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포션 42 강자의 조건

텔아비브 욥바교회 2021년 7월 31일 설교 이익환 목사

신약포션 42 강자의 조건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마태 5:3-5)

올림픽이 한창이다. 우리는 이런 대회를 통해 강자가 승리하는 현장을 보게 된다. 세상은 강자를 주목한다. 강자가 승리하고, 강자가 살아남기 때문이다. 강대국의 비밀이란 다큐멘터리를 만든 이주희 PD는 그의 책 ‘강자의 조건’에서 로마, 영국, 몽골, 네덜란드, 미국이 강대국이 될 수 있었던 조건을 밝힌다. 그 공통적인 조건이 뭐였을까? 그것은 ‘관용’이었다. 이 나라들은 관용의 정신을 통해 다양한 민족들을 받아들이고, 그 민족의 뛰어난 인재들과 함께 기술 혁신을 이루어 강대국이 되었다는 것이다. 강자는 또 다른 강자에 의해 정복을 당한다. 그러나 관용을 가진 강자는 그 관용을 유지하는 한 오랜 기간 강자의 위치를 유지하게 됨을 역사는 말하고 있다. 오늘 본문은 우리가 잘 아는 팔복이다. 예수님은 산상 설교를 통해 하나님 나라에서 강자의 조건을 말씀하신다. 오늘은 그 몇 가지 내용을 살펴보며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한다.

5: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하나님 나라를 누가 소유하는가? 부자도, 좋은 대학 나온 사람도 아니다. 하나님 나라는 심령이 가난한 자가 소유한다. 여기서 ‘가난한 자’는 부자나 권력자들의 경제적 수탈과 억압에서 스스로 자신을 구원할 능력이 없는 사람을 가리킨다. 따라서 이 가난한 자들은 오직 하나님의 도우심 만을 의지할 수밖에 없다. 심령이 가난한 자란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절히 바라는 자이다. 하나님이 아니면 아무 것도 할 수 없기에 하나님께 매달리는 사람이다. 다윗은 가난하고 궁핍한 시절을 겪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기도했다. 40:17,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나 주께서는 나를 생각하시오니 주는 나의 도움이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라 나의 하나님이여 지체하지 마소서 다윗은 심령이 가난한 자가 되어 하나님 한 분만 의지했다. 하나님은 이런 다윗을 주목하셨고, 그를 중심으로 하나님 나라를 진행시키셨다. 하나님 나라는 경쟁에서 살아남은 자가 쟁취하는 제국이 아니다.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자가 얻고 누리게 되는 나라다. ‘복이 있나니’라는 말은 하나님이 복을 주시는 주체임을 말해준다. 내가 착해서, 내가 의로워서 그것에 대한 보상으로 받는 게 하나님 나라가 아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순종하는 자에게 전적인 은혜로 주시는 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인 것이다.

5:4,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애통은 고통에 대해 슬퍼하는 것이다. 그래서 애통하는 자는 자신과 타인의 고통에 대해 슬퍼하는 사람이다. 특히 이 애통은 죄로 인해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갈라놓은 불의에 대한 애통이다. 그 고통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진지하게 묻고 발견하려는 애통인 것이다. 애통하는 자가 있을 때 회개가 일어난다. 또한 애통하며 회개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위로의 손길로 다가오신다. 우리는 세상의 소유나 성공으로 위로 받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위로’라는 말은 헬라어로 ‘파라칼레오’이다. ‘곁에서’란 단어와 ‘부르다’란 단어가 합쳐진 말이다. 하나님이 우리 곁에서 우리의 이름을 불러주실 때 우리는 진정한 위로를 경험하게 된다. 하나님께 위로를 경험한 사람은 다른 것을 통해 위로받기를 구하지 않는다. 그런 사람은 세상에 흔들리지 않는 강한 자가 되는 것이다.

5:5,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이 말은 다윗이 쓴 시편에서 온 것이다.37:11, “그러나 온유한 자들은 땅을 차지하며 풍성한 화평으로 즐거워하리로다다윗은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그는 선하신 하나님을 신뢰하며, 끝까지 온유함을 잃지 않았다. 그런 그에게 하나님은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기업으로 허락하셨다. 세상의 정복자들은 강한 힘과 권력으로 땅을 정복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온유함으로 온 세상과 하나님 나라의 주인이 되셨다. 하나님 나라는 오직 온유한 자를 통해 이 땅에 세워지는 것이다.

