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라포션 11 남은 안식

이번 주 토라포션: 창 47:28-50:26/ 왕상 2:1-12/ 눅 4:31-5:11

토라포션 11 남은 안식 

 

요셉이 그의 아버지의 가족과 함께 애굽에 거주하여 백십 세를 살며 [23] 에브라임의 자손 삼대를 보았으며 므낫세의 아들 마길의 아들들도 요셉의 슬하에서 양육되었더라 [24] 요셉이 그의 형제들에게 이르되 나는 죽을 것이나 하나님이 당신들을 돌보시고 당신들을 땅에서 인도하여 내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게 하시리라 하고 [25] 요셉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맹세시켜 이르기를 하나님이 반드시 당신들을 돌보시리니 당신들은 여기서 해골을 메고 올라가겠다 하라 하였더라 [26] 요셉이 백십 세에 죽으매 그들이 그의 몸에 재료를 넣고 애굽에서 입관하였더라” ( 50:22-26)

 

지금까지 본 광고 중에서 가장 인상에 강하게 남았던 광고는 XBOX 광고였다. 한 임산부가 심호흡 끝에 아기를 낳는다. 그 아이가 튕겨져 나오면서 하늘로 날아가는데 날아가면서 그 아이가 청년으로, 노인으로 빠르게 늙어간다. 그리고 떨어져 내리면서 결국 관 속에 쳐박힌다. 그러면서 나오는 문구가 ‘Life is short, play more’이다. 인생이 짧으니 더 많이 놀라는 것이다. 그 광고를 보고서 XBOX는 사지 말아야지 생각했다. 인생이 짧은데 XBOX 갖고 놀 시간이 어디 있는가?

오늘 토라포션은 요셉이 관속에 들어가는 이야기다. 창세기의 마지막 장면이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세상의 시작으로 문을 연 창세기는 요셉의 죽음으로 끝을 맺는다. 오늘 성탄 예배는 탄생이 아니라 죽음에 대해서 이야기 하려 한다. 요셉의 마지막 유언을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을 살펴보며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한다.

요셉은 백십세의 삶을 살았다. 열일곱살 때 애굽에 내려 왔으니 애굽에서만 93년을 살았다. 요셉 때문에 야곱과 야곱의 열 두 아들 모든 가족이 애굽에서 살게 되었다. 70명의 가족이 430년을 지나면서 2백만이 넘는 민족으로 인큐베이팅 되었다.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겠다’고 아브라함에게 언약하신 하나님의 계획이 요셉의 삶을 통해 본격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아버지 야곱이 돌아가시자 형들은 요셉이 자신들에게 보복할까봐 두려웠다. 그러나 요셉은 이렇게 말했다.

창 50:19-21,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20]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21]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그는 한 마디로 하나님을 대신하지 않는 삶을 살려고 애썼다. 얼마든지 깊은 상처가 남을 수 있는 삶이었다. 형들에게 배신 당하고 노예로 팔려가고… 그러나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확신하며 하나님을 대신하지 않는 삶을 선택했을 때 요셉의 삶은 상처가 상처로 남지 않는 삶이 되었다. 그는 자기 아들의 증손자까지 보며 살았다. 바로의 다음 권력자로 장수까지 했으니 부러울 것이 없는 삶이었다.

그는 형제들 앞에서 유언한다. 24절, 요셉이 그의 형제들에게 이르되 나는 죽을 것이나 죽음은 모든 인간이 경험하는 현실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말씀하셨다. 창 3:19절,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생명나무가 아닌 선악과를 선택한 결과 죽음은 인간이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되었다. 롬 5:12,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죽음은 한 사람 아담의 죄의 결과 이 세상 안에 들어온 현실이 되버렸다. 요셉도 피할 수 없는 죽음이라는 현실을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요셉은 계속해서 형들에게 말한다. 24절, 하나님이 당신들을 돌보시고 당신들을 이 땅에서 인도하여 내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게 하시리라 하고 돌보신다는 말은 히브리어로 ‘파카드’다. 방문하신다는 말이다. 요셉은 하나님이 언제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방문하실 것이고, 이 백성들을 출애굽하여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실 것이라 믿고 있었다. 자신도 애굽의 총리로 정착했고,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제국에 뿌리를 내리고 살고 있는데 이 믿음의 근거는 무엇인가? 그것은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하나님의 언약에 기초한 것이다.

