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아비브 욥바교회 샤밧예배 2025년 2월 15일 설교 이익환 목사
Kingship 4: 아사
“아사가 일찍이 유다 사람에게 이르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찾았으므로 이 땅이 아직 우리 앞에 있나니 우리가 이 성읍들을 건축하고 그 주위에 성곽과 망대와 문과 빗장을 만들자 우리가 주를 찾았으므로 주께서 우리 사방에 평안을 주셨느니라” (대하 14:7)

토라의 해설서를 ‘미드라쉬(מדרש)’라고 한다. 미드라쉬는 ‘다라쉬(דרש)’라는 동사에서 온 말인데, 이는 ‘샅샅이 찾다, 조사하다, 연구하다’란 뜻이다. 이 동사에는 세 개의 히브리어 문자가 있다. 달렛(ד), 레쉬(ר), 쉰(ש)이다. 각각의 단어는 문(ד-דלת), 머리(ר-ראש), 전능자 하나님(ש-שדי)을 상징한다. 결국 다라쉬는 하나님이 열어주시기 위해 예비하신 문(ד)이 무엇인지, 그분의 지혜(ר)을 구하며, 전능하신 하나님(ש)을 발견하려고 애쓰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나의 인생에 펼쳐질 하나님의 뜻을 찾는 것이 곧 ‘다라쉬’인 것이다. 오늘 본문인 역대하 14, 15, 16장에는 ‘다라쉬’라는 동사가 일곱 차례 나온다. 이 ‘다라쉬’는 남 유다 왕 아사의 인생을 특징 짓는 말이다. 아사의 삶을 살펴보며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찾아야 할지 지혜를 얻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대하 14:2-5, “아사가 그의 하나님 여호와 보시기에 선과 정의를 행하여 이방 제단과 산당을 없애고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상을 찍고 유다 사람에게 명하여 그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찾게 하며 그의 율법과 명령을 행하게 하고 또 유다 모든 성읍에서 산당과 태양상을 없애매 나라가 그 앞에서 평안함을 누리니라” 아사는 솔로몬 이후 르호보암과 아비야에 이어 왕위에 오른다. 그는 기원 전 911년에서 870년까지 41년간 남 유다를 통치한 왕이다. 그는 선왕이었던 아비야 때까지 구축된 종교시스템을 점검했다. 너무도 많은 이방 제단들이 파악되었다. 솔로몬이 정략 결혼을 통해 이방의 여러 공주들과 결혼 했고, 그러면서 근동국가의 여러 우상의 제단들이 예루살렘에 세워졌었다. 아사는 그러한 우상의 제단들을 제거하기 시작한 것이다. 선왕 때까지 안전하게 유지되어왔던 종교시스템을 개혁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는 단호했다. 병행 구절인 열왕기상 15장 12절에는 “남색하는 자를 그 땅에서 쫓아내고”란 기록이 있다. 풍요를 바라며 성전에서 행해졌던 성전 창기와의 성 행위도 제거한 것이다. 그는 백성들이 미혹되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질 수 있는 모든 요소들을 뿌리 뽑은 것이다. 그리하여 유다 백성들이 그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찾게 하였다.여기서 ‘찾다’라는 동사가 ‘다라쉬’다. 그는 자신 만이 아니라 일반 백성들도 하나님을 찾도록 힘썼던 것이다.
이어지는 구절에서도 아사가 “하나님을 찾았다”라는 표현이 나온다. 대하 14:7, “아사가 일찍이 유다 사람에게 이르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찾았으므로 이 땅이 아직 우리 앞에 있나니 우리가 이 성읍들을 건축하고 그 주위에 성곽과 망대와 문과 빗장을 만들자 우리가 주를 찾았으므로 주께서 우리 사방에 평안을 주셨느니라 하고 이에 그들이 성읍을 형통하게 건축하였더라” 하나님을 찾은 결과는 평안과 형통이었다. 온 백성이 아사왕과 함께 하나님을 찾은 결과 남 유다는 강대국의 틈바구니 속에서도 평안가운데 번영할 수 있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고 당신의 뜻을 찾는 자에게 자신을 나타내신다. 하나님은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서도 그 사실을 약속하셨다. 렘 29:13,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하나님을 찾지 않는 사람들에겐 하나님은 숨어 계시는 분이시다. 그러나 하나님은 당신을 찾는 자들에겐 자신을 드러내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을 찾고 만나게 되면 환경이나 상황과 상관 없는 평안과 형통의 은혜를 누리는 것이다.


