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포션 35 명작(名作)의 용도

텔아비브 욥바교회 2021년 6월 12일 설교 이익환 목사

신약포션 35 명작(名作)의 용도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2:10)

예술가는 자신의 작품에 영혼을 담는다. 이태리 장인도 한 땀 한 땀 자신의 작품에 정성을 쏟는다. 그리하여 명작, 마스터피스(masterpiece)가 탄생한다. 하나님께서 흙을 빚어 사람을 만드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셨을 때 사람은 살아 있는 생명체가 되었다. 아담은 그렇게 하나님의 형상이 있는 하나님의 작품이 되었다. 단순한 로봇이 아니라 자유의지를 지닌, 그래서 하나님을 거역할 수도 있는 자유로운 인간이 탄생한 것이다. 흔히 예술가는 그가 만든 예술 작품과 동일시 된다. 그처럼 아담은 그를 만드신 하나님과 뗄레야 뗄 수 없는 하나님의 분신이 된 것이다. 여러분이 하나님이었다면 그 때의 감동이 어땠을까? 성경은 그 장면을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기록한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에베소 교회 성도들을 향해 ‘우리는 하나님이 만드신 바’라고 고백한다. 여기서 ‘만드신 바’가 헬라어로 ‘포이에마(ποίημα)’다. 포이에마는 ‘명작, 마스터피스’라는 뜻이다. 바울은 아담 뿐만이 아니라 신약 백성인 우리도 하나님의 명작, 마스터피스라고 말하고 있다. 여러분은 이 사실이 믿어지는가? 바울은 어떤 근거로 이런 말을 하는지 함께 살펴보며 은혜를 나누고자 한다.

바울은 우리가 하나님의 명작이 된 과정을 세 개의 동사로 표현한다. 2:5-6,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바울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함께 일으키셨고, 또 ‘함께 하늘에 앉히셨다’고 표현한다. ‘함께 살리셨다’는 건 헬라어로 ‘쉬네조오포이에센 (συνεζωοποιησεν )’이다. ‘죽은 사람을 다시 살리다’라는 뜻이다. ‘함께 일으키다’는 헬라어로 ‘쉬네게이렌(συνήγειρεν)’이다. 잠에서 눈을 뜨게 하다’란 뜻이다. 즉 ‘영의 눈을 뜨게 하다’란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함께 하늘에 앉히시다’는 ‘쉬네카디센(συνεκάθισεν)’이다. ‘함께 자리 잡아 앉히다’란 뜻이다. 세 단어 모두 ‘함께’라는 뜻의 ‘쉰(συν)’이란 접두어가 붙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새로운 피조물로 만드실 때는 아담을 만드실 때 없었던 새로운 과정이 도입되었다. 그것은 우리의 새 창조가 예수님과 함께 일어났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죽음에서 살리셨을 때, 우리도 죄와 죽음에서 다시 살아난 것이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죽음에서 일으키셨을 때, 우리의 영혼도 잠에서 깨어 부활한 것이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하늘 보좌에 앉히셨을 때, 우리도 그분과 함께 하늘의 영광스런 자리에 앉게 된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믿는 순간 우리에게 일어난 새 창조인 것이다.

이 창조의 특징이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께서 예수님께 허락하신 모든 축복이 우리에게도 쏟아졌다는 것이다. 즉 죽음에서 부활하는 권세가 우리에게도 주어진 것이다. 하늘 나라에서의 영광이 우리에게도 약속된 것이다. 하나님의 작품인 우리들에게 권세와 권위의 확장이 일어난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분의 명작, 마스터피스로 만드신 이유는 뭘까? 오늘 본문에서는 그 이유를 두 가지로 설명한다. 2:7,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하나님이 우리를 만드신 첫번째 이유는 하나님의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기 위해서이다. 또 다른 이유를 보자.2:10,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만드신 두번째 이유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행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모든 작품에는 용도가 있다. 그것은 작가의 의도 대로 사용되는 것이다. 바울이 말한 것처럼 토기장이는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으로, 하나는 천히 쓸 그릇으로 만들 권한이 있다. 그릇은 귀한 것이든 천한 것이든 깨끗하게 비워져 있어야 주인이 쓸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아담을 빚으셨을 때 하나님이 원하신 것은 그가 그의 자유의지로 순종을 선택하는 자가 되는 것이었다. 하나님은 아담을 청지기로 삼아 세상의 모든 만물을 선하게 다스리게 하시려는 의도가 있었다. 그러나 아담은 불순종으로 타락한다. 그리하여 주인이 쓸 수 없는 더럽혀진 그릇으로 전락하고 만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선택하셨을 때 하나님이 원하신 것은 이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가 되는 것이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열방의 제사장으로 삼아 세상이 다시 주님께 돌아오게 하시려는 의도가 있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불순종과 거역으로 작가의 의도에서 벗어나고 만다. 그 대표적인 사건이 이번 주 토라포션에 나오는 고라의 반역 사건이다. 순종하느냐, 불순종하느냐는 우리가 하나님께 쓰임 받느냐 못 받느냐를 결정하는 가장 결정적인 단서이다. 고라는 그런 측면에서 반면교사가 되기 때문에 이 사건을 좀더 자세히 살펴보고자 한다.

