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phet 8: 하박국 Habakkuk

텔아비브 욥바교회 샤밧예배 2025년 7월 5일 설교 이익환 목사

Prophet 8: 하박국 Habakkuk – “Why, God?”

주께서는 눈이 정결하시므로 악을 차마 보지 못하시며 패역을 차마 보지 못하시거늘 어찌하여 거짓된 자들을 방관하시며 악인이 자기보다 의로운 사람을 삼키는데도 잠잠하시나이까” ( 1:13) Your eyes are too pure to look on evil; you cannot tolerate wrong. Why then do you tolerate the treacherous? Why are you silent while the wicked swallow up those more righteous than themselves?

오늘은 우리가 믿음의 길을 갈 때 피할 수 없는 질문을 함께 나누고자 한다. Today, I would like us to reflect on a question we cannot avoid as we walk the path of faith. “하나님, 왜 의인이 고통 받고, 악인은 잘 됩니까?” “God, why do the righteous suffer while the wicked prosper?” “왜 하나님은 그 모든 악을 보고도 침묵하십니까?” “Why does God remain silent while witnessing all the evil in the world?” 이것은 우리가 종종 던지는 질문들이다. These are questions we often ask. 이 질문들은 단지 철학적인 문제가 아니다. These questions are not merely philosophical. 하박국 선지자의 입을 통해 터져 나온 고통의 절규이며, 동시에 믿음의 탄식이다. They are cries of anguish and laments of faith that burst forth from the mouth of the prophet Habakkuk. 사랑하는 자식이 까닭 모를 병으로 고통 당할 때, 전쟁은 끝나지 않고 무고한 사람들이 죽어가는 것을 계속 지켜봐야 할 때, 선한 사람이 고통 받고 악한 사람이 잘 되는 현실을 마주 할 때, 우리 안에도 이 같은 질문들이 일어난다. When our beloved children suffer from inexplicable illnesses, when we have to watch innocent people die in endless wars, when we face the reality that good people suffer and evil people prosper, these same questions arise within us too. 지금 여전히 가자에서 고통 당하는 인질들의 가족이나, 끝나지 않는 전쟁터에 자식들을 계속 내보내야 하는 이스라엘의 부모들, 이번 이란의 미사일 공격으로 가족이 죽거나 집이 파손되어 고통을 당하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에서 이러한 질문들이 있을 것이다. These questions must be echoing in the hearts of the families of the hostages still suffering in Gaza, the Israeli parents who continue to send their children to the endless war zone, and those who have suffered as their families have been killed or their homes destroyed by Iran’s missile attacks. “왜 입니까, 하나님?” “Why, God?” 오늘은 이 질문에 대한 하박국 선지자의 결론을 함께 살펴보며 은혜를 나누고자 한다. Today, we will look at the conclusion that the prophet Habakkuk reached, and share in the grace it reveals.

