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라포션 30 신부의 노래

텔아비브 욥바교회 2022년 4월 23일 설교 이익환 목사

나는 내 사랑하는 자에게 속하였도다 그가 나를 사모하는구나 내 사랑하는 자야 우리가 함께 들로 가서 동네에서 유숙하자 우리가 일찍이 일어나서 포도원으로 가서 포도 움이 돋았는지, 꽃술이 퍼졌는지, 석류 꽃이 피었는지 보자 거기에서 내가 내 사랑을 네게 주리라” (아가 7:10 – 12)

우리를 설레게 하는 많은 기다림들이 있다. 그 중에서도 신부가 결혼할 날을 기다리는 것만큼  설레는 일은 없을 것이다. 우리가 기다리면서 하는 것 있다. 날짜를 세는 것이다. 날짜를 세면서 그 날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리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지금도 유월절부터 오순절까지 50일이라는 기간 동안 날짜를 센다. 그것을 오멜 카운팅이라고 한다. 오늘은 그것을 왜 하는지 함께 살펴보며 은혜를 나누고자 한다.

23:15, “안식일 이튿날 너희가 요제로 곡식단을 가져온 날부터 세어서 일곱 안식일의 수효를 채우고여기서 곡식단을 세는 것이 히브리어로 ‘세피랏 하 오멜 (ספרת העמר)’이다. 오멜은 보리 한 묶음의 분량을 말한다. 약 2.2리터로 하루 분의 양식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 생활 할 때 거두었던 하루 분의 만나가 바로 한 오멜이었다. 유월절은 보리를 추수하는 시기다. 성전이 있던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유월절 안식일이 지나고 다음 날 동이 트면 처음 수확한 보리 한 오멜을 성전에 가지고 간다. 그것을 하나님께 흔들어 올리며 요제로 드린다. 이것이 처음 익은 열매를 드리는 초실절이다. 초실절은 히브리어로 비쿠림 (בכורים))이다. 이것은 ‘장자’라는 뜻의 ‘베코르(בכור)’에서 나온 말이다. 즉, 곡식의 장자라 할 수 있는 첫 열매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첫 열매를 드린다는 것은 앞으로 행할 모든 추수의 주인이 하나님이며, 하나님이 모든 수확을 지켜주실 것을 간절히 바라는 염원이 담겨져 있다. 이스라엘 일반 백성들은 이 초실절 제사 이후에 본격적으로 보리 추수를 시작한다. 이스라엘 성전 연구소에서는 이 말씀을 문자 그대로 지키기 위해 니산월 16일인 지난 토요일 밤 한 오멜의 보리를 추수하여 그 다음 주일날 아침 소제로 하나님께 드리는 행사를 했다.

23:16, “일곱 안식일 이튿날까지 합하여 오십 일을 계수하여 소제를 여호와께 드리되 유대인들은 초실절로부터 일곱 안식일, 즉 49일을 세어나간다. 그리고 50번째 날이 오순절인데, 유대인들은 이 날 추수한 밀을 성전으로 가져가 새 소제로 여호와께 드렸다. 결론적으로 유대인들이 유월절부터 오멜을 세는 것은 오순절에 이르러 풍성한 수확을 바랬기 때문이다.

그런데 성전이 파괴된 이후 유대인들은 더이상 소제를 성전에 드릴 수 없게 되었다. 성전 파괴 이후 유대인들은 오멜 카운팅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오순절이 바로 자신들이 토라는 받은 날이라는 것이다. 유대 문헌 미드라쉬에 의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유월절 출애굽을 하면서 정확히 50일 후에 토라가 주어질 것에 대해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들은 토라를 주실 그 날을 열망하며 날짜를 세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시내산에서 토라를 받는 날을 결혼식에 비유한다. 자신들이 하나님과 결혼한 날이라는 것이다. 그 결혼 언약의 증서로 십계명이 새겨진 두 돌판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 결혼식은 신랑이신 하나님과 신부 이스라엘 모두가 기다려 온 순간이었다. 유월절 애굽에서 노예였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오순절에 이르러 비로소 하나님의 신부로 탄생한 것이다.

