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phet 16: 다니엘 2 마지막을 기다리는 성도의 자세

20250830 텔아비브 욥바교회 샤밧예배 설교 이익환 목사

Prophet 16: 다니엘 2 마지막을 기다리는 성도의 자세

너는 가서 마지막을 기다리라 이는 네가 평안히 쉬다가 끝날에는 네 몫을 누릴 것임이라” (단 12:13)

“As for you, go your way till the end. You will rest, and then at the end of the days you will rise to receive your allotted inheritance.”

기다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Waiting is not necessarily a difficult task. 기다림은 사실 가슴 설레는 일이다. In fact, waiting can be an exciting and hopeful experience. 그러나 그 기다림이 어려워지며 고통으로 바뀌는 때가 있다. However, there are times when waiting becomes difficult and turns into suffering. 그 기다림이 언제 끝날지 모를 때 기다림은 고통이 된다. When we do not know when the waiting will end, waiting becomes a source of pain. 우리가 ‘언제까지 입니까?’라고 질문할 때 기다림은 고통이 된다. When we ask, “How long, Lord?” waiting turns into agony. 우리가 병원에서 진단 결과를 기다릴 때, 전쟁에 나간 자녀의 소식을 기다릴 때, 비자의 결과를 기다릴 때 그 기다림은 고통이 된다. When we wait for medical results, news of children at war, or the outcome of visa applications, that waiting becomes a burden.

오늘 우리는 다니엘서 마지막 장을 살펴볼 것이다. Today, we will examine the final chapter of the Book of Daniel. 이 장에서 다니엘은 ‘너는 가서 마지막을 기다리라’는 명령을 듣는다. In this chapter, Daniel receives the command, “Go your way, and wait for the end.” 이 마지막을 기다리라는 것이 다니엘에게는 어떤 의미였을까? What did this call to wait for the end mean for Daniel? 여기 있는 우리 역시 ‘마지막’을 생각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All of us here have probably reflected on what “the end” means. 우리는 세상에서 벌어지는 전쟁과 기후 이상, 도덕적 타락 등을 보면서 마지막이 가까이 온 것은 아닐까 종종 생각한다. We often wonder whether the end is drawing near as we witness wars, climate anomalies, and moral decay in the world. 세상의 종말이 아니더라도 우리 모두는 죽음이라는 마지막을 언젠가는 맞게 된다. Even if it is not the end of the world, we all eventually face the ultimate end: death. 그러나 그 죽음 너머 주님이 다시 오시는 세상의 끝 날 역시 우리는 마주하게 될 것이다. Beyond death, we will also face the day of the Lord’s return at the world’s ultimate conclusion. 오늘 말씀을 통해 그 마지막을 기다리는 것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보고자 한다. Through today’s message, we want to reflect on what it means to wait for that end.