하박국은 대략 주전 612년에서 597년 사이, 여호야김 왕 통치기에 활동했다. Habakkuk ministered around 612 to 597 BC, during the reign of King Jehoiakim. 이 시기는 이스라엘 역사에서 가장 혼란스러운 시기 중 하나였다. It was one of the most turbulent periods in Israel’s history. 밖으로는 강대국 앗수르 제국이 몰락하고, 신흥 바벨론 제국이 세력을 확장하고 있었다. Externally, the mighty Assyrian Empire was collapsing, and the rising Babylonian Empire was expanding its power. 애굽 역시 남 유다의 정치에 개입하며 전쟁이 끊이지 않았다. Egypt was also interfering in the politics of Judah, leading to continual wars. 남 유다의 내부 상황은 겉으로는 율법이 있지만, 실제로는 정의가 사라졌다. Internally, although the Law was present in Judah, justice had disappeared in practice. 폭력과 불의, 권력 남용과 도덕적 타락이 만연했다. Violence, injustice, abuse of power, and moral decay were widespread. 왕과 지도자들은 사치를 누리며 가난한 자들을 짓밟았다. Kings and leaders lived in luxury while trampling the poor. 하박국은 그러한 시대의 한복판에서 하나님을 향해 외쳤다. Habakkuk cried out to God in the midst of such times. 1:3-4, “어찌하여 내게 죄악을 보게 하시며 패역을 눈으로 보게 하시나이까 겁탈과 강포가 내 앞에 있고 변론과 분쟁이 일어났나이다 이러므로 율법이 해이하고 정의가 전혀 시행되지 못하오니 이는 악인이 의인을 에워쌌으므로 정의가 굽게 행하여짐이니이다” Habakkuk 1:3–4: “Why do you make me look at injustice? Why do you tolerate wrong? Destruction and violence are before me; there is strife, and conflict abounds. Therefore the law is paralyzed, and justice never prevails. The wicked hem in the righteous, so that justice is perverted.” 하박국 선지자는 남 유다 사회에서 악인이 처벌 받지 않는 사회 현실에 대해 하나님께 따졌다. The prophet Habakkuk protested to God about the reality of a society in Judah where the wicked went unpunished. 당시 남 유다의 왕은 여호야김이었다. At that time, the king of Judah was Jehoiakim. 그는 애굽이 세운 악한 왕이었다. He was a wicked king installed by Egypt. 그의 치하에서 유다 관원들의 부정부패가 만연했고, 부자들이 뇌물로 법정을 장악하여 공의가 땅에 떨어진 시대였다. Under his rule, Judah’s officials were thoroughly corrupt, and the wealthy used bribes to control the courts, causing justice to collapse. 이것은 단지 하박국의 시대 이야기 만이 아니다. This is not just the story of Habakkuk’s time. 오늘날 우리도 여러 악의 문제로 고통 당하며 이로 인해 정서적으로, 신앙적으로 침체 속에 살아가고 있다. Even today, we suffer from various forms of evil, and many live in emotional and spiritual discouragement because of it.

하박국은 하나님께 이렇게 묻는다: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입니까? (1:2)” 이것은 단순한 불평이 아니다. Habakkuk asks God this question: “How long, Lord?” (1:2) This is not a mere complaint. 하나님을 신뢰하기에 생기는 갈등이며 질문이다. It is a struggle and a question that arise from trusting God. 하박국은 ‘믿음’으로 하나님께 묻고 있다: “왜 하나님은 불의를 그냥 두십니까?” “왜 침묵하십니까?” “정말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분입니까?” Habakkuk asks God in faith: “Why do You let injustice go unpunished?” “Why do You remain silent?” “Are You truly a righteous God?” 그는 현실의 불의를 방관하지 않았다. He did not ignore the injustice of his time. 그 현실을 하나님 앞에 들고 나아가 그분 앞에 질문을 쏟아냈다. He brought that reality before God and poured out his questions. 하나님 앞에 질문하는 것, 이것은 우리 신앙 여정의 일부다. Questioning before God — this is part of our journey of faith. 질문 없는 믿음은 맹목이며 죽은 믿음이다. Faith without questions is blind and dead. 하나님께 질문하는 것은 현실의 문제를 돌파하기 위한 선지자의 고통이다. Asking God questions is the prophet’s agony in trying to break through reality. 이것은 곧 그의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신뢰의 증거라 할 수 있다. This is also evidence of his love and trust toward God.

