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확장

텔아비브 욥바교회 설교 2017년 8월 12일 이익환 목사

 

가족의 확장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시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18] 이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19]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엡 2:17-19)

 

3년 만에 한국에 다녀왔다. 안식월로 나갔지만 안쉼월을 보내고 왔다. 그래도 가족과 함께 할 수 있어서 좋았고, 새로운 영적 가족들과도 연결될 수 있어서 감사했다. 만나게 하신 사람들이 교회였다. 건물로서의 교회가 아니라 사람이 교회였다. 그런 하나님의 사람들을 만나게 하셨다. 우리가 없는 동안 교회를 지키며 기도해주신 여러분께 감사한다.

한국에 도착한 첫 날 누님들에게 전화를 했다. 두 누님은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 분들이다. 누님들은 ‘너 언제까지 이스라엘에 있을거냐… 이제 만나면 담판을 짓자’고 하셨다. 86세에 혼자 계시는 아버지를 이제는 한국에 나와 가까이 모시며 사역하라는 압력이었다. 큰 매형과도 통화를 했다. ‘이제 이스라엘에서 한국으로 이주할 준비 다 됐지?’라고 물으셨다. 빨리 이스라엘에서 나오라는 무언의 압력이었다. 한국에 나온 첫 날부터 나는 ‘가족’ 앞에서 작아지고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다음날 새벽에 눈이 떠 졌다. 지금은 돌아가신 어머니께서 새벽기도하시던 동네 교회에 갔다. 그 날 목사님은 하나님의 권속, 가족에 대한 설교를 했다. ‘가족’이라는 단어만으로 많은 감정이 밀려왔다. 회한의 눈물이 나왔다. 그동안 가까이서 부모님과 형제들 사이에 우애를 돈독하게 할 기회를 갖지 못한 아쉬움이 밀려왔다. ‘나는 왜 이스라엘에 있는걸까?’ ‘왜 이곳으로 부르셨을까?’ 다시금 질문이 나왔다. 기도 중에 한국에 가기 전 설교 때 나누었던 나의 가족사가 다시 떠올랐다.

나는 원래 장자가 아니었다. 내가 13살 때 형이 사고로 죽으면서 내가 장자가 되었다. 그것도 2대독자가 된 것이다. 누님 두 분도 계셨지만 누님들은 찬밥이었고 나는 부모님의 관심과 사랑을 독차지하게 되었다. 그것이 당연한 것인 줄 알았다. 형이 끊어지고 그 자리에서 부모님의 사랑을 독차지하게 된 나의 가족사, 그런데 그것은 바로 교회의 역사였다. 유대인이 넘어진 자리에서 이방인인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받는 자녀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나의 가족사 때문에 하나님은 나를 이스라엘로 부르셨다는 생각이 다시금 들었다. 부르심이 확인되자 눌린 마음이 펴지기 시작했다. 부르심을 따르는 삶은 인간의 논리에 따라 상대 평가를 받지 않는다. 하나님 앞에 절대 평가를 받는다. 부르심을 따르는 삶은 사람이 평가 할 수 없고 사람에게 평가 당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르는 삶보다 사람들의 평가에 매이는 삶을 살기에 잘난 사람도 위축되는 것이다.

부르심은 단순히 내가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를 아는 것이 아니다. 부르심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의 구원을 위해 먼저 유대인을 장자로 부르셨다. 그러나 그들이 세상의 빛이 되는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자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통하여 이방인들을 영적 장자로 부르셨다. 바울은 이것을 참감람나무의 원가지가 꺾이고 그 자리에 돌감람나무 가지인 이방인이 접붙여진 것으로 표현했다.