다니엘서 12장은 주전 536년경 다니엘이 힛데겔 강가에서 본 환상이다. Daniel chapter 12 is a vision Daniel received around 536 BCE by the river Hiddekel. 다니엘은 한 천사를 통해 다음과 같은 예언을 듣는다. Through an angel, Daniel receives the following prophecy. 단 12:1, “그 때에 네 민족을 호위하는 큰 군주 미가엘이 일어날 것이요 또 환난이 있으리니 이는 개국 이래로 그 때까지 없던 환난일 것이며 그 때에 네 백성 중 책에 기록된 모든 자가 구원을 받을 것이라” Daniel 12:1, “At that time Michael, the great prince who protects your people, will arise. There will be a time of distress such as has not happened from the beginning of nations until then. But at that time your people–everyone whose name is found written in the book–will be delivered.” 이는 이스라엘이란 나라가 생긴 이후로 그 때까지 없었던 큰 환난이 올 것이라는 예언이었다. This was a prophecy that a great tribulation would come, unlike anything since the founding of the nation of Israel. 그 일은 실제 안티오쿠스 4세를 통해 주전 170년 역사적으로 이루어진다. Historically, this was fulfilled around 170 BCE through Antiochus IV. 그는 자신의 이름을 “에피파네스(ἐπιφανής) 즉, ‘신의 현현’이라 부를 만큼 교만했다. He arrogantly called himself “Epiphanes” (ἐπιφανής), meaning “God manifest.” 그는 헬라의 왕으로 세상을 헬라화 하길 원했다. As a Hellenistic king, he sought to Hellenize the world. 그리하여 헬라의 문화와 종교를 강요했다. He forced Greek culture and religion upon his subjects. 그는 기원전 167년,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 제우스 신상을 세우고 제단 위에 돼지를 제물로 바쳤다. In 167 BCE, he entered the Jerusalem temple, erected an image of Zeus, and sacrificed a pig on the altar. 이는 유대인에게 있어 가장 큰 모독이자, 다니엘이 말한 ‘멸망하게 하는 가증한 것”(שִׁקּוּץ מְשֹׁמֵם, 단 11:31; 12:11)이었다. For the Jews, this was the ultimate desecration, the “abomination that causes desolation” Daniel had foretold (Dan 11:31; 12:11). 그는 유대인들에게 제물로 바친 돼지고기를 억지로 먹게 했다. He forced Jews to eat pork offered as a sacrifice. 이를 거부하는 자는 고문당하거나 죽임을 당했다. Those who refused were tortured or killed. 그는 토라를 소유하거나 읽는 것을 금지했다. 발견되는 즉시 불태웠다. He forbade the possession or reading of the Torah, burning any copies found. 할례를 금지했고, 할례 받은 아기를 발견하면 어머니와 아이를 함께 죽였다. He banned circumcision, and if a circumcised child was discovered, both mother and child were executed. 또한 안식일 준수를 금했다. 안식일을 지키는 자는 사형에 처했다. He also prohibited Sabbath observance; anyone keeping the Sabbath was executed. 한 분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지키려는 유대인들에겐 정말 큰 환난이 아닐 수 없었다. For Jews seeking to remain faithful to the one God, this was an immense trial.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다. 믿음을 지키려는 자에게는 세상의 조롱과 핍박이 있다. Today, it is the same for us. Those who seek to keep their faith encounter the mockery and persecution of the world. 그 환난의 강도가 마지막 때에 어떻게 증폭될지 모른다. We cannot predict how the intensity of this tribulation will increase in the last days. 그러나 하나님은 미가엘 천사가 하늘의 천사들을 소집하여 일어날 것이고, 하나님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는 그 환난 속에서 구원을 받게 된다고 약속하신다. But God promises that Michael the archangel will rise, summoning the angels of heaven, and those written in the book of life will be delivered through the tribulation. 성경은 이렇게 환난의 크기보다, 하나님의 보호가 더 크다고 말한다. The Bible thus teaches that God’s protection outweighs the magnitude of any tribulation.