이에 하나님은 응답하신다. Then God responds. 그런데 그 응답은 하박국이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But His answer is nothing like what Habakkuk expected. 1:5-6, “너희는 여러 나라를 보고 또 보고 놀라고 또 놀랄지어다 너희의 생전에 내가 한 가지 일을 행할 것이라 누가 너희에게 말할지라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리라 보라 내가 사납고 성급한 백성 곧 땅이 넓은 곳으로 다니며 자기의 소유가 아닌 거처들을 점령하는 갈대아 사람을 일으켰나니…” Habakkuk 1:5-6: “Look at the nations and watch–and be utterly amazed. For I am going to do something in your days that you would not believe, even if you were told. I am raising up the Babylonians, that ruthless and impetuous people, who sweep across the whole earth to seize dwelling places not their own.” 이방 민족인 갈대아 사람들, 즉 바벨론 민족을 남 유다를 심판하는 도구로 일으키시겠다는 것이다. God was saying He would raise up the Chaldeans—the Babylonians—as the tool of judgment on Judah. 하박국은 말문이 막힌다. Habakkuk is speechless. 그래서 하나님께 다시 질문한다. So he asks God again. 1:13, 17, “주께서는 눈이 정결하시므로 악을 차마 보지 못하시며 패역을 차마 보지 못하시거늘 어찌하여 거짓된 자들을 방관하시며 악인이 자기보다 의로운 사람을 삼키는데도 잠잠하시나이까그가 그물을 떨고는 계속하여 여러 나라를 무자비하게 멸망시키는 것이 옳으니이까” Habakkuk 1:13, 17: “Your eyes are too pure to look on evil; you cannot tolerate wrong. Why then do you tolerate the treacherous? Why are you silent while the wicked swallow up those more righteous than themselves?… Is he to keep on emptying his net, destroying nations without mercy?” 유대 민족이 아무리 부패했다고 해도 어떻게 더 악한 이방 민족 바벨론을 통해 선민인 유다 백성을 심판하실 수 있냐고 묻고 있는 것이다. He is asking how God could use a more wicked Gentile nation like Babylon to judge His chosen people, Judah, even if the Jewish nation had become corrupt. 이것은 신앙의 딜레마이다. This is the dilemma of faith. “하나님은 공의로우신가? 하나님은 어떻게 악을 사용하실 수 있는가?” “Is God just? How can He use evil for His purpose?” 여기서 우리는 인간 이성과 하나님의 섭리의 경계를 보게 된다. Here we encounter the limits of human reason and the mystery of divine providence. 하나님은 악의 문제에 침묵하지 않으시며, 우리가 원하는 방식이 아니라 자신의 방식으로 역사하신다. God is not silent about evil; He works not in our way, but in His way. 그분은 단지 유다를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인간 역사 전체를 구속하시려는 계획을 가지고 계신 것이다. His purpose is not merely to judge Judah, but to redeem all of human history.

아직 이러한 하나님의 큰 그림을 알지 못하는 하박국은 하나님 앞에 서서 감정의 끝자락까지 간다. Because Habakkuk does not yet understand God’s big picture, he stands before God, reaching the very end of his emotions. 그리고 말없이 기다린다. And he waits in silence. 2:1, “내가 내 파수하는 곳에 서며 성루에 서리라 그가 내게 무엇이라 말씀하실는지 기다리고 바라보며 나의 질문에 대하여 어떻게 대답하실는지 보리라” Habakkuk 2:1, “I will stand at my watch and station myself on the ramparts; I will look to see what he will say to me, and what answer I am to give to this complaint.” 사방은 고요하고 오직 하박국의 거친 숨소리만 들리는 듯 하다. All around is silent, and it’s as if only Habakkuk’s heavy breathing can be heard. 이 때 적막을 깨고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온다. At that moment, breaking the silence, the voice of God comes. 2:3-4,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응하리라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나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Habakkuk 2:3–4, “For the revelation awaits an appointed time; it speaks of the end and will not prove false. Though it linger, wait for it; it will certainly come and will not delay. See, he is puffed up; his desires are not upright — but the righteous will live by his faith–”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고 계신 것이다: “악에 대한 심판은 반드시 있다. 기다려라. 그리고 악의 현실 속에서 오직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신뢰를 가져라!” God is saying: “There will surely be judgment upon evil. Wait. And in the midst of wicked reality, have faith and trust in Me alone!” 눈에 보이는 현실 때문에 낙담하거나 두려워하지 말고 현실을 넘어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믿으라는 것이다. He is saying, do not be discouraged or afraid because of what you see; believe in the God who works beyond reality. 하나님은 한 구절의 말씀, 즉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약속으로 하박국 선지자를 설득하신다. God convinces the prophet Habakkuk with one sentence: “The righteous will live by his faith.”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 이 말씀은 로마서에서, 갈라디아서에서, 히브리서에서, 신약 복음의 기초가 된 말씀이다. “The righteous will live by faith”—this became the foundation of the New Testament gospel in Romans, Galatians, and Hebrews. 여기서의 ‘믿음’은 단순한 종교적 감정이 아니다. This ‘faith’ is not merely a religious emotion. 절망 속에서도 하나님을 붙드는 신실함이다. It is the faithfulness that holds onto God even in despair. 세상이 흔들려도, 하나님의 언약을 붙잡고 포기하지 않는 믿음이다. It is faith that clings to God’s covenant even when the world shakes. 하나님은 하박국에게 설명보다 약속을 주셨다. God gave Habakkuk not explanations, but promises. “너는 다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나를 신뢰하라”는 것이다. He is saying, “You will not understand everything. But trust Me.” 이처럼 믿음은 눈 앞에 보이는 현실보다도 하나님의 약속을 더 신뢰하는 선택인 것이다. In this way, faith is choosing to trust God’s promises more than the reality in front of us. 이 믿음은 ‘문제를 다 이해했기 때문에 믿는 것’이 아니다. This kind of faith is not based on full understanding. 다 알 수 없어도, 하나님의 성품과 그분의 약속을 붙드는 신실함인 것이다. Even without knowing everything, it is a faithfulness that clings to God’s character and His promises. 이것이 바로 복음의 능력이다. This is the very power of the gospel. 불의가 승리하는 것처럼 보여도, 의인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의지하여 살아가는 것이다. Even when injustice seems to triumph, the righteous live by relying on God’s faithfulness.

