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포션 34 안식의 조건

텔아비브 욥바교회 2021년 6월 5일 설교 이익환 목사

신약포션 34 안식의 조건

또 하나님이 누구에게 맹세하사 그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느냐 곧 순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에게가 아니냐 이로 보건대 그들이 믿지 아니하므로 능히 들어가지 못한 것이라” (3:18-19)

영국 프리미어 리그 첼시 감독으로 부임한 투헬은 시즌이 한창 진행 중이던 어느 날, 한 동영상을 보여준다. 선수들은 다른 팀의 경기 영상일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것은 어느 맥주 광고 영상이었다. 148명의 문신한 바이커족들 사이에 남은 두 자리에서 영화를 보는 일은 불편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용기 있게 자리를 찾은 커플에게 바이커 아저씨들은 환호하며 맥주를 건네준다. 투헬 감독은 왜 이 영상을 보여줬을까? 투헬은 이 영상을 통해 보이는 것에 지배 당하지 말고, 어떤 상황에서도 두려움을 가져서는 안된다고 선수들에게 강조했다고 한다. 그가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스스로를 믿고, 자신감을 갖고, 마음 속의 의심을 이기라는 것이었다. 그가 부임했던 4개월 전만해도 첼시는 리그 9위였다. 그런데 투헬은 이 팀을 가지고 올 해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룬다. 이것은 승리에 있어서 선수들의 마음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극적인 예이다. 그들의 실력은 단기간에 크게 나아질 수 없었다. 그러나 변한 건 그들의 마음가짐이었다. 투헬이 그들에게 불어 넣은 것은 winning mentality였고, 그것이 다른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오늘 본문은 1세기 당시 예수님을 믿는 유대인들에게 보낸 편지다. 당시 유대인 신자들은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동족 유대인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했다. 신앙 때문에 경제 활동도 힘들어지면서 그들의 마음이 위축되기 시작했다. 그들 중에는 현실의 어려움을 극복하지 못하고 다시 유대교로 돌아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에 히브리서 기자는 그들의 마음의 문제를 다루기 위해 편지 한다. 오늘 그 내용이 무엇인지 살펴보며 우리 마음의 문제를 점검하는 시간이 되길 원한다.

3:7-8, “그러므로 성령이 이르신 바와 같이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광야에서 시험하던 날에 거역하던 같이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히브리서 기자는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그랬던 것처럼 너희도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고 권면한다. 여기서 ‘완고하다’라는 말은 헬라어로 ‘스클레뤼노(σκληρύνω)’다. ‘마르다, 굳어지다, 거칠어지다, 사나와지다’란 뜻이다. 광야라는 환경을 만나게 되면 보통 사람들의 마음은 메말라지고 굳어진다. 거칠어지고 사나와진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랬다. 그들이 르비딤에 도착했을 때 마실 물이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모세와 다투게 된다. 결국 모세는 반석을 쳐서 그들에게 물을 공급해준다. 모세는 그곳 이름을 맛사와 므리바라고 부른다. 17:7, “그가 이름을 맛사 또는 므리바라 불렀으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다투었음이요 또는 그들이 여호와를 시험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 계신가 하였음이더라 맛사는 ‘시험하다’라는 뜻이고, 므리바는 ‘다투다’라는 뜻이다. 백성들은 광야라는 환경이 지속되자, 그들의 지도자였던 모세와 다투었고, 또한 하나님이 계신지 안 계신지를 의심했다.

사람들이 완고해 지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마음이 미혹되기 때문이다. 3:10, “그러므로 내가 세대에게 노하여 이르기를 그들이 항상 마음이 미혹되어 길을 알지 못하는도다 하였고 미혹된 마음은 환경에 따라 요동치는 마음이다. 환경을 보며 마음이 미혹되는 사람은 쉽게 낙심하고 짜증을 낸다. 어려움이 있거나, 하는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주변 사람들과 싸우는 사람들이 있다. 마음이 미혹된 사람들이다. 미혹되었다는 것은 속아서 넋을 잃게 되는 상태를 말한다. 보이는 환경 때문에 사람들은 잘 속는다. 그러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시비를 건다. 다른 사람에게 원망을 쏟아낸다. 그들은 하나님이 광야를 허락하실 때 믿음으로 그 광야를 바라보지 못하고, 그런 환경을 허락하신 하나님을 의심한다. 그러면서 마음이 딱딱하게 굳어지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에게 ‘그들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신다.

