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서 강해 7 유다의 규

텔아비브 욥바교회 2024년 3월 30일 설교 이익환 목사

여호수아서 강해 7 유다의 규

또 유다 자손의 지파가 그들의 가족대로 제비 뽑은 땅의 남쪽으로는 에돔 경계에 이르고 또 남쪽 끝은 신 광야까지라” ( 15:1)

지난 3월 20일, 유엔은 세계 각국의 행복지수를 발표했다. 1위는 핀란드였고, 이스라엘은 5위였다. 5개월 넘게 전쟁 중인데도 이스라엘 국민들의 행복도가 높다는 점이 놀랍다. 행복 지수가 높은 나라에 살고 있는 지금 여러분들은 행복한가? 오랜 광야 생활을 마치고 약속의 땅에 들어와 그 땅의 소산물을 먹었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행복했을 것이다. 7년 간의 정복 전쟁을 마치고 이제 지파별로 땅을 분배 받았을 때 그들은 약속의 실체가 그들의 눈 앞에서 이루어졌음을 보고 행복했을 것이다. 오늘 본문에는 가장 먼저 유다 지파가 땅을 분배 받는 장면이 나온다. 유다 지파의 삶이 약속의 땅에서 시작되는 순간이다. 이후 그들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까? 함께 살펴보며 은혜를 나누고자 한다.

유다 지파의 경계

땅의 분배는 제비를 뽑아 이루어졌다. 제비뽑기는 인간의 의지가 개입될 수 없는 것이다. 오직 하나님만이 개입하실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약속의 땅 가나안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만 이해할 수 있는 곳이다. 지도를 보면 유다지파의 경계를 알 수 있다. 남쪽 경계는 가자지구 밑에서부터 사해 남단 끝까지다. 동쪽 경계는 사해인데, 요단강이 끝나는 지점까지다. 북쪽 경계는 요단 끝에서 예루살렘을 지나 욥바 조금 아래, 지금의 바트얌까지다. 그리고 서쪽 경계는 지중해와 그 해안이다. 창세기에서 야곱은 유다를 이렇게 축복했다. 49:8-10, “유다야 너는 형제의 찬송이 될지라 손이 원수의 목을 잡을 것이요 아버지의 아들들이 앞에 절하리로다 유다는 사자 새끼로다 아들아 너는 움킨 것을 찢고 올라갔도다 그가 엎드리고 웅크림이 수사자 같고 암사자 같으니 누가 그를 범할 있으랴 규가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통치자의 지팡이가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이르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이 예언처럼 유다 지파는 장자 르우벤 지파를 제치고, 다른 형제들이 그 앞에 절하는 리더 지파가 되었다. 또한 ‘실로가 오시기까지, 즉 ‘화평을 가져오는 메시아께서 오실 때까지’ 왕의 통치를 상징하는 ‘규’와 ‘통치자의 지팡이’를 소유하는 지파가 되었다. 이 예언대로 다윗 왕조가 이 유다 지파에서 나왔다. 계속 이어지는 축복은 이렇다. 49:11-12, “그의 나귀를 포도나무에 매며 옷을 포도주에 빨며그의 눈은 포도주로 인하여 붉겠고 그의 이는 우유로 말미암아 희리로다유다 지파는 “나귀를 포도나무에 매며” 그 옷을 “포도주에 빨며”, 그 이는 “우유를 많이 먹어 희게” 될 정도로 농업과 목축업이 잘 되면서 부유해질 것이라는 예언이었다. 실제로 유다 지파의 땅은 비옥했고, 지금은 사막인 네게브까지 개발하여 국가 부의 근간이 되는 산업이 이곳에서 일어났다. 이처럼 이스라엘을 선도하는 지파로서 물질적인 축복까지 받은 유다 지파는 다른 어느 지파들보다 행복지수가 더 높았을 것이다. 이런 유다 지파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까?  

립나 (Tel Berna)

지난 주간 ‘립나’라는 곳에 다녀왔다. 그런데 이곳은 남유다의 멸망과 관련된 곳임을 알게 되었다. 남유다의 마지막 왕은 시드기야다. 그의 어머니의 이름이 하무달인데, 그녀가 바로 이 립나 출신이다. 왕하 24:18, “시드기야가 왕이 때에 나이가 이십일 세라 예루살렘에서 십일 년간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하무달이요 립나인 예레미야의 딸이더라하무달은 BC 639에서 609년까지 남유다를 통치했던 요시아 왕의 아내였다. 요시아가 누구인가? 이스라엘의 종교개혁을 주도하며 선한 왕으로 평가되는 인물이다. 학자들에 의하면 요시아는 정치적 동맹을 위해 립나 왕가의 딸이었던 하무달과 결혼한 것으로 여겨진다. 립나는 블레셋 지역 근방에 위치해 있는 도시인데, 요시아는 이 동맹 결혼을 통해 유다의 서쪽 국경을 강화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요시아는 므깃도에서 애굽의 느고 왕을 막다가 전사한다. 이후 이스라엘 백성들은 요시야의 아들 여호아하스를 왕으로 삼는다. 여호아하스 역시 하무달의 아들이었다. 왕하 23:31, “여호아하스가 왕이 때에 나이가 이십삼 세라 예루살렘에서 달간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하무달이라 립나 예레미야의 딸이더라 그에게 배 다른 형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왕이 된 것에는 하무달의 입김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여호아하스의 통치 기간은 석 달에 불과했다. 그에 대한 성경의 평가는 그가 “그의 조상들의 모든 행위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다는 것이다. 그 결과 그는 애굽의 바로 느고에게 잡혀가 애굽에서 죽고 만다.