신약 시대에 오멜을 세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예수님은 유월절 양 잡는 날에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그리고 예수님은 안식일 다음 날 초실절의 예물을 드리는 시각에 부활하셨다. 바울은 그 사실을 이렇게 표현한다. 고전 15: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열매가 되셨도다 예수님이 죽은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모든 영혼들의 추수가 시작되기 전 가장 먼저 부활하여 영원한 생명을 얻은 첫 열매, 즉 장자, 베코르(בכור)로 하나님께 드려진 것이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40일 동안 하나님 나라에 대해 가르치셨다. 그리고 승천하시기 전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1:4-5,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예수님은 이 말씀을 남기시고 하늘로 올라가셨다. 이제 오순절까지 남은 시간은 일주일 가량이었다. 제자들과 남은 자들은 예수님의 명령을 따라 마가다락방에 모였다. 그리고 마음을 같이하여 오직 기도에 힘썼다. 그들은 오멜을 세는 그 기간에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성령이 임하길 기다리며 하루 하루를 세어 나갔을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오순절 날이 이르렀을 때 그들은 약속대로 성령의 세례를 받는다. 구약의 오순절이 토라를 받은 날이라면, 신약의 오순절은 성령을 받은 날이 된 것이다. 구약의 오순절,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신부로 탄생했다면, 신약의 오순절, 교회는 주님의 신부로 태어난 것이다.

12세기 유대인 철학자 마이모니데스는 이렇게 말했다. ‘노예의 신분에서 풀려났다고 해서 모든 것이 끝난 것이 아니라, 새로운 법(십계명)이 주어졌을 때 비로소 그들은 진정한 자유를 가질 수 있었다.’ 구약 시대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오순절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하나님의 법을 아는 백성으로 태어난 것이다. 신약의 성도들 역시 오순절 성령을 받음으로 비로소 주님을 사랑하는 제자로 거듭나게 된다. 성령이 임하자 그들의 성품과 관점과 삶이 바뀌게 된 것이다. 유월절 전날 밤만 해도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 부인했다. 그러나 50일 뒤인 오순절 그는 성령의 사람으로 거듭난다. 초실절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그가 오순절에 성령의 인침을 받고 그의 마음에 사랑의 불이 붙게 된 것이다. 그 후 베드로도 완전히 달라진다. 죽기까지 그는 하나님 나라의 열매 맺는 일에 자신의 삶을 헌신하게 된다.

유월절 기간 동안 유대인들은 아가서를 읽는다. 왜 아가서일까? 아가서가 신부의 사랑의 노래이기 때문이다. 유대인 랍비들은 출애굽 사건이 단지 민족적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개인적 차원에서 이루어진 사건으로 적용하길 원했다. 그래서 아가서를 읽으며 출애굽 사건을 연인 사이의 사랑의 차원으로 기억하길 원한 것이다. 출애굽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노예에서 해방되어 하나님과 영원한 언약 관계로 들어간 사건이다. 출애굽 이야기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의 남편이 되어 그들과 함께 걷는 일에 대해 말하고 있는 이야기다. 아가서도 같은 맥락의 이야기다. 아가서는 스스로를 검다고 부끄러워 했던 술람미 여인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언약 관계로 들어간 이야기다. 사랑하는 자와 일어나 함께 걷는 일에 대해 말하고 있는 이야기인 것이다.

아가서 7장에는 신부의 고백이 나온다. 7:10, 나는 내 사랑하는 자에게 속하였도다 그가 나를 사모하는구나신부는 신랑의 사랑을 확신했다. 그리고 자신이 내 사랑하는 자에게 속하였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런 고백이 있기까지는 변화의 과정이 있었다. 아가서 2장 16절에서 신부는 이렇게 고백했었다. 내 사랑하는 자는 내게 속하였고 나는 그에게 속하였도다 도디 리 붸 아니 로 (דודי לי ואני לו). 술람미 여인은 “내 사랑하는 자는 내게 속하였”음을 먼저 고백한다. 그가 나의 소유가 된 것이 그녀에겐 중요했던 것이다. 그녀의 관심은 온통 자기 자신에게 있는 상태다. 그런데 아가서 6장 3절에서 신부는 이렇게 고백한다. 나는 내 사랑하는 자에게 속하였고 내 사랑하는 자는 내게 속하였으며 아니 레도디 붸 도디 리 (אני לדודי ודודי לי). 순서가 바뀌었다. 내가 내 사랑하는 자에게 속했다는 고백이 먼저 나온다. 그런데 아가서 7장 10절에 이르러서는나는 내 사랑하는 자에게 속하였도다,” “아니 레도디(אני לדודי)” 라는 고백만 나온다. 여인은 더이상 자기를 생각하지 않는다. 자기를 완전히 잊어버린다. 다만 자신이 사랑하는 자에게 속했다는 것만으로 만족한다. 그녀의 관심은 더이상 사랑하는 자가 내게 속해 있는지 아닌지가 아니다. 그것은 사랑하는 자가 자신을 사랑하고 있음을 그녀가 확신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사랑에 대한 의심이 사라질 때 우리는 온전히 헌신할 수 있다. 나의 즐거움이 아니라 사랑하는 자의 즐거움을 위해 온전히 헌신할 수 있다. 베드로가 그랬다. 그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고 자괴감에 빠졌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이 자신을 만나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세 번 질문하셨을 때, 그는 여전히 자신을 사랑하시는 그분의 사랑에 감격한다. 그 후 그는 온전히 주님을 위해 자신의 삶을 드리게 된다.