하나님은 바벨론이 남 유다를 심판하는 도구로 사용되지만, 결국 바벨론도 그의 불의로 인해 심판 받을 것을 선언하신다. God uses Babylon as a tool to judge Judah, but ultimately He declares that Babylon will be judged for its injustice. 2:12-14, “피로 성읍을 건설하며 불의로 성을 건축하는 자에게 화 있을진저 민족들이 불탈 것으로 수고하는 것과 나라들이 헛된 일로 피곤하게 되는 것이 만군의 여호와께로 말미암음이 아니냐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함이니라” Habakkuk 2:12–14, “Woe to him who builds a city with bloodshed and establishes a town by crime! Has not the LORD Almighty determined that the people’s labor is only fuel for the fire, that the nations exhaust themselves for nothing? For the earth will be filled with the knowledge of the glory of the LORD, as the waters cover the sea.” 피로 성읍을 건설하고 불의로 성을 건축한 자를 하나님께서 소멸하실 것이란 말씀이다. This is a declaration that God will destroy those who build cities by bloodshed and injustice. 결국 이 말씀대로 바벨론은 기원전 539년 페르시아에 의해 멸망 당하고 만다. And as this word was fulfilled, Babylon was ultimately destroyed by Persia in 539 BCE.

악에 대한 심판의 메세지를 듣고 하박국 선지자는 주님께 기도한다. After hearing the message of judgment against evil, the prophet Habakkuk prays to the Lord. 3:2, “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하게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 Habakkuk 3:2, “LORD, I have heard of your fame; I stand in awe of your deeds, O LORD. Renew them in our day, in our time make them known; in wrath remember mercy.” 이제 하박국은 하나님께 더 이상 질문하지 않는다. Now Habakkuk no longer questions God. 대신 그는 노래한다. Instead, he sings. 3:16-18, “내가 들었으므로 내 창자가 흔들렸고 그 목소리로 말미암아 내 입술이 떨렸도다 무리가 우리를 치러 올라오는 환난 날을 내가 기다리므로 썩이는 것이 내 뼈에 들어왔으며 내 몸은 내 처소에서 떨리는도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Habakkuk 3:16-18, “I heard and my heart pounded, my lips quivered at the sound; decay crept into my bones, and my legs trembled. Yet I will wait patiently for the day of calamity to come on the nation invading us. Though the fig tree does not bud and there are no grapes on the vines, though the olive crop fails and the fields produce no food, though there are no sheep in the pen and no cattle in the stalls, yet I will rejoice in the LORD, I will be joyful in God my Savior.” 하박국은 질문의 자리에서 예배의 자리로, 불평의 자리에서 찬양의 자리로 나아갔다. Habakkuk moved from a place of questioning to a place of worship, from complaining to praising. 상황은 하나도 바뀌지 않았다. The situation had not changed at all. 그러나 그는 모든 현실적 소망이 끊어진 자리에서 오직 하나님 한 분 만으로 기뻐한다. But he rejoices in God alone, even where all earthly hope has been cut off. 무화과가 없어도, 포도 열매가 없어도, 양과 소가 없어도 그는 이제 여호와 때문에 기뻐하기로 결정한다. Even without figs, grapes, sheep, or cattle, he chooses now to rejoice in the Lord. 고통스런 경제 상황, 혼돈스런 정치 현실, 불확실한 미래… 그 어떠한 상황도 달라지지 않았다. Painful economic situation, chaotic political reality, uncertain future… none of these circumstances had changed. 그러나 하박국의 시선이 바뀐 것이다. But Habakkuk’s perspective changed. 그는 상황이 아니라 하나님을 보기 시작했다. He began to look at God, not the situation. 이것이 복음의 능력이다. This is the power of the gospel. 환경이 변하지 않아도, 하나님은 변하지 않으시기에 우리는 기뻐할 수 있는 것이다. Even if circumstances don’t change, God does not change, so we can rejoice. 그리하여 그는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3:19)”고 고백할 수 있었던 것이다. Therefore, he could confess, “The Sovereign Lord is my strength” (3:19).