천사가 이어서 말한다. The angel continues, saying. 단 12:2, “땅의 티끌 가운데에서 자는 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깨어나 영생을 받는 자도 있겠고 수치를 당하여서 영원히 부끄러움을 당할 자도 있을 것이며” Daniel 12:2, “Multitudes who sleep in the dust of the earth will awake: some to everlasting life, others to shame and everlasting contempt.” 천사는 두 부류의 사람에 대해 말하고 있다. The angel speaks about two groups of people. 한 부류는 환난 가운데 믿음을 지키다가 죽은 사람들이다. One group consists of those who remained faithful through tribulation and died. 그러나 하나님은 그러한 사람들을 죽음에서 일으켜 영생을 주실 것을 약속하신다. Yet God promises to raise these people from the dead and grant them eternal life. 이것은 구약 성경 가운데 가장 분명한 부활의 약속이다. This is the clearest promise of resurrection in the Hebrew Scriptures. 마카비후서 7장에는 한 어머니와 일곱 아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2 Maccabees 7 recounts the story of a mother and her seven sons. 왕은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의 율법을 버리고, 돼지고기를 먹으라고 강요한다. The king forced the Jews to abandon God’s law and eat pork. 그러나 한 가정이 끝까지 거절한다. But one family refused until the end. 그러자 왕은 맏아들을 붙잡아, 그의 혀를 잘라내고 사지를 뜯어 고문한 후 끓는 물에 던져 죽인다. The king seized the eldest son, cut out his tongue, tore his limbs, tortured him, and finally threw him into a boiling water to die. 그 장면을 바라본 엄마의 심정이 어땠을까? How must the mother have felt as she witnessed this scene? 그러나 놀랍게도 그 엄마는 흔들리지 않았다. Yet astonishingly, the mother remained steadfast. 오히려 다른 아들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만드셨고, 너희도 다시 살리실 것이다. 그러니 율법을 버리지 말고, 믿음을 굳게 지켜라.” She even said to her other sons, “The Creator God made heaven and earth and will raise you again. Therefore, do not abandon the law, and hold fast to your faith.” 결국 둘째, 셋째, 그리고 일곱째 아들까지 차례로 죽임을 당했지만, 그 누구도 굴복하지 않았다. Eventually, the second, third, and seventh sons were killed in turn, yet none yielded. 특히 셋째 아들은 손과 혀를 내밀며 이렇게 고백한다: “너희가 이것들을 빼앗을지라도, 하늘의 왕께서는 다시 돌려주실 것이다!” Especially, the third son stretched out his hands and tongue, confessing, “Even if you take these from me, the King of Heaven will restore them!” 마지막 일곱째 아들이 죽음을 앞두자, 어머니는 아들의 귀에 속삭인다: “얘야, 나를 바라봐라. 나는 너를 열 달 동안 내 태에 품었고, 젖으로 키웠다. 그러나 나는 너를 다시 살릴 수 없다. 오직 창조주 하나님께서 너를 부활하게 하실 것이다.” As the seventh son faced death, the mother whispered into his ear, “My child, look at me. I carried you for ten months in my womb and nourished you with my milk, yet I cannot raise you again. Only the Creator God will resurrect you.” 결국 아들 모두가 순교하고, 그녀 자신도 마지막에 죽음을 당한다. All the sons were martyred, and she too ultimately died. 이 일은 유대인들에게 부활 신앙의 씨앗이 된 대표적 사건이었다. This became a seminal event sowing the seed of resurrection faith among the Jews. 이때 일어난 신앙의 저항 운동이 바로 기원전 164년에 있었던 마카비 혁명이었다. The resistance movement that arose at this time was the Maccabean Revolt in 164 BCE. 마카비와 그의 형제들이 봉기하여 하스모니안 왕조를 세우고, 성전을 정결하게 회복시킨 사건이 바로 하누카의 기원이다. The uprising by the Maccabees and their brothers, establishing the Hasmonean dynasty and purifying the temple, marks the origin of Hanukkah. 이렇게 믿음을 지키기 위해 저항했던 사람들이 바로 다니엘서가 “티끌 가운데서 자는 자들이 깨어날 것”이라는 약속의 실제 모습이다. Those who resisted to preserve their faith exemplify the fulfillment of Daniel’s promise that “those who sleep in the dust shall awake.” 그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They did not fear death.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다시 살리실 것을 믿었기 때문이다. Because they believed God would raise them again. 그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목숨보다 소중히 여겼다. They valued God’s law above their own lives. 세상의 권력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선택했다. They chose God’s Word over worldly power. 그들은 부활의 소망으로 고난을 이겼다. They overcame suffering through the hope of resurrection. 오늘 우리도 이런 믿음을 본받아야 한다. Today, we too must follow such faith. 세상이 우리에게 타협을 요구할 때, 우리는 끝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아야 한다. When the world demands compromise, we must hold fast to God’s Word. 삶의 고난과 환란 속에서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 We must not waver amidst life’s trials and tribulations. 죽음을 넘어서는 부활의 소망을 굳게 붙잡아야 한다. We must firmly grasp the hope of resurrection beyond death.

천사가 말한 다른 한 부류는 환난가운데서 믿음을 포기하고 세상과 타협하는 사람들이다. The angel also speaks of another group: those who abandon faith and compromise with the world amid tribulation. 실제로 일부 유대 권력층들은 안티오쿠스 4세의 헬레니즘 정책을 받아 들인다. Indeed, some Jewish authorities accepted Antiochus IV’s Hellenistic policies. 그들은 환난에서 목숨을 부지할 수 있게 되지만 결국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섰을 때 영원한 부끄러움을 당하게 될 것이다. They may survive the tribulation, but when standing before God’s judgment, they will face everlasting shame. 이처럼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은 이 세상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Thus, God’s righteous judgment does not end in this world. 그 심판은 우리가 영원히 살게 될 내세로 이어지는 것이다. It continues into the afterlife where we will live eternally.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동안 목숨을 걸고서라도 우리의 신앙을 지키는 것이 중요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This is why it is crucial to preserve our faith even at the cost of our lives while living in this world. 단 12:3,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 Daniel 12:3, “Those who are wise will shine like the brightness of the heavens, and those who lead many to righteousness, like the stars for ever and ever.” 여기서 ‘지혜 있는 자’는 단순히 똑똑한 사람을 말하는 게 아니다. Here, “the wise” does not merely refer to intelligent people. 안티오쿠스 4세의 박해 아래에서도 하나님을 따르고 그 분의 법에 순종했던 이들을 말한다. It refers to those who remained faithful to God and kept His law despite the persecution under Antiochus IV. 환난 중에도 믿음을 지켰기 때문에 그들의 삶이 많은 사람을 부활 신앙으로 이끈 것이다. Because they kept their faith amid tribulation, their lives guided many others toward resurrection faith. 어둡고 혼란스러운 시대 속에서도 믿음을 지켜내고, 결국 이웃을 믿음으로 이끄는 사람, 그 사람이 하늘의 별과 같이 영원히 빛나리라고 말씀하신다. Even in dark and chaotic times, those who preserve their faith and lead others in faith shall shine like the stars forever.

