며” 마음의 할례가 일어날 때 우리는 하나님을 마음과 목숨을 다해 사랑하게 된다. 나그네를 돌보며 이웃을 사랑하는 삶을 살게 된다. 그것은 율법의 요구를 완성하는 삶이며, 우리가 하나님이 약속하신 풍성한 유업을 얻는 삶이 되는 것이다.

 

바울 역시 진정으로 할례 받은 사람의 삶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빌 3:3,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파라” 마음의 할례가 있는 사람은 겸손히 봉사하며 남을 섬길 수 있는 사람이다. 자기의 영광이 아니라 공동체와 다른 사람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사람이다. 마음의 할례가 있는 사람은 자신을 자랑하지 않는다. 오직 예수님을 자랑하며 사는 사람이다. 마음의 할례가 있는 사람은 자신의 육체를 의지하지 않는다. 성령의 인도하심과 능력주심을 따라 움직이는 사람이다.

 

하나님은 육에 속한 백성을 원하시지 않는다. 자신을 진정으로 따르는 순종하는 백성을 원하신다. 이스라엘 백성은 비록 하나님의 언약백성으로 선택되었지만 그 마음에 할례를 받지 못하고 순종하지 못함으로 언약 백성에서 끊어지고 말았다.

 

하나님께서는 그 후 하나님의 언약 백성을 일으키기 위해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다.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기 위해 오신 예수님을 믿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 된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음에서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 된다. 즉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는 자가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언약 백성으로 마음의 할례를 받아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 때 우리는 언약 백성의 부르심을 다하는 자들이 되는 것이다.

 

내가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 되는 것은 너무도 중요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사실이 있다면 내가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라는 부르심을 따라 그분이 의도하신 언약이 내 삶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더욱 중요한 것이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마음의 할례가 필요하다. 과거 예수 믿기 전 모든 노예 근성과 내 삶에 쌓였던 애굽의 수치를 굴려내야 한다. 죄에 너무 쉽게 굴복하는 내 육신의 성향을 제거해야 한다. 그리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라는 정체성으로 서야 한다. 성령을 통해 우리 마음에 할례가 이루어질 때 우리의 삶을 향한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고, 하나님의 방향을 보게 될 것이다. 그것이 내 상식과 내 의지를 뒤엎는 요구일 수 있다. 그러나 세상에 마음 빼앗기지 않고, 사람과 환경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직 주님 뜻을 따르겠나이다’라고 결단하며 나아갈 때,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얻는 언약백성으로 살게 되는 것이다.

 

내가 지금까지 교회를 얼마나 오래 다녔는지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할례 받은 자로 지금 살고 있는가가 중요하다. 바라기는 지금 이스라엘에서의 시간이 우리의 죄와 수치를 굴려버리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예수님을 믿을 뿐 아니라 마음에 할례 받은 자로 살아가는 삶이 되길 바란다.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삶이 되길 바란다. 그리하여 우리에게 주어진 언약 백성으로의 초대가 주님 오실 때까지 이어지는 삶이 되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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