하박국은 “왜”라는 질문에서 시작했다. Habakkuk started with the question “Why?” 하지만 마지막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믿음으로 마무리한다. But in the end, he finishes with faith that says “nevertheless.”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이 고백을 더 완전하게 알게 된다. In Jesus Christ, we come to know this confession more fully. 예수님도 십자가에서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질문하셨다. Jesus also asked on the cross, “My God, why have you forsaken me?”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는 하나님의 궁극적인 파토스였다. But Jesus’ cross was God’s ultimate pathos. 하나님 자신이 악의 문제를 가장 고통스럽게 짊어지신 사건인 것이다. It was the event where God Himself bore the pain of evil most deeply. 결국 복음은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고통을 모르시지 않는다. 그분은 직접 십자가에서 우리와 함께 고통 당하셨다.” Ultimately, the gospel says this: “God does not ignore our suffering. He Himself suffered with us on the cross.” 그 십자가는 우리를 위한 구원의 길이 되었다. That cross became the way of salvation for us. 따라서 복음은, 악이 승리하는 것처럼 보여도,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가 반드시 이루어짐을 선포하는 것이다. Therefore, the gospel proclaims that even if evil seems to triumph, God’s love and justice will surely prevail. 복음은 우리 삶에서 고난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고난을 이기게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인 것이다. The gospel does not remove suffering from our lives, but it is God’s power to help us overcome that suffering.

아우슈비츠 죽음의 수용소에서 살아남았던 빅터 프랭클은 이렇게 말했다. Victor Frankl, who survived the Auschwitz death camp, said this: “비가 오면 작은 불은 꺼지지만 큰 불은 오히려 더 거세진다. 마찬가지로, 약한 믿음은 고난과 재난 앞에서 약해지지만 강한 믿음은 오히려 더 강해진다.” “When it rains, a small fire goes out, but a big fire grows even stronger. Likewise, weak faith falters in the face of hardship and disaster, but strong faith becomes even stronger.” 하나님을 깊이 신뢰하는 믿음의 사람은 죽음의 위협 앞에서도 강해질 수 있는 것이다. A person whose faith deeply trusts God can become strong even in the face of death threats. 여러분은 고난과 죽음의 위협 앞에 강해질 수 있겠는가? Can you become strong in the face of suffering and threats of death? 그동안 교회는 악과 고통의 문제를 진지하게 다루지 못했다. Until now, the church has not seriously dealt with the issues of evil and suffering. 하나님의 축복을 강조했지, 믿는 자의 삶이 힘들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했다. The church has emphasized God’s blessings but failed to properly teach that believers’ lives can be difficult. 그래서 많은 신앙인들이 가혹한 현실을 맞이할 때 준비가 되어있지 않아 신앙의 좌절을 겪었다. So many believers were unprepared when facing harsh realities and experienced spiritual discouragement.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시는 분이란 믿음만을 가진 사람에게 악과 고통이 찾아오면 당황하게 된다. Those who only believe that God blesses them become confused when evil and suffering come. 그들은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고, 왜 악을 허용하시냐고 원망한다. They complain, asking where God is and why He allows evil.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믿음 때문에 오히려 악과 고통을 직면해야 했던 사람들이 있다. However, some people have had to face evil and suffering precisely because of their faith in God. 예수님이 고난을 당하셨고, 세례 요한도 참수 당했다. Jesus suffered, and John the Baptist was beheaded. 스데반은 돌에 맞아 죽었다. Stephen was stoned to death. 예수님의 제자들은 거의 모두 순교 당했다. Almost all of Jesus’ disciples were martyred. 예수를 따르다가 세상의 악에 희생 당한 것이다. They were sacrificed to the evils of the world because they followed Jesus.