단 12:4, “다니엘아 마지막 때까지 이 말을 간수하고 이 글을 봉함하라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리라” Daniel 12:4, “But you, Daniel, close up and seal the words of the scroll until the time of the end. Many will go here and there to increase knowledge.” 왜 천사는 다니엘에게 ‘이 말을 간수하고 이 글을 봉함하라’고 했을까? Why did the angel tell Daniel to “close up and seal the words of the scroll”? 이 말은 다니엘이 들은 예언의 말씀을 비밀로 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This does not mean that the prophecy Daniel heard should remain a secret. 그런 의미였다면 다니엘서는 우리에게 전해지지 않았을 것이다. If that were the case, the Book of Daniel would not have been passed down to us. ‘봉함하라’는 히브리 단어는 ‘하탐(חתם)’이다. The Hebrew word for “seal” is ḥātam (חתם). ‘글을 봉투에 넣고 인을 치다’라는 의미다. It means “to put a document in an envelope and affix a seal.” 고대 근동에서 ‘글을 봉함하라’는 표현은 그 내용이 공식적으로 인정되었고 결코 바뀔 수 없다는 의미이다. In the ancient Near East, to “seal a writing” meant that its content was officially recognized and could not be altered. 따라서 글을 봉함한 이유는 그 예언의 말씀이 성취될 때까지 잘 보존하라는 의미다. Therefore, the purpose of sealing the writing is to preserve the prophecy until it is fulfilled.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인치신 예언의 말씀은 반드시 하나님이 정하신 때에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In other words, a prophecy sealed by God will certainly be accomplished at God’s appointed time. 이처럼 하나님의 때는 우리의 시간표가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인 계획 안에서 드러난다. God’s timing is not according to our schedule, but unfolds according to His sovereign plan. 우리는 그것을 다 알 수 없다. 다 알 필요도 없다. We cannot fully know it, and we don’t need to. 우리가 할 일은 때를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때를 신뢰하며 기다리는 것이다. Our task is not to calculate the timing, but to trust His timing and wait.