롬 11:17절, “또한 가지 얼마가 꺾이었는데 돌감람나무인 네가 그들 중에 접붙임이 되어 참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 자가 되었은즉” 원가지인 유대인이 꺾이고 이방인이 접붙여진 것으로 구원 역사는 끝이 났는가? 그렇지 않다. 성경은 유대인들이 다시 접붙여지는 것에 대해서도 말한다. 롬 11:23-24, “그들도 믿지 아니하는 데 머무르지 아니하면 접붙임을 받으리니 이는 그들을 접붙이실 능력이 하나님께 있음이라 [24] 네가 원 돌감람나무에서 찍힘을 받고 본성을 거슬러 좋은 감람나무에 접붙임을 받았으니 원 가지인 이 사람들이야 얼마나 더 자기 감람나무에 접붙이심을 받으랴”

성경은 유대인들이 꺾여졌지만 다시 접붙여지는 것에 대해 말하고 있다. 언제 이들이 다시 접붙여지게 될까? 성경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올 때까지’라고 말한다. 롬 11:25-26,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 있다 하면서 이 신비를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 신비는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우둔하게 된 것이라 [26]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으리라”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올 때가 언제인지 모른다. 그러나 언젠가 유대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다시 자기 감람나무에 접붙여져서 구원받게 되는 것은 성경이 말하고 있는 분명한 하나님의 뜻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작정이기에 교회인 우리는 마땅히 이스라엘의 구원을 바라봐야 하는 것이다.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차면 하나님께서는 다시 이스라엘을 구원하고 회복하실 것이다. 롬 11:12, “그들의 넘어짐이 세상의 풍성함이 되며 그들의 실패가 이방인의 풍성함이 되거든 하물며 그들의 충만함이리요” 유대인들의 넘어짐이 세상의 풍성함이 되었다. 그러나 그들이 다시 충만함으로 회복될 때 이 땅의 교회, 하나님 나라의 가족이 누릴 수 있는 은혜의 풍성함은 그 이전과 비교할 수 없는 놀라운 것이 될 것이다. 물론 우리 개개인이 누리는 하나님의 은혜는 충분하다. 그러나 하나님의 가족을 생각할 때 우리는 충만한 것이 아니다. 우리의 구원을 위해 아직도 넘어져 있는 장자가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너무도 오랜 시간을 기다려왔다. 하나님께서도 너무 오래 기다리셨다. 그래서 나는 여러분께도 도전한다.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차서 유대인들이 다시 구원을 얻도록 기도하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바란다. 이방인과 유대인 모두가 하나님의 자녀로 회복되는 것, 그것이 하나님께서 그리시는 하나님 나라의 가족의 완성된 모습이기 때문이다.

바울은 말한다. 엡 2:17-19,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시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18] 이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19]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여기서 ‘먼 데 있는 너희’는 구원에서 멀리 있던 이방인을 말한다. ‘가까운데 있는 자들’은 원래 하나님의 구원에서 가까이 있었던 유대인을 말한다. 하나님이 꿈꾸시는 완성된 교회의 모습은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차별없이 모두가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가는 것이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권속으로, 하나의 영적인 가족으로 세워지는 것이다.

이번에 한국에 들어간지 삼일째 되는 날이 어머니의 기일이었다. 포항에서, 파주에서 누님 가정이 올라왔다. 누님들은 담판짓겠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어머니 산소에 가기 전 아침에 가족회의가 있었다. 작은 누님은 ‘왜 한국에 나와서 사역하면 안되냐, 왜 많은 사역자가 있는데 하필이면 네가 이스라엘에 있어야 하느냐’고 울먹이며 내게 하소연했다. ‘이제 너 얘기 좀 들어보자’고 추궁했다. 인민재판이 이런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대답할 차례가 됐다. 그러나 누님의 질문은 내가 새벽기도를 통해 이미 답을 얻었던 질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 날 새벽에 받았던 마음을 가족 앞에서 나눴다. 먼저 가족간의 우애들 돈돈히 할 시간을 갖지 못해 안타깝다고 말했다. 두 누님이 아버지 곁에서 수고를 다해준 것에 감사했다. 물론 가족도 소중하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부르심이 먼저라고 얘기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먼저 따르지 않으면 나는 존재의 명분이 없어지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형 대신 내가 아버지 어머니의 사랑을 독차지하게 된 것은 누님들도 알지 않냐? 그런데 그것이 교회의 역사’라고 말했다. 유대인이 끊어지고 대신 이방인들이 구원받게 된 것이 교회의 역사라고 말했다. 그러나 하나님의 구원 역사는 과거로 끝난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성경은 앞으로 유대인의 회복에 대해 말하고 있고 나는 이것을 믿는다고 말씀드렸다. 장자가 끊어진 가족사가 있기에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시간까지 내가 이스라엘에 있어야 하고 내가 시간을 정할 수 없다고 말씀드렸다. 누님들은 더이상 질문하지 않았다. 이해가 된 것 같았다. 큰 누님이 갑자기 화제를 바꿨다. ‘비오기 전에 빨리 산소에 가자’ 그리고 우리는 어머니 산소를 찾아가 예배하며 함께 울었다.