사람들은 또한 언제 마음이 완고해지는가? 그것은 하나님을 믿지 못할 때이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권면한다. 3:12, “형제들아 너희는 삼가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한 마음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조심할 것이요모든 삶의 환경 속에서 역사하시는 살아 계신 하나님을 믿지 못할 때 사람들의 마음은 완고해 진다. 이번 주 토라포션에는 가나안 정탐 사건이 나온다. 그 사건은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믿지 못하여 마음이 완고하게 된 전형적인 예다. 열 명의 정탐꾼들은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우리가 가나안 땅에서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다’라고 보고한다. 그리고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라고 말한다. 그들은 두려움에 지배되어 winning mentality가 아니라 losing mentality를 갖게 된 것이다. 열 명의 정탐꾼의 눈에는 가나안 땅의 거인만 보였다. 그들은 상황의 불리함만 묵상하며 두려움을 키웠다. 두려움이 주는 환타지를 따라가다가 결국 그들의 마음이 굳어져버린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오히려 가나안 족속들이 그들 때문에 떨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우리는 그 사실을 여리고에 살던 기생 라합의 말을 통해서 알 수 있다.  2:9-11, “말하되 여호와께서 땅을 너희에게 주신 줄을 내가 아노라 우리가 너희를 심히 두려워하고 주민들이 너희 앞에서 간담이 녹나니 이는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홍해 물을 마르게 하신 일과 너희가 요단 저쪽에 있는 아모리 사람의 시혼과 옥에게 행한 그들을 전멸시킨 일을 우리가 들었음이니라 우리가 듣자 마음이 녹았고 너희로 말미암아 사람이 정신을 잃었나니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위로는 하늘에서도 아래로는 땅에서도 하나님이시니라 참 아이러니하다. 가나안 족속들이 이렇게 떨고 있었는데, 열 명의 정탐꾼들은 일부 거인들 만을 보고서 두려워 떨었던 것이다.

이들이 느낀 두려움은 삽시간에 온 백성에게 전염된다. 온 회중이 밤새 통곡하며 울부짖게 된다. 그들은 모세와 아론을 원망했고, 그들을 인도해 내신 하나님까지 원망했다.  14:3,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쓰러지게 하려 하는가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 두려움은 그동안의 하나님의 역사를 부정하게 만든다. 미래의 두려움 때문에 출애굽의 위대한 구원은 과거로 끝난 역사가 된다. 그들의 결론은 한 지휘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는 것이었다. 불안에 사로잡힐 때 사람들이 쉽게 하는 것은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다. 익숙했던 과거를 회상하며 거기서 거짓 안전감을 누리려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애굽에서 종이었고, 고된 노역에 시달리며 못살겠다고 아우성쳤던 것을 망각한 것이다.

지금 여러분이 누군가를 원망하고 있다면 그것은 여러분이 뭔가를 두려워하고 있다는 증거다. 두려움 너머 계신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다. 두려움은 잘못된 선택으로 인도한다. 미래 지향이 아니라 과거로 퇴보하는 결정을 내리게 한다. 하나님이 예비하신 가나안이 아니라 다시 애굽이란 과거로 돌아가는 결정을 내리게 한다. 그래서 두려움은 우상이다. 마음 속에 하나님이 계셔야 할 자리를 그 두려움이 대신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열명의 정탐꾼과 달리 여호수아와 갈렙은 믿음의 보고를 한다. 14:7-9,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다만 여호와를 거역하지는 말라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여호수아와 갈렙은 winning mentality를 가진 것이다. 그들의 용기는 만용이 아니었다. 그들의 용기는 출애굽 과정에서 함께하셨던 하나님에 대한 믿음에서 나왔다. 그들의 용기는 가나안 땅을 그들에게 주시겠다는 하나님 말씀에 대한 신뢰에서 나온 것이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세상을 위험이 가득한 곳으로 본다. 자기 힘만으로 그러한 위험들을 통제하고 정복하려 하니 감당이 안 되는 것이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들은 세상을 다르게 바라 본다. 물론 그들이라고 전혀 다른 세상에 사는 것이 아니다. 그들도 똑같이 위험이 가득한 세상에 산다. 그러나 세상에 가득한 위험은 믿음의 사람들을 좌절시키지 못한다.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이라는 함수를 항상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역사는 이처럼 보이는 현상을 믿음으로 해석하고, 그 믿음으로 행동을 결정하는 사람들을 통해 진행되는 것이다. 