사랑에 빠진 사람들의 특징이 있다. 그들은 배타적이고 헌신적이고 자발적이다. 그들의 감정은 불처럼 맹렬하고 사랑하는 자를 위해 아끼지 않는다. 낭비하는 것을 아까워 하지 않는다. 아가서는 그런 사랑을 이렇게 표현한다. 8:6-7, “너는 나를 도장 같이 마음에 품고 도장 같이 팔에 두라 사랑은 죽음 같이 강하고 질투는 스올 같이 잔인하며 불길 같이 일어나니 그 기세가 여호와의 불과 같으니라 많은 물도 이 사랑을 끄지 못하겠고 홍수라도 삼키지 못하나니 사람이 그의 온 가산을 다 주고 사랑과 바꾸려 할지라도 오히려 멸시를 받으리라술람미 여인은 이러한 사랑에 빠져 사랑하는 자에게 이렇게 말한다.7:11-12, “내 사랑하는 자야 우리가 함께 들로 가서 동네에서 유숙하자 우리가 일찍이 일어나서 포도원으로 가서 포도 움이 돋았는지, 꽃술이 퍼졌는지, 석류 꽃이 피었는지 보자 거기에서 내가 내 사랑을 네게 주리라여인은 이제 사랑하는 사람과 모든 아름다운 순간을 함께 하길 원한다. 그리고 사랑하는 자에게 자신의 사랑을 아낌없이 주길 원한다.

7:13, “합환채가 향기를 뿜어내고 우리의 앞에는 여러 가지 귀한 열매가 , 묵은 것으로 마련되었구나 내가 사랑하는 너를 위하여 쌓아 것이로다 여인은 자신이 자신의 동산에서 가꾼 열매를 사랑하는 자와 나누길 원한다. 그녀는 새 것과 묵은 것으로 마련된 그 열매들이 사랑하는 자를 위해 쌓아 둔 것이라고 고백한다.  

신앙의 문제는 내가 교회에 잘 나가는지 아닌지에 관한 것이 아니다 신앙의 문제는 내가 주님과 사랑에 빠졌는지에 관한 것이다. 오순절에 하나님의 말씀인 토라를 주시고, 성령을 주신 것은 하나님이 그와 사랑에 빠진 신부를 얻기 위함이다. 결국 오멜을 세는 것은 오순절을 통해 시작될 풍성한 추수와 또한 사랑의 관계를 위함이다.

예수님은 대제사장과 백성의 장로들 앞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21:4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주님은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되길 원하신다는 사실이다. 하나님 나라의 열매는 어떻게 맺는가? 우리의 귀에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져야 한다. 우리 마음에 성령이 부어져야 한다. 그랬을 때 우리는 마음에 사랑의 불이 붙어 하나님 나라의 열매 맺는 일에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이다.

오늘이 오멜 카운트 일곱 번 째 날이다. 오순절까지 43일이 남았다. 우리가 살펴본 것처럼 유월절은 오순절을 통해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다. 유월절이 구원의 시작을 알리는 절기라면, 오순절은 시작된 구원을 완성하는 절기인 것이다. 이 유월절과 오순절 사이에서 우리 역시 기대감을 가지고 우리의 구원을 완성해야 한다. 바울은 말한다. 5:7-8,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유월절에 있었던 십자가 사건을 보면서 우리는 무엇보다도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마음에 확증해야 한다. 그리고 내 자신이 사랑하는 주님께 속해 있다는 한 가지 사실에 만족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랬을 때 우리 역시 사랑으로 응답할 수 있는 주님의 신부들이 되는 것이다. 바라기는 우리도 오순절까지 하루 하루를 세어 나가며, 신부의 노래를 부르게 되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