창 15:13-16절, 아브라함에게 하신 말씀이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반드시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히리니 [14] 그들이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벌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16] 네 자손은 사대 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가득 차지 아니함이니라

창 46:3-4절, 이것은 야곱에게 하신 말씀이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하나님이라 네 아버지의 하나님이니 애굽으로 내려가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거기서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4] 내가 너와 함께 애굽으로 내려가겠고 반드시 너를 인도하여 다시 올라올 것이며 요셉이 그의 손으로 네 눈을 감기리라 하셨더라 요셉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큰 민족이 되어 다시 가나안 땅으로 돌아오게 될 것에 대해 들었다. 그것이 그의 믿음이 되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돌보신 것은 요셉의 죽음 이후 359년 만에 이루어진다. 출 3:16절. 하나님이 모세를 방문하신 것이다.  너는 가서 이스라엘의 장로들을 모으고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 너희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 내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너희를 돌보아 너희가 애굽에서 당한 일을 확실히 보았노라

요셉은 자신의 사후에 분명히 이루어질 하나님의 방문에 대해 그 형제들에게 유언으로 남겼다. 그리고 유언만이 아니라 그들에게 맹세하도록 한다. 25-26절, 요셉이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맹세시켜 이르기를 하나님이 반드시 당신들을 돌보시리니 당신들은 여기서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겠다 하라 하였더라 [26] 요셉이 백십 세에 죽으매 그들이 그의 몸에 향 재료를 넣고 애굽에서 입관하였더라”

장례식은 입관, 발인, 하관의 순서로 진행된다. 입관은 시신을 관에 넣는 것이고, 하관은 관을 땅에 묻는 것이다. 요셉은 애굽에서 입관했지만 그의 뼈를 애굽땅에 묻기를 원하지 않았다. 하관은 하나님이 방문하실 때,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여 가나안 땅에 이르렀을 때 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시체는 향재료를 넣어 썪지 않게 미이라로 만들어진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무도 분명한 상징이 된다. ‘하나님이 방문하실 때가 반드시 있을 것이며, 너희는 내 해골을 메고 가나안 땅으로 올라갈 때가 반드시 온다’라는 것이다. 요셉은 죽어서도 그 후손들에게 강력한 상징이 되어 말하고 있는 것이다. 요셉이 애굽에서 높은 관직에 오른 것은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 고센 땅에서 아무리 풍요를 누리고 살고 있어도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 땅으로 다시 가야할 자들임을 요셉은 죽는 순간까지도 강력히 당부하고 있는 것이다.

이 당부는 모세와 여호수아를 통해 이루어진다. 출 13:19, 모세가 요셉의 유골을 가졌으니 이는 요셉이 이스라엘 자손으로 단단히 맹세하게 하여 이르기를 하나님이 반드시 너희를 찾아오시리니 너희는 내 유골을 여기서 가지고 나가라 하였음이더라 모세가 요셉의 해골을 챙긴다. 모세가 출애굽하여 광야를 지날 때 이스라엘 백성이 메고 간 두 개의 박스가 있었다. 하나는 언약궤, 하나는 요셉의 관이었다. 그런데 관과 언약궤는 모두 히브리어로 ‘아론’이다. 거기에 하나님의 약속이 담겨 있었다. 이것은 애굽에서 나올 때, 광야를 지날 때 이스라엘 백성에게 강력한 상징이 된다. ‘풍요로운 애굽이 너희의 영원한 거처가 아니다, 광야를 지날지라도 너희들이 결국에 이를 약속의 땅이 있다’라고 말해주는 것이다.

수 24:32절, 또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서 가져 온 요셉의 뼈를 세겜에 장사하였으니 이곳은 야곱이 백 크시타를 주고 세겜의 아버지 하몰의 자손들에게서 산 밭이라 그것이 요셉 자손의 기업이 되었더라 요셉의 무덤은 지금 세겜에 있다. 그곳에 하관하게 된 것이다. 요셉의 뼈는 359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과 동행하며 마침내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짐을 보며 땅에 묻힌 것이다. 히브리서 기자는 요셉의 유언을 믿음의 행위로 언급했다.