에스겔은 이 당시 활동했던 선지자인데, 이 상황을 애가로 이렇게 묘사한다. 19:1-4, “너는 이스라엘 고관들을 위하여 애가를 지어 부르라 어머니는 무엇이냐 암사자라 그가 사자들 가운데에 엎드려 젊은 사자 중에서 새끼를 기르는데 새끼 하나를 키우매 젊은 사자가 되어 먹이 물어뜯기를 배워 사람을 삼키매 이방이 듣고 함정으로 그를 잡아 갈고리로 꿰어 끌고 애굽 땅으로 간지라 누구 이야기인가? 하무달 이야기다. 여기서 암사자가 하무달이다. 새끼 사자 하나는 여호아하스다. 에스겔은 그가 먹이 물어뜯기를 배워 사람을 삼켰다고 묘사한다. 물어뜯기를 누구한테 배웠겠는가? 어미 암사자 하무달이다. 그러나 그녀가 키운 여호아하스는 3개월 만에 애굽에 끌려가 죽고 만다. 이후 하무달이 가만히 있을 리 만무하다. 19:5, “암사자가 기다리다가 소망이 끊어진 줄을 알고 새끼 하나를 골라 젊은 사자로 키웠더니하무달은 요시아의 다른 부인의 아들 여호야김과 여호야긴이 11년 동안 유다를 통치하는 동안 10살 난 아들 맛다니야를 키운다. 그런데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여호야긴을 잡아가고 대신 맛다니야를 왕으로 삼는다. 느브갓세살은 그의 이름을 개명하는데, 그가 바로 유다의 마지막 왕 시드기야다. 한 명도 아니고 그의 둘째 아들까지 왕이 되었을 때 하무달은 행복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키운 아들의 행위는 이러했다. 19:6-7, “젊은 사자가 되매 여러 사자 가운데에 왕래하며 먹이 물어뜯기를 배워 사람을 삼키며 그의 궁궐들을 헐고 성읍들을 부수니 우는 소리로 말미암아 땅과 안에 가득한 것이 황폐한지라그에 대한 성경의 평가는 “그가 여호야김의 모든 행위를 따라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다는 것이다. 그 결과 하나님은 예루살렘과 유다에게 진노하시게 된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이 상황에서 시드기야에게 이렇게 조언한다. 38:17-18, “만군의 하나님이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네가 만일 바벨론의 왕의 고관들에게 항복하면 생명이 살겠고 성이 불사름을 당하지 아니하겠고 너와 가족이 살려니와 네가 만일 나가서 바벨론의 왕의 고관들에게 항복하지 아니하면 성이 갈대아인의 손에 넘어가리니 그들이 성을 불사를 것이며 너는 그들의 손을 벗어나지 못하리라 하셨나이다 바벨론에 끌려갔다가 다시 오는 것, 그것은 유다 백성을 향해 하나님이 그린 큰 그림이었다. 그러나 시드기야는 사람들이 자신을 조롱할 것을 염려하며 바벨론 왕을 배반하고 만다. 그 결과 그의 아들들은 자신이 보는 앞에서 바벨론 왕에게 죽임을 당하고 만다. 그리고 그는 두 눈이 뽑혀 바벨론으로 끌려가 거기서 죽고 만다. 이 상황을 에스겔은 이렇게 묘사한다. 19:8-9, “이방이 포위하고 있는 지방에서 그를 치러 와서 그의 위에 그물을 치고 함정에 잡아 우리에 넣고 갈고리를 꿰어 끌고 바벨론 왕에게 이르렀나니 그를 옥에 가두어 소리가 다시 이스라엘 산에 들리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이 소식을 들은 하무달은 어땠을까? 자신의 큰 아들은 애굽으로 끌려가 죽었다. 둘째 아들은 바벨론으로 끌려가 죽었다. 그리고 그의 손자들도 죽임을 당했다. 하무달이 몰랐던 것이 있었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두 명의 왕을 키워냈어도 그 권력이 그녀의 행복을 보장해줄 수 없었다. 하무달이 몰랐던 것이 또 있다 그것은 땅에 대해 하나님께서 정하신 원칙이었다.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18:24-25, 28, “너희는 모든 일로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 내가 너희 앞에서 쫓아내는 족속들이 모든 일로 말미암아 더러워졌고 땅도 더러워졌으므로 내가 악으로 말미암아 벌하고 땅도 스스로 주민을 토하여 내느니라너희도 더럽히면 땅이 너희가 있기 주민을 토함 같이 너희를 토할까 하노라” 하무달은 이 말씀을 몰랐고, 그리하여 자녀들에게도 가르치지 못했다. 그랬기에 그의 자녀들 모두를 포함하여 유대 민족 전체가 약속의 땅에서 토해지는 결과를 초래한 장본인이 된 것이다.