이번 주 토라포션에서 우리는 이 팔복의 주제를 발견하게 된다. 7:12, “너희가 이 모든 법도를 듣고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지켜 네게 인애를 베푸실 것이라이스라엘이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복을 받는 조건은 한 가지 였다. 하나님의 법을 듣고 지켜 행하는 것이었다. 세상의 다른 제국들처럼 군사력과 경제력을 키워 힘을 가진 나라가 되는 것은 그들의 목표가 아니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택하신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7:7,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기 때문이 아니니라 너희는 오히려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택하신 것은 그들이 특별해서가 아니었다. 그들의 의가 다른 민족보다 뛰어나서도 아니었다. 이스라엘은 다른 제국들과 비교해 볼 때 너무도 작고 보잘 것 없는 민족이었을 뿐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작은 나라를 강하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 11:23, 25, “여호와께서 그 모든 나라 백성을 너희 앞에서 다 쫓아내실 것이라 너희가 너희보다 강대한 나라들을 차지할 것인즉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밟는 모든 땅 사람들에게 너희를 두려워하고 무서워하게 하시리니 너희를 능히 당할 사람이 없으리라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 약속을 하시기 전 이스라엘에게 부탁하신 것이 있다. 그것은 작은 이스라엘이 강자로 남을 수 있는 조건이었다. 두 가지만 살펴보겠다. 먼저 그들이 강자로 남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잊지 않아야 했다. 8:11-14, “내가 오늘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법도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지 않도록 삼갈지어다 네가 먹어서 배부르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주하게 되며 또 네 소와 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염려하노라이스라엘 백성들은 집 없이 40년을 광야에서 방황했다. 마실 물도, 제대로 된 음식도 없어서 힘든 시절이었다. 적에게 공격을 받았던 때도 있었다. 그들에게 그러한 어려움들이 시험이었을 수 있다. 그러나 진정한 시험은 광야가 아니라 가나안에서 있게 된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진정한 도전은 가난이 아니라 풍요였다. 그들이 노예였던 때가 아니라 자유인이었을 때였다. 그들에게 집이 없을 때가 아니라 집이 있을 때였다.  

한국에 오니 먹을 것이 너무 많다. 끼니 때마다 뭘 먹을까 행복한 고민을 하게 된다. 격리가 끝나고 나니 배가 더 나왔다. 이스라엘에선 참 단순한 삶을 살았는데, 한국에 오니 배부른 자로 살게 된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결정하는데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된다. 우리야 이스라엘에 가면 다시 심플 라이프로 돌아가겠지만 한국에 사는 분들은 풍요가 신앙의 도전이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스라엘이 번성하느냐 멸망하느냐는 풍요의 때를 어떻게 보내느냐에 달려 있었다. 그것은 다른 제국들도 마찬가지였다. 풍요와 권력과 명성을 가졌을 때 하나님을 잊어버린 제국들은 자멸의 길로 갔다. 하나님은 이제 풍요의 땅으로 들어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다음과 같이 경고하셨다. 8:19,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다른 신들을 따라 그들을 섬기며 그들에게 절하면 내가 너희에게 증거하노니 너희가 반드시 멸망할 것이라풍요가 하나님을 향한 갈망을 잠재우는 늪이 되어선 안된다. 성공이 하나님의 손을 놓고 혼자 달려가는 경주가 되어선 안된다. 하나님을 잊지 말라. 먹어서 배부르고 아름다운 집을 장만하고, 좋은 차에 주식이 증식되며 소유가 다 풍부한데, 한 가지 하나님을 잊고 산다면 돌이켜야 한다. 하나님께 돌아가야 한다.세상에서는 물질을 많이 소유한 자가 강한 자처럼 보이나, 정말 강한 자는 하나님 한 분을 소유한 자이다. 그분의 강한 손과 편 팔을 의지하는 자인 것이다.