히 11:22, 새번역. 믿음으로 요셉은 죽을 때에, 이스라엘 자손들이 이집트에서 나갈 일을 언급하고, 자기 뼈를 어떻게 할지를 지시하였습니다.  히 11:13-16,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 [14] 그들이 이같이 말하는 것은 자기들이 본향 찾는 자임을 나타냄이라 [15] 그들이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16]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요셉의 삶은 믿음의 여정을 가는 모든 성도들의 삶을 예표적으로 보여준다. 이 세상에서 아무리 높은 지위에 오르고 성공했다해도 결국 우리는 더 나은 본향으로 가야할 존재라는 것이다. 애굽과 같은 세상을 전부로 알고 사는 것이 아니라 본향에 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여러분이 죽은 이후에 하나님이 약속하신 본향에 들어갈 소망이 있는가, 그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베드로 사도는 말한다. 벧전 1:3-4,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4]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이 말을 잘 해석해야 한다. 우리가 썩지 않는 유업을 잇는 것은 죽어서 천국에 가야 얻는 것이 아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하늘은 미래의 상태가 아니라 현실에 실재하는 하나님의 영역을 말한다. 썪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않는 유업을 잇는 것은 지금 이 땅에서 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부활하심으로 우리도 거듭나는 산소망이 있기 때문에 썩지 않는 유업을 받는 것은 지금 이 땅에서 누릴 수 있는 축복인 것이다. 마 5:3절,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이것은 욕심 없는 사람이 죽어서 천국 간다는 말이 아니다. 가난한 마음으로 예수를 따르는 자들이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서 누리게 된다는 말이다.

구약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이른 약속의 땅은 가나안이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나라를 선포하셨다. 예수님이 유대인 지도자 니고데모에게 하나님 나라에 대해 말씀하셨다. 요 3:3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여기서 하나님나라는 미래에 임하게 될 어떤 이상적인 곳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거듭날 때 이 땅에서 보게 되는 현재적인 실체다. 물론 하나님나라의 최종 완성은 미래에 이루어진다. 그러나 그 하나님 나라는 이미 예수님이 오심으로 이 땅에 시작된 것이다.

당시 유대인들은 하나님 나라가 표적과 권능으로 임할 것을 기대했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눅 17:20-21,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21]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하나님 나라는 정치적인 힘을 가진 왕국이 아니라는 것이다. 만약 그런 형태였다면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 시민이 되려고 애썼을 것이다.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다시 한번 말씀하셨다. 요 3:5절,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그러면서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말씀을 하셨다. 요 3:16-17절,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17]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성탄절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신 날이다. 우리의 죄를 사하고 사망 권세를 멸하는 목적을 가지고 죽기 위해 태어나신 날이다. 사람이 이 땅에 태어나서 관 속에 들어가는 것이 삶의 전부라면 얼마나 허무한가. 관에 들어가는 것이 영원한 안식이 아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우리의 삶이 죽음으로 끝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이 있음을, 그것이 실재임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리고 이 땅에 영원한 하나님 나라가 운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롬 5:17,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성탄절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이 세상에 방문하신 날이다. 인류를 위한 하나님의 구원 개입이 일어난 날이다. 그리하여 죄와 사망으로 신음할 수밖에 없는 이 땅의 질서를 뒤바꿔 놓은 날이다. 힘과 맘몬이 절대권력을 휘두르는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실재하고 움직이고 있음을 보여준 날이다. 그리하여 믿음으로 예수를 따르는 자들이 하나님 나라를 맛보고 생명 안에서 왕노릇하는 길이 열리게 된 날이다.

히 4:8-9, 만일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안식을 주었더라면 그 후에 다른 날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리라 [9]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하여 가나안에 이른 것은 참된 안식의 전부가 아니었다. 그것은 완전한 구원자가 오시기 전 하나의 구원의 모형이었다. 참된 안식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누리게 된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남겨 놓으신 그 안식을 누리고 있는가?

계 5:9-10, 그들이 새 노래를 불러 이르되 두루마리를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이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10] 그들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들을 삼으셨으니 그들이 땅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하더라 이것은 미래에 이루어질 일이 아니라 사도 요한이 서기 90년 경 환상 중에 보고 기록한 실재이다. 예수님의 오심과 죽으심으로 이 땅에 이미 하나님 나라가  시작되었다. 우리는 그 나라의 제사장으로 이 땅에서 왕노릇하라는 부르심을 받았다. 애굽에 머물며 안주하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위해 일어서는 삶이 되기를 바란다. 애굽의 질서를 무너뜨리고 광야를 지날지라도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남겨 두신 최종 안식에 이르는 사람들이 되길 바란다. 인생은 짧으나 삶은 영원하다.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서 보고, 함께 그 나라를 위해 움직이는 우리가 모두가 되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텔아비브 욥바교회 샤밧설교 2015년 12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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