베드로 사도는 말한다. The Apostle Peter says, 벧전 4:12-13,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1 Peter 4:12-13, “Dear friends, do not be surprised at the painful trial you are suffering, as though something strange were happening to you. But rejoice that you participate in the sufferings of Christ, so that you may be overjoyed when his glory is revealed.” 믿는 자가 악과 고통을 마주하게 되는 것은 어떤 면에서 가장 영광스러운 자리로의 초대다. For a believer, facing evil and suffering is in some ways an invitation to the most glorious place. 하나님은 고통이 비껴가는 삶을 허락하시는 것이 아니라 고통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사람을 만드시는 것이다. God does not allow a life free from suffering but makes a person unshaken even in suffering. 나치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코리 텐 붐은 이런 말을 했다. Corrie ten Boom, who survived a Nazi concentration camp, said this: “마귀는 아무리 강해도 한계가 있다. 하지만 예수님의 능력은 한계를 모른다.” “No matter how strong the devil is, he has limits. But the power of Jesus has no limits.” 그녀는 죽음의 수용소에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다 (마 28:18)”는 주님의 말씀을 굳게 믿었다. In the death camp, she firmly believed Jesus’ words, “All authority in heaven and on earth has been given to me” (Matt. 28:18). 그리하여 그녀는 죽음의 공포로 절망하지 않고 살아남게 된 것이다. Therefore, she survived without despairing in the face of the terror of death.

히브리서 기자는 말한다. The writer of Hebrews says, 11:36-40, “또 어떤 이들은 조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련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로 죽임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 그들이 광야와 산과 동굴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 이 사람들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된 것을 받지 못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즉 우리가 아니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Hebrews 11:36-40, “Some faced jeers and flogging, while still others were chained and put in prison. They were stoned; they were sawed in two; they were put to death by the sword. They went about in sheepskins and goatskins, destitute, persecuted and mistreated– the world was not worthy of them. They wandered in deserts and mountains, and in caves and holes in the ground. These were all commended for their faith, yet none of them received what had been promised. God had planned something better for us so that only together with us would they be made perfect.”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사람들을 통해 하나님 나라는 전진했다. Through those whom the world was not worthy of, God’s kingdom advanced. 그들의 삶은 세상의 악에 의해 무참하게 꺾였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위해 더 좋은 것을 예비해주셨다. Their lives were cruelly cut short by the world’s evil, but God had prepared something better for them. 하나님은 오늘도 악한 현실 속에서도 오직 믿음으로 살아가는 자에게 가장 영광스런 상급을 예비하신 분이시다. Even today, God prepares the most glorious reward for those who live by faith amid evil realities.

혹 여러분은 지금 악한 현실 속에서 고통 당하고 있는가? Are you now suffering in an evil reality? 응답하지 않으시는 하나님 앞에서 절망하고 있는가? Are you despairing before a God who seems silent? 하박국의 고백을 기억하라.: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Remember Habakkuk’s confession: “The righteous shall live by faith.” “I will rejoice in the Lord.” 이 복음의 능력이 여러분의 고통스런 오늘을 이기게 할 것이다. This power of the gospel will help you overcome your painful today. 절망 속에서도 소망을 노래하는 사람이 되게 할 것이다. It will make you a person who sings hope even in despair. 악이 문제가 아니다. Evil itself is not the problem. 악이 얼마나 강하고 잔인한가, 그것이 문제가 아니다. How strong or cruel evil is—that is not the problem. 내 안에 이 복음의 능력이 있는가, 내가 하나님 한 분과 함께 죽어도 다시 사는 믿음이 있는가, 이것이 더 중요한 문제이다. The more important issue is whether this gospel power is within you, whether you have the faith to die with God and live again. 바라기는 어떠한 악과 고통스런 현실 앞에서도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며 그분을 노래할 수 있는 믿음의 사람이 되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I pray in Jesus’ name that you may become a person of faith who trusts God’s promises and sings to Him in the face of all evil and painful realit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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