에스겔의 애가는 이 상황을 이렇게 묘사한다. 19:10-14, “ 피의 어머니는 가에 심겨진 포도나무 같아서 물이 많으므로 열매가 많고 가지가 무성하며 가지들은 강하여 권세 잡은 자의 규가 만한데 하나의 키가 굵은 가지 가운데에서 높았으며 많은 가지 가운데에서 뛰어나 보이다가 분노 중에 뽑혀서 땅에 던짐을 당하매 열매는 동풍에 마르고 강한 가지들은 꺾이고 말라 불에 탔더니 이제는 광야, 메마르고 가물이 땅에 심어진 되고 불이 가지 하나에서부터 나와 열매를 태우니 권세 잡은 자의 규가 만한 강한 가지가 없도다 하라 이것이 애가라 후에도 애가가 되리라 하무달의 두 아들은 왕이 되어 통치자의 규를 잡았지만, 동풍처럼 일어난 바벨론에 의해 그 가지가 불타고 만다. 그리하여 에스겔은 “권세 잡은 자의 규가 될 만한 강한 가지가 없도다”라고 탄식한다. 여기서 ‘규’는 히브리어로 ‘셰베트(שבט)’이다. ‘지팡이’라는 뜻인데, 왕의 권위와 통치를 상징하는 것이다. 자 이제 유다의 규는 남유다의 멸망과 함께 끝이 나고 만 것일까?

우리는 여기서 땅의 통치와 관련하여 하나님의 큰 그림을 봐야 한다. 미가 선지자는 메시아에 대해 이렇게 예언했다. 미가 5:2,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 이 예언대로 메시아는 유다 족속의 마을 베들레헴에서 태어났다. 예수께서 메시아로 이 세상에 오신 것이다. 그 분은 성경의 예언대로 온 인류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희생제물로 죽으셨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삼일 만에 다시 살리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셨다. 히브리서 기자는 그가 가진 권세를 이렇게 묘사한다. 1:8, “아들에 관하여는 하나님이여 주의 보좌는 영영하며 주의 나라의 규는 공평한 규이니이다유다의 규는 남유다의 멸망과 함께 사라진 게 아니었다.영원하고 공평한 통치가 이 땅의 왕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시작된 것이다. 예수님이 바로 유다의 규, 주의 나라의 규를 잡고 통치하기 시작하신 것이다.야곱의 예언이 예수님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다. 49:10, “규가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통치자의 지팡이가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이르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여기서 ‘실로’는 ‘평화를 가져오는 자’라는 뜻이다. 예수님은 재림하실 때 평화를 가져오는 자로 오실 것이다. 그 때에 온 땅에는 그분이 가져오실 평화로 충만하게 될 것이다.

시편 기자는 메시아에 대해 이렇게 예언했다. 2:7-9,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 내게 구하라 내가 이방 나라를 유업으로 주리니 소유가 끝까지 이르리로다 네가 철장으로 그들을 깨뜨림이여 질그릇 같이 부수리라 하시도다여기서 철장이 히브리어로 ‘셰베트’이다. 쇠로 만든 규를 말한다. 철장은 메시아의 통치를 상징하는 것이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이렇게 선포한다. 2:10-12, “그런즉 군왕들아 너희는 지혜를 얻으며 세상의 재판관들아 너희는 교훈을 받을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할지어다 그의 아들에게 입맞추라 그렇지 아니하면 진노하심으로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니 그의 진노가 급하심이라 여호와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복이 있도다시편 기자가 왜 이렇게 선포했을까? 그것은 철장을 가진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께 입맞출 때 멸망 당하지 않고 그가 가져오는 평화를 이 땅에서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사도 요한은 이렇게 예언했다. 5:5, “장로 중의 사람이 내게 말하되 울지 말라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겼으니 두루마리와 일곱 인을 떼시리라 하더라 예수님은 유다 지파의 사자로 이 땅에 다시 오실 것이다. 그 때 그분의 영원하고 공평한 통치를 받는 자들의 행복 지수는 이 땅의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것이다. 바라기는 주님이 다시 오실 때 그분을 왕으로 맞이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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