이어서 다니엘은 환상 중에 두 사람의 대화를 듣는다. Then Daniel hears a conversation between two men in the vision. 강 이쪽에 있는 사람이 강 저쪽에 있는 사람에게 질문한다: “이 놀라운 일의 끝이 어느 때까지입니까? (6절)” One on this side of the river asks the one on the other side, “How long shall it be to the end of these wonders?” (v.6) 답이 들려온다.The answer comes. 단 12:7, “반드시 한 때 두 때 반 때를 지나서 성도의 권세가 다 깨지기까지이니 그렇게 되면 이 모든 일이 다 끝나리라” Daniel 12:7, “It will be for a time, times and half a time. When the power of the holy people has been finally broken, all these things will be completed.” 이 대화를 들은 다니엘은 듣고도 깨닫지 못한다. Daniel hears it but does not understand. 사실 그것은 누구도 알 수 없는 일이다. Indeed, it is something no one can fully know. 그래서 다니엘은 질문한다. “내 주여 이 모든 일의 결국이 어떠하겠나이까(8절)” So Daniel asks, “My lord, what will be the outcome of these things?” (v.8) 다니엘은 그 끝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Daniel wanted to know the end. 자신의 민족이 언제까지 그러한 환난 가운데 있어야하는지 그는 궁금했다. He wondered how long his people would endure such tribulation. 강 저편에 있던 사람이 답한다. The one across the river answers. 단 12:9-10, “다니엘아 갈지어다 이 말은 마지막 때까지 간수하고 봉함할 것임이니라 많은 사람이 연단을 받아 스스로 정결하게 하며 희게 할 것이나 악한 사람은 악을 행하리니 악한 자는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되 오직 지혜 있는 자는 깨달으리라” Daniel 12:9-10, “Go your way, Daniel, because the words are closed up and sealed until the time of the end. Many will be purified, made spotless and refined, but the wicked will continue to be wicked. None of the wicked will understand, but those who are wise will understand.” 그는 환난이 언제 끝난다고 바로 답을 주지 않는다. He does not give a direct answer as to when the tribulation will end. 먼저 그는 환난 가운데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설명한다. First, he explains how people respond amid tribulation.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환난이 올 때 두 종류의 사람으로 나뉘게 되는 것을 알 수 있다. Through this, we see that in times of trial, people are divided into two types. 먼저는 환난이 올 때 환난을 연단의 시기로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One type of people considers tribulation as a period of testing. 그들은 고통의 때에 자신을 돌아보고 회개하며 스스로 정결하게 한다. They reflect, repent, and purify themselves in times of suffering. 반면 환난이 올 때 악과 타협하며 악을 행하는 사람이 있다. The other type of people compromises with evil and acts wickedly during tribulation. 그러나 악한 자는 그 환난의 이유를 깨닫지 못한다. The wicked do not understand the purpose of the tribulation. 오직 지혜 있는 자가 그 환난의 이유를 깨닫는 것이다. Only the wise comprehend the reason for the tribulation.

단 12:11-12, “매일 드리는 제사를 폐하며 멸망하게 할 가증한 것을 세울 때부터 천이백구십 일을 지낼 것이요 기다려서 천삼백삼십오 일까지 이르는 그 사람은 복이 있으리라” Daniel 12:11-12, “From the time that the daily sacrifice is abolished and the abomination that causes desolation is set up, there will be 1,290 days. Blessed is the one who waits for and reaches the end of the 1,335 days.” 여기서 천이백구십 일은 삼년 반에 해당하는 기간이다. The 1,290 days correspond to three and a half years. 7절에 ‘한 때 두 때 반 때’는 합치면 삼년 반이다. The “time, times, and half a time” in verse 7 also totals three and a half years. 안티오쿠스 4세 에피파네스가 멸망의 가증한 것을 성전에 세운 지 삼년 반 만에 어떠한 일이 일어났는지 아는가? Do you know what happened three and a half years after Antiochus IV Epiphanes set up the abomination in the temple? 주전 164년 자기 하나님을 아는 백성, 마카비와 그 형제들이 용감하게 일어나 저항했고, 안티오쿠스 4세를 물리치며 성전을 다시 회복한 것이다. In 164 BCE, the Maccabees and their brothers, God’s people, courageously rose up, resisted, defeated Antiochus IV, and restored the temple. 이 사건은 고난과 박해를 견디며, 그 마지막을 기다리며 사는 성도들에게 하나의 원형이 되는 사건이었다. This event serves as a prototype for believers who endure suffering and persecution while patiently waiting for the end.

다니엘서의 결론은 이렇다. The conclusion of the Book of Daniel is as follows. 단 12:13, “너는 가서 마지막을 기다리라 이는 네가 평안히 쉬다가 끝날에는 네 몫을 누릴 것임이라” Daniel 12:13, “As for you, go your way till the end. You will rest, and then at the end of the days you will rise to receive your allotted inheritance.” 마지막을 기다리라는 것이다. It calls him to wait for the end. 히브리어로는 ‘아타 레카 레케츠’ (אתה לך לקץ)다. In Hebrew, it reads ‘Ata lecha leqets’ (אתה לך לקץ). 직역하면 ‘너는 마지막(케츠)까지 걸어가라’이다. Literally, it means “You shall walk to the end.” ‘걷다’라는 동사 ‘할라크(הלך)’는 ‘너 자신의 길을 가라’는 의미가 있다. The verb “walk” (halak, הלך) carries the meaning of “walk your own path.” 이 말은 그 환난의 마지막이 있을 것을 기다리면서 다니엘이 감당해야 할 삶의 길을 걸어가라는 뜻이다. It means that Daniel is to walk the path of life he must endure while waiting for the final end of tribulation. ‘이는 네가 평안히 쉬다가 끝날에는 네 몫을 누릴 것임이라’는 원어로 ‘타누아흐 베타아마드 레그랄네카 레카츠 하야민(תנוח ותעמד לגרלך לקץ הימין)’이다. The phrase “You will rest, and then at the end of the days you will rise to receive your allotted inheritance” in the original Hebrew is “tanuach ve-ta’amod le-goralecha leqets hayamin” (תנוח ותעמד לגרלך לקץ הימין). 직역하면 ‘너는 쉴 것이고, 그 날들의 마지막에 네 몫에 설 것이다’이다. Literally, “You shall rest, and at the end of the days you shall stand at your portion.” 다니엘의 삶이 다하고 그가 하나님 앞에 서게 되는 날이 있다는 것이다. It means that there is a day when Daniel’s life will be complete, and he will stand before God. 그 때 다니엘이 살아온 삶에 대한 몫이 주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At that time, he will receive his due reward for the life he has lived.