그런데 진정한 신앙은 위기의 순간이 찾아왔을 때 그 진위가 가려진다. 형통했던 아사 왕에게 위기의 순간이 찾아 왔다. 구스, 지금의 에디오피아 왕 세라가 백만의 군대와 함께 남 유다를 침략해 온 것이다. 대하 14:9-10, “구스 사람 세라가 그들을 치려 하여 군사 백만 명과 병거 삼백 대를 거느리고 마레사에 이르매 아사가 마주 나가서 마레사의 스바다 골짜기에 전열을 갖추고” 마레사는 남 유다의 초대 왕 르호보암이 요새화 한 성읍 중 하나다. 지금의 벧 구브린 국립공원 안에 있는 고대 도시였는데, 언덕 위에 오르면 그 아래로 스바다 골짜기가 보인다. 당시 아사왕의 군대는 58만이었다. 그러나 스바다 골짜기를 향해 밀려오는 세라의 군대는 백만이었다. 게임이 되지 않는 전쟁이었다. 이 때 아사는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며 이렇게 부르짖었다. 대하 14:11, “여호와여 힘이 강한 자와 약한 자 사이에는 주밖에 도와 줄 이가 없사오니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우리를 도우소서 우리가 주를 의지하오며 주의 이름을 의탁하옵고 이 많은 무리를 치러 왔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우리 하나님이시오니 원하건대 사람이 주를 이기지 못하게 하옵소서” 아사는 간절히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며 그분의 도움을 요청했다. 하나님은 자신을 찾는 아사의 기도에 이렇게 응답하셨다. 대하 14:12-13, “여호와께서 구스 사람들을 아사와 유다 사람들 앞에서 치시니 구스 사람들이 도망하는지라 아사와 그와 함께 한 백성이 구스 사람들을 추격하여 그랄까지 이르매 이에 구스 사람들이 엎드러지고 살아 남은 자가 없었으니” 승리가 불가능한 전쟁을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이긴 것이다. 인생 승리의 비결은 내가 절대 강자가 되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든지 내가 하나님을 전심으로 찾을 때 우리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절대 강자의 인생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을 향한 나의 신앙이 내 상황과 위기를 바꾸어 놓는 것이다.

예루살렘으로 승리의 개선을 한 아사 왕에게 아사랴 선지자가 찾아와 말한다. 대하 15:2,7, “너희가 여호와와 함께 하면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실지라 너희가 만일 그를 찾으면 그가 너희와 만나게 되시려니와 너희가 만일 그를 버리면 그도 너희를 버리시리라… 그런즉 너희는 강하게 하라 너희의 손이 약하지 않게 하라 너희 행위에는 상급이 있음이라 하니라” 이 말씀에 도전을 받은 아사는 또다시 종교개혁을 단행한다. 우상 숭배에 사용되었던 가증한 물건들을 남 유다 땅에서 없애 버린다. 하나님이 이러한 아사와 함께 하신다는 소문이 온 나라에 퍼졌다. 그래서 북 이스라엘에서도 남 유다로 내려오는 자들이 많았다. 대하 15:10-13, “아사 왕 제십오년 셋째 달에 그들이 예루살렘에 모이고 그 날에 노략하여 온 물건 중에서 소 칠백 마리와 양 칠천 마리로 여호와께 제사를 지내고 또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찾기로 언약하고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찾지 아니하는 자는 대소 남녀를 막론하고 죽이는 것이 마땅하다 하고” 여기서 ‘다라쉬’라는 동사가 연이어 나온다. 아사는 유다로 넘어온 이스라엘 백성들과도 하나님을 찾기로 언약을 맺는다. 그는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찾지 않는 자는 죽이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한다. 상당히 강한 발언이다. 다행이 그들은 이 언약을 기뻐하며 여호와께 맹세한다. 대하 15:15, “온 유다가 이 맹세를 기뻐한지라 무리가 마음을 다하여 맹세하고 뜻을 다하여 여호와를 찾았으므로 여호와께서도 그들을 만나 주시고 그들의 사방에 평안을 주셨더라” 그들이 맹세하고 여호와를 찾았을 때 하나님께서도 그들을 만나주셨다. 그리고 그들의 사방에 평안을 주셨다.
아사를 통해 이렇게 예루살렘에 신앙의 개혁과 부흥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흐름에 분위기 파악을 못하고 있었던 사람이 있었다. 당시 태후였던 마아가였다. 대하 15:16, “아사 왕의 어머니 마아가가 아세라의 가증한 목상을 만들었으므로 아사가 그의 태후의 자리를 폐하고 그의 우상을 찍고 빻아 기드론 시냇가에서 불살랐으니” 여기서 마아가는 아사의 ‘어머니’라고 나온다. 그런데 열왕기상 15장 2절을 보면 아사의 아버지 아비얌의 어머니 역시 마아가라고 나온다. 이것은 ‘어머니’로 번역되는 히브리어 ‘이마(אמא)’가 할머니를 지칭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머니가 일찍 죽고 어린 나이로 왕위에 오른 아사에게 할머니 마아가가 거의 어머니의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아사는 과감히 마아가의 태후의 자리를 폐한다. 그리고 그녀가 세운 우상을 찍어 기드론 시냇가에서 불사른다. 이러한 철저한 신앙개혁이 있었기에 아사는 다음과 같은 결과를 맞이한다.대하 15:19, “이 때부터 아사 왕 제삼십오년까지 다시는 전쟁이 없으니라” 아사왕 15년에서 35년까지 20년간 남 유다는 평화로운 시대를 누린 것이다.