16:1-2, “레위의 증손 고핫의 손자 이스할의 아들 고라와 르우벤 자손 엘리압의 아들 다단과 아비람과 벨렛의 아들 온이 당을 짓고 이스라엘 자손 총회에서 택함을 받은 자 곧 회중 가운데에서 이름 있는 지휘관 이백오십 명과 함께 일어나서 모세를 거스르니라모세에게 대적한 중심 인물은 고라였다. 그는 레위 지파로 모세, 아론과는 사촌지간이었다. 구약의 유대 주석서인 미드라쉬에 의하면 고라는 애굽에서 요셉의 보물을 발견하여 큰 부자가 되었다고 한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강제 노동에 이용될 때 애굽 관원에게 할당 인원을 조달해주는 역할을 했다고 한다. 그는 당시 애굽에서 이스라엘 사람으로서는 최고의 권세를 누렸던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광야로 나왔으니, 광야 생활이 힘들수록 불만이 커질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가나안 정탐 사건 이후 이스라엘 백성들은 앞으로 광야 생활이 40년 더 지속될 것이라는 하나님의 선언을 들었다. 그리고 출애굽 1세대들은 결국 자신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할 운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런 위기 상황에서 고라는 반역이라는 카드를 꺼내든 것이다. 그 반역에게 동참한 자는 다단과 아비람과 온이라는 사람이었다. 그들은 모두 르우벤 자손이었다. 르우벤은 야곱의 장자였다. 그러나 광야에서 금송아지 사건 이후 그들의 장자의 역할은 에브라임 지파에게 넘어가고, 제사장직은 레위지파가 차지한다. 원래 장자 지파였지만 그 지위를 박탈 당한 르우벤 지파는 한마디로 현 지도부에 대해 불만세력이 되었던 것이다. 반역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이처럼 힘을 가져봤거나 여전히 힘이 있는 사람이 하는 것이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우리가 하나님의 작품이 되기 이전 상태를 이렇게 묘사한다. 2:2,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여기서 공중의 권세 잡은 자는 사탄을 말한다. 사실 모든 반역의 기원은 사탄이다. 사탄은 자기 지위에 만족하지 않고 하나님께 반역한 천사다. 그는 하나님의 보좌 위에 자기 보좌를 높이려고 하나님께 반역한 존재다. 그는 자신만이 아니라 이 세상의 불순종의 아들들을 찾아 하나님의 선하신 일을 방해하길 원한다.  그래서 찾아낸 불순종의 아들들이 바로 고라였고, 다단과 아비람과 온이였던 것이다. 정탐 사건 이후 이스라엘 백성들은 불안과 불만 가운데 있었을 것이다. 세상 풍세를 보니 그들에겐 반역이 답이었다.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 역사하는 영은 그들의 합리적인 생각을 부추겼을 것이다. 고라는 이처럼 하나님의 선하신 의도보다는 세상 다수가 원하는 분위기를 따라 반역을 결심했을 것이다. 그러나 고라의 반역은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으로 인도하시려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에 어긋난 것이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반역을 처리하셔야 했다. 결국 땅이 열리고 고라 편에 선 자들은 모두 그 땅에 삼켜졌다. 그들은 하나님의 의도대로 쓰임 받을 수 없었기에 용도 폐기된 것이다. 정말 무서운 일이다.

하나님은 결국 당신의 아들을 통해 하나님의 선하신 일을 이어가기 원하셨다. 아들을 선택하셨을 때 하나님이 원하신 것은 한 가지였다. 아들의 순종이었다. 아들의 순종을 통해 배역의 역사를 끝내고 모든 인류가 하나님과 화해하는 길을 여는 것, 그것이 하나님의 의도였다. 바울은 그 사실을 이렇게 선포한다.5:19,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예수님은 이처럼 순종을 통해 하나님의 의도를 다 이루신 하나님의 마스터피스가 되셨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믿기로 한 우리 역시 당신의 명작, 포이에마가 되게 하셨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한 가지다. 우리를 만드신 분의 의도에 순종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예비하신 길을 따라 행하는 것이다. 그것이 생명으로 가는 길이며,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 은혜의 풍성함을 나타내는 삶이 되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하나님의 포이에마인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뭘까? 그것은 거역의 영에 사로잡히지 않는 것이다. 이 세대의 풍조를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뜻만 따르는 것이다. 그래야 우리는 우리를 만드신 작가의 의도대로 쓰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권면한다. 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작가의 의도를 살리지 못하는 작품은 그것이 아무리 명작이어도 용도 폐기되는 것이다. 쓰임 받지 못하는 것이다.

지금은 기존의 권위에 저항하는 것이 쿨한 것으로 평가되는 시대이다. 지금 세대는 자신의 기호에 맞는 권위자가 나타날 때까지 아무에게도 순종하지 않고 삐딱하게 사는 것을 자랑하는 세대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이 세우신 권위들을 통해 진행된다. 이 세상에 불순종의 아들들은 힘을 규합하여 하나님이 세우신 권위를 흔들려 한다. 그리고 공중 권세 잡은 자가 좋아하는 세상 왕국을 세우려 한다. 그것이 아무리 화려하고 좋아 보여도 그것은 사탄의 왕국인 것이다. 지금 이 세상은 많은 것들이 하나님이 세우신 교회의 권위, 가정의 권위를 흔들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작품인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의도를 알아야 한다. 하나님이 세우신 권위가 누구이며 하나님의 계획이 무엇인지 알고 거기에 순종해야 한다. 모든 지파의 리더들이 모세를 대적하여 설 때 오직 여호수아와 갈렙만 모세의 편에 섰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들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으로 이끄셨다. 바라기는 하나님의 선하신 의도를 알고 그것에 순종함으로 하나님께 쓰임 받는 우리 모두가 되길 축원한다. 세상에서는 좁은 길로 보여도 결국 가나안에 이르는 길을 선택하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길 바란다. 우리를 만드신 하나님의 의도를 알아 그 의도대로 아낌 없이 순종하고 헌신함으로 하나님 앞에 작품과도 같은 삶을 살게 되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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