이스라엘이 강자로 남기 위한 두번째 조건은 정의와 사랑을 행하는 것이었다. 10:12-13,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의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 내가 오늘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를 지키는 것은 하나님을 위한 것도 아니다. 우리의 행복을 위한 것이다. 10:17-19,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신 가운데 신이시며 주 가운데 주시요 크고 능하시며 두려우신 하나님이시라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시며 뇌물을 받지 아니하시고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정의를 행하시며 나그네를 사랑하여 그에게 떡과 옷을 주시나니 너희는 나그네를 사랑하라 전에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음이니라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않는다. 그런데 한국에 나와보니 자꾸 외모에 신경 쓰게 된다. 이스라엘에서는 대충 입고 다녀도 괜찮았는데, 한국에 나와 보니 내가 참 촌스러웠구나 새삼 느껴졌다. 모세는 계속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 묘사한다. ‘하나님은 뇌물을 받지 않으신다.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정의를 행하신다. 나그네를 사랑하여 그에게 떡과 옷을 주시는 분이다.’ 모세가 이렇게 하나님을 묘사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도 하나님처럼 살라는 도전이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더욱 닮아가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동참하도록 권면을 받는다. 우리가 하나님이 하셨던 일들을 더 많이 행할수록, 우리가 더 많은 사랑과 관용으로 이웃을 대할수록 이 세상엔 하나님 나라가 임하게 될 것이다. 세상에서는 군림하는 자가 강한 자처럼 보이겠지만, 하나님 나라에서는 이처럼 하나님 나라의 통로가 되는 자가 강한 자인 것이다. 사람들은 부와 권력을 쥐게 되면 더 이상 가난한 사람과 약자를 돌보는 것이 자신의 의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그들은 그들이 가진 부와 권력이 그들의 당연한 소유라고 느끼기 시작한다. 그러나 청지기처럼 잘 사용하라고 주신 부와 권력을 자신의 소유로 여기게 될 때 그 인생의 위기가 시작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가나안을 소유하게 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렇게 경고하셨다. 9:5-6, “네가 가서 그 땅을 차지함은 네 공의로 말미암음도 아니며 네 마음이 정직함으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이 민족들이 악함으로 말미암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심이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하심은 네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맹세를 이루려 하심이니라 그러므로 네가 알 것은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이 아름다운 땅을 기업으로 주신 것이 네 공의로 말미암음이 아니니라 너는 목이 곧은 백성이니라부와 권력이 따를 때 우리는 겸손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얼마나 목이 곧은 자인지 아신다. 그럼에도 믿음의 조상들에게 하셨던 약속을 이루시려고 우리를 축복하시는 것이다. 우리를 축복하셔서 하나님 나라를 이 땅 위에 펼쳐가시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겸손히 하나님의 정의와 사랑의 통로가 되어 나그네를 사랑하는 자가 될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가나안을 기업으로 주시는 것이다.

지금은 자기 이익을 위해 살기도 바쁜 세상이다. 재난과 위기가 터지면서 세상은 점점 더 ‘공존’보다는 자신의 ‘생존’만을 위해 살기에도 버거워지고 있다. 우리는 세상의 풍조와 타협하지 않으며 어떻게 세상 속에서 강한 자로 살 수 있을까? 그것은 우리가 주님을 닮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심령이 가난한 자, 애통하는 자, 온유한 자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처럼 인애와 사랑을 베푸는 자가 되는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 나라에서 강자의 조건인 것이다. 인애는 히브리어로 ‘헤세드’다. 이스라엘은 헤세드가 없어져 멸망했다. 헤세드의 사람이 있다는 것은 아직 그 사회에 소망이 있다는 것이다. 세상은 점점 더 인애보다는 무자비함이 우선시되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애를 가진 자를 찾으신다. 헤세드의 사람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구원 역사를 이루어가시기 원하신다. 시대를 탓하지 말고, 환경을 탓하지 말고, 사람을 탓하지 말고 우리는 헤세드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 헤세드는 선택하는 것이다. 내가 손해보더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기꺼이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다. 이처럼 헤세드는 나의 손해를 전제로 하는 것이다. 내가 더 수고하고 손해보더라도 남을 살리는 것이면 하는 것이다. 남편이 힘들 때, 아내가 힘들 때, 자녀가 힘들 때, 직장 동료들이 힘들 때 인애를 베풀 수 있는 여러분이 되길 바란다.

하나님의 언약은 인애를 통해서 완성된다. 인애, 즉 헤세드는 자신이 택한 백성이 언약에 실패하더라도 그들을 버리지 않고 끝까지 지켜내겠다는 하나님의 지속적인 사랑을 의미한다. 재산의 손해를 감수하고도 룻의 고엘이 된 보아스는 헤세드의 사람이었다. 우리의 죄값을 치르기 위해 목숨을 버리며 우리 인간의 고엘이 되신 예수님 역시 헤세드의 사람이었다. 하나님의 언약은 이러한 인애의 사람들을 통해 완성되는 것이다. 우리 역시 이 무자비한 세상에 하나님의 인애를 베푸는 언약 백성으로 부르심을 받았다. 인애의 사람은 인종과 혈통과, 모든 증오와 경계를 넘어서는 사람이다. 그래서 인애의 사람은 강한 사람인 것이다. 하나님은 인애의 사람을 축복하신다. 하나님은 인애의 사람을 통해 당신의 강한 손과 편 팔의 역사를 나타내기 원하신다. 바라기는 여러분이 인애의 사람이 되어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는 강한 자로 살아가게 되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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