나와 여러분은 하나님 나라의 가족이다. 하나님 나라의 가족은 자기 가족의 행복만을 위해 살지 않는다. 확장된 하나님 나라 가족의 회복을 위해 산다. 그것이 하늘 아버지의 뜻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12장 50절에서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고 말씀하셨다.

3년만에 한국에 나가보니 마트에는 물건이 넘쳐나고 음식문화는 더욱 다양해졌다. 우리 아이들도 한국 갈 때 뭘 먹을까 행복한 고민을 하며 음식 리스트를 뽑았다. 순대국, 간장 게장, 수원왕갈비, 짜장면… 승구가 순대국을 좋아해서 순대국만 네 번 먹고 왔다. 한국처럼 음식문화가 다양한 나라가 없는 것 같다. 한국에 나와 만난 한 선교사님은 한국에서 지낸 느낌을 이렇게 말씀하셨다. ‘돈 쓸데는 많고 돈 벌기는 더욱 힘든 사회가 된 것 같다’라고… 이런 시대에 자기 자신과 자기 가족의 행복만을 추구하기해도 늘 모자라고 부족하게 느껴질 것이다. 다른 것으로 채울 수 있는 것이 너무 많아 하나님 한 분을 향한 갈망, 먼저 그 분의 뜻을 구하는 배고픔을 갖기 힘들겠다고 느껴졌다.

예수님은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우리가 하나님의 가족이라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대로 사는 자가 되길 바란다. 하늘 아버지의 뜻대로 사는 것이 부르심이다. 부르심이 있는 사람은 세상속에서 위축되지 않는다. 한국에 나간 그날 새벽 다시 부르심을 확인한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초대받은 교회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과 한가지에 대해서만 나누었다. 가족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방 교회인 우리에게 가족의 확장이 필요하다는 것을 나누었다.

유대인들도 하나님의 가족이다. 하나님은 이방 성도들을 통해 이 장자들이 시기하며 돌아오게 되길 기다리고 계신다. 이들이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받게 되기를 기다리신다. 이방인인 우리가 이스라엘 땅에 교회로 존재한다는 것은 역사적인 일이다. 나는 우리 교회 모든 성도들 안에도 가족의 확장이 일어나길 도전한다. 육신의 가족을 넘어서서 우리 모두가 한 가족처럼 서로를 위하며 뜨겁게 사랑하는 교회가 되길 바란다. 또한 하나님이 회복하기 원하시는 장자 유대인들을 위해서도 기도하는 가족이 되길 바란다. 우리는 유대인에게 복음에 대해 빚진 자들이다.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아직도 넘어져 있다. 이제는 우리가 유대인의 접붙임을 위해 일해야 한다. 그들을 다시 접붙이실 능력은 하나님께 있음을 나는 믿는다. 바라기는 하나님 나라의 가족이 확장되고 회복되는데 나와 여러분이, 그리고 우리 욥바교회가 사용되어지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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