찌찌트(ציצת)

이번 주 토라포션은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끝난다.  15:37-40,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대대로 그들의 옷단 귀에 술을 만들고 청색 끈을 귀의 술에 더하라 술은 너희가 보고 여호와의 모든 계명을 기억하여 준행하고 너희를 방종하게 하는 자신의 마음과 눈의 욕심을 따라 음행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라 그리하여 너희가 모든 계명을 기억하고 행하면 너희의 하나님 앞에 거룩하리라 정통 유대인들의 옷을 보면 셔츠 끝에 실 가닥이 달려있는 것이 있다. ‘찌찌트(ציצת)’라고 불리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이 민수기서의 말씀을 실천하기 위해 지금도 그들 셔츠에 찌찌트를 달고 다닌다. 모세는 이 계명의 목적을 이렇게 말한다. “너희를 방종하게 하는 자신의 마음과 눈의 욕심을 따라 음행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라.” ‘베 로 타투르 아하레이 레바베켐(ולא תתרו אחרי לבבכם).’ 이 말을 직역하면 이렇다. ‘너희의 마음을 따라 정탐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이번 주 토라포션의 정탐이야기는 이처럼 찌찌트를 보며 너희 마음대로, 너희 눈이 보는 대로 정탐하지 말라고 결론을 내리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라는 환경 때문에 하나님을 바라보던 그들의 시선을 빼앗겼다. 그리고 거인과의 대결이라는 미래의 두려움 때문에 마음이 완악해졌다. 그들은 하나님의 언약을 기억하지 못했다. 그저 그들의 불안한 마음을 따라 상황을 해석하고, 눈으로 본 현상에 미혹되어 마음이 완악해지고 말았다. 그 결과 그들은 가나안 땅이라는 안식에 들어가지 못하고 모두 광야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불안한 미래를 예측하는 건 언제나 쉽지 않다. 코로나라는 거대한 거인이 버티고 있는 미래는 더더군다나 쉽지 않아 보인다. 불안한 상황 속에서 우리가 눈으로 본 것과 마음으로 느끼는 것만을 따라 행동할 때 우리는 잘못된 방향으로 가기 쉽다. 무엇을, 어떻게 보는가가 중요하다. 겉으로 드러난 표면의 현상만 보는 것은 우리를 전진하지 못하게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그것으로 현상을 해석한다면 우리는 불안한 환경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에 따라 발걸음을 옮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예비하신 안식에 들어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히브리서 기자는 안식으로 들어가는 조건을 결론적으로 이렇게 말한다.3:18-19, “또 하나님이 누구에게 맹세하사 그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느냐 곧 순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에게가 아니냐 이로 보건대 그들이 믿지 아니하므로 능히 들어가지 못한 것이라이 말을 뒤집으면 결국 믿음으로 순종하는 자가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안식에 들어가기 위해 우리는 우리 마음의 완고함을 처리해야 한다. 그리고 계속해서 순종을 결단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생각해 보라. 광야가 없으면 믿음을 일으킬 기회도 없게 된다. 아낙 자손이라는 거인이 없으면 하나님을 의지할 기회도 없게 된다. 하나님은 광야에서도, 가나안에서도, 끝까지 믿음을 견지한 세대를 일으키기 원하셨다. 상황 때문에 믿음이 꺾이지 않고 마음이 완고해 지지 않는 세대를 만들기 원하셨다. 그래서 하나님은 때로 우리 앞에 광야를 두시고, 아낙 자손이라는 거인을 보게 하시는 것이다. 

우리의 인생 여정에서 두려움을 주는 상황들은 앞으로도 계속 닥쳐올 것이다. 불확실성과 불안은 앞으로 더더욱 우리의 일상적인 경험으로 다가올 것이다. 우리는 과거로 돌아간다고 해서 안전한 것이다. 미래의 불안 요소를 피한다고 해서 안전한 것이 아니다.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우리는 상황과 상관 없이 하나님이 주시는 안식을 누려야 하는 것이다. 어느 시대이든 안식을 누리는 조건이 있다. 그것은 바로 믿음이다. 그것은 바로 마음이 완고해 지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끊임없이 하나님 한 분을 소망하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불안한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이 허락하시고 예비하신 가나안으로, 안식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바라기는 광야와 같이 불안한 세상 속에서 보이는 것으로 마음을 빼앗기지 않기를 축원한다. 비록 힘든 상황들이 앞에 놓여있다 해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반드시 통과한다는 winning mentality를 가질 수 있길 축원한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안식으로 들어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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