그러나 아사왕의 마지막 6년은 좋지 않았다.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대하 16:1, “아사 왕 제삼십육년에 이스라엘 왕 바아사가 유다를 치러 올라와서 라마를 건축하여 사람을 유다 왕 아사에게 왕래하지 못하게 하려 한지라” 북 이스라엘의 왕 바아사는 유다를 침략할 준비를 시작한다. 먼저 그는 라마를 건설하여 북 이스라엘 백성들이 남 유다로 내려가는 것을 막았다. 라마는 예루살렘에서 8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다. 이곳에 요새가 세워짐으로 예루살렘이 군사적 위기에 처하게 된 것이다. 아사 왕은 이러한 위기 상황에서 하나님을 찾지 않았다. 그는 그 대신 당시 강국이었던 아람 왕, 지금의 시리아 지역의 왕에게 은과 금을 보내며 북 이스라엘을 손 봐 달라고 부탁한다. 아람 왕 벤하닷은 아사의 제안을 받아들여 북 이스라엘을 공격한다. 그리하여 북 이스라엘은 남 유다를 치려던 계획을 포기하고 회군한다. 모든 것이 아사 왕의 계획대로 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신앙적인 반응이 아니었다. 이에 선견자 하나니가 아사 왕을 찾아와 이렇게 책망한다. 대하 16:7-9, “왕이 아람 왕을 의지하고 왕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지 아니하였으므로 아람 왕의 군대가 왕의 손에서 벗어났나이다 구스 사람과 룹 사람의 군대가 크지 아니하며 말과 병거가 심히 많지 아니하더이까 그러나 왕이 여호와를 의지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왕의 손에 넘기셨나이다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들을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 이 일은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은즉 이 후부터는 왕에게 전쟁이 있으리이다 하매” 아사 왕은 자신에게 듣기 싫은 말을 하는 하나니를 옥에 가둔다. 3년 뒤, 그의 통치 39년에는 그의 발에 병이 들어 위독한 상황을 맞는다. 그 때도 그는 여호와를 찾지 않고 당시 주술적인 치료를 했던 의원들을 의지했다고 성경 역사는 평가한다. 그렇게 하나님을 찾기 힘썼던 아사 왕이 왜 그의 말년에는 하나님을 찾지 않았을까? 아마도 그가 평안을 누리면서 기도하지 않아도 되는 일들이 많아졌을 것이다. 의지할 것들이 많아지면 우리 인간은 하나님을 구하지 않게 된다. 쉽게 의지할 수 있는 것들을 통해 일을 해결하기 시작하면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데 점점 더 익숙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들의 신앙 역사는 이스라엘의 왕들과 마찬가지로 지금 하나님 나라에 기록되고 있다. 우리는 어떻게 ‘끝까지 하나님을 찾고 구했던 사람’이란 평가를 받을 수 있을까? 솔로몬이 성전을 짓고 낙성식을 행할 때 하나님께서는 신앙 부흥의 원리를 말씀해 주셨다. 대하 7:14,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 여기에 신앙 부흥의 세 가지 원리가 있다. 첫째는 악한 길에서 떠나는 것이다. 둘째는 스스로 낮추는 것이다. 세째는 기도하여 하나님의 얼굴을 찾는 것이다. 역대기 기자는이 기준에 근거하여 남 유다의 왕들을 평가했다. 이 말씀대로 왕들이 행했을 때 개인적인 부흥 만이 아니라 국가적인 부흥이 있었다. 그러나 왕들이 그렇게 하지 못했을 때 그들은 악한 왕으로 평가되었고, 민족 전체는 국가적 재난과 영적 침체를 경험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역사에 선한 자로 남기 위해서 우리는 역대 유다 왕들에게 적용되었던 부흥의 원리를 우리의 삶에도 적용해야 한다. 먼저 악한 길에서 떠나야 한다. 스스로 겸비해야 한다. 기도하며 하나님의 얼굴을 찾아야 한다. ‘다라쉬(דרש)’는 ‘샅샅이 찾다, 조사하다, 연구하다’란 뜻이라는 것을 설교 서두에서 나눴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샅샅이 찾는 ‘다라쉬’의 사람이 되야 한다. 우리는 내가 열고 싶은 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에게 열어 주시려고 예비하신 문(ד)이 무엇인지를 구해야 한다. 우리는 내 머리에서 나오는 전략이 아니라, 하나님의 머리(ר)에서 나오는 그분의 지혜를 구해야 한다. 우리는 나의 능력이 아니라, 전능자(ש)의 능력을 의지하고 구해야 한다. 개혁되지 않은 교회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바라기는 과거의 성공에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 지금 시점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음으로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는 인생이 되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