요한계시록도 같은 맥락의 말을 마지막을 기다리는 성도들에게 전한다. The Book of Revelation conveys the same message to believers waiting for the end. 계14:13,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이르되 기록하라 지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이르시되 그러하다 그들이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그들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 Revelation 14:13, “Then I heard a voice from heaven say, “Write: Blessed are the dead who die in the Lord from now on.” “Yes,” says the Spirit, “they will rest from their labor, for their deeds will follow them.” 우리는 이 마지막을 염두에 두고 살아야 한다. We must live with this end in mind. 이 마지막을 기다리며 살아야 한다. We are to live awaiting that final day. 종말이 가까왔으니 세상과 단절하고 주님의 재림만 기다리라는 말이 아니다. This does not mean isolating from the world and waiting only for the Lord’s return. 우리는 그 마지막 순간까지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We must faithfully walk the path of life given to us until that final moment.

오늘날 현대인들은 세상의 마지막이 있다는 것에 관심이 없는 듯하다. Nowadays, many people seem indifferent to the concept of the world’s end. 오늘 누리고 즐길 수 있는 것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This is because there is so much to enjoy in the present. 그들은 언젠가 하나님 앞에 선다는 생각이 없이 사는 것 같다. They seem to live without thinking about standing before God one day.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백성이라면 우리는 마지막 날 하나님 앞에 어떤 모습으로 서게 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But if we are God’s people, we must consider how we will stand before Him on the last day. 많은 사람들이 성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시대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계명을 우리의 삶으로 지켜내야 한다. In an age where many people disregard morals for success, we must uphold God’s commandments through the way we live our lives. 많은 사람이 세상의 권력을 가진 자들 앞에서 쉽게 무릎 꿇는 시대에 우리는 변함없이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신앙인으로 살아야 한다. In a time when people easily bow before worldly powers, we must live faithfully as believers in Jesus as our Savior. 하나님이 정하신 마지막이 있음을 아는 사람은 그 마지막이 두렵지 않다. Those who know God has appointed an end do not fear it. 그런 사람은 인생의 종말인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Such a person does not fear death, the ultimate end of life. 그런 사람은 인생의 모든 수고를 다할 때까지 구원의 확신 속에서 평안을 누릴 수 있다. They can enjoy peace in the assurance of salvation until they have completed all their life’s labors. 그리고 그 마지막에 이를 때까지 오늘 하루 하루,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것이다. And until that final day comes, they walk each day faithfully on the path of life given to them. 끝까지 예배 자리를 지키는 것, 말씀을 놓지 않는 것, 작은 신앙의 타협을 하지 않는 것, 이러한 것들이 다니엘서를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마지막을 기다리는 성도들의 자세이다. Remaining in worship, holding fast to the Word, and refusing small compromises of faith – these are the attitudes of believers waiting for the end, as Daniel teaches us. 그 마지막이 있음을 알기에 우리는 오늘 나에게 주어진 하루를 주목하는 것이다. Knowing the end exists, we focus on the day given to us. 세상이 악해질수록, 분열과 전쟁으로 소란할수록 우리는 우리의 일상에서 하나님이 맡기신 책임을 다해야 한다. As the world grows more wicked, and turmoil and wars increase, we must fulfill the responsibilities God has entrusted to us in our daily lives. 바라기는 마지막을 기다리되, 오늘 하루를 주님과 동행하며 충성되게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May we wait for the end while walking faithfully with the Lord each day; I bless you all in the name of Jesus.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