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서 12 다윗의 관계 맺기

2018년 11월 24일  텔아비브 욥바교회 설교 이익환 목사

사무엘서 12 다윗의 관계 맺기

다윗이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에게 전령들을 보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너희 주 사울에게 이처럼 은혜를 베풀어 그를 장사하였으니 여호와께 복을 받을지어다 너희가 이 일을 하였으니 이제 여호와께서 은혜와 진리로 너희에게 베푸시기를 원하고 나도 이 선한 일을 너희에게 갚으리니 이제 너희는 손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할지어다 너희 주 사울이 죽었고 또 유다 족속이 내게 기름을 부어 그들의 왕으로 삼았음이니라 하니라” (삼하 2:5-7)

 

지난 주 책을 읽다가 ‘인간관계 O2O’라는 단어를 알게 되었다. O2O는 Online to Offline의 약자인데, 온라인에서 맺는 관계가 오프라인의 관계를 대신한다는 것이다. 온라인에서 밥을 먹거나 스터디 할 사람을 찾는 것은 물론이고, 취미생활이나 여행을 함께 할 친구까지 찾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는 것이다. 대부분 일회성 만남에 그치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더 편하게 느낀다고 한다. 휴지처럼 한번 쓰고 마는 것이기에 이런 관계를  ‘티슈인맥’이라고 한다. ‘랜선이모’라는 말도 알게 되었다. 유튜브나 블로그에 공개된 남의 집 아이를 보며 마치 친조카인듯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부르는 말이라 한다. 오프라인 관계에 지친 사람들이 랜선으로 맺어진 관계에 더 편안함과 친밀감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관계를 떠나서 살 수 없다. 과거에는 관계에 쏟는 에너지를 어느 정도 감수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었지만 이제는 그것을 당연하다고 여기지 않는 사람이 증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람들이 관계를 맺고 싶은 욕망을 SNS를 통해 충족하면서 진짜 관계에 대한 필요를 대신하고 있는 현실이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본문에는 다윗이 사람들과 관계 맺는 장면들이 나온다. 그가 어떻게 사람들과 연결되는지 살펴보며 지혜를 얻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삼하 2:1, “그 후에 다윗이 여호와께 여쭈어 아뢰되 내가 유다 한 성읍으로 올라가리이까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올라가라 다윗이 아뢰되 어디로 가리이까 이르시되 헤브론으로 갈지니라” 다윗을 죽이려 했던 사울은 죽고 없다. 도망자로서의 다윗의 삶이 드디어 끝났다. 그의 나이 서른에 이제 인생의 새로운 기회가 열린 것이다. 다윗은 이제 왕권을 얻기 위해 그의 인생의 속도를 높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시간을 기다렸다. 그는 인생의 방향을 하나님께 구했다. 그는 유다지파의 한 성으로 올라가야할지 하나님께 물었다. ‘올라가라’는 응답을 받았다. 그러면 어디로 가야할지 또 물었다. 그리고 ‘헤브론으로 가라’는 응답을 받았다.

 

아브라함 아비누 “아브라함 우리의 아버지”

 

왜 헤브론일까? 유대인 랍비들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헤브론이란 지명의 어원에서 찾는다. 헤브론의 동사형은 레하벨(לחבר) 인데, ‘to connect’, ‘연결하다’란 뜻이다. 하나님이 다윗을 무언가에 연결해주기 위해 헤브론으로 인도하셨다는 것이다. 헤브론은 잘 알다시피 족장들의 무덤이 있는 곳이다.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 그리고 그들의 아내들이 다 이곳에 묻혔다. 그들은 지금까지도 모든 유대인에게 우리 아빠(아비누), 우리 엄마 (이마누)이다. 다시 말하면 헤브론은 유대인들에게 자신들의 엄마 아빠가 묻힌 곳이다. 정신적인 고향과도 같은 곳이다. 폴 존슨은 ‘이곳이야말로 4천 년 유대인의 역사가 시작된 곳, 시간과 공간 속에 닻을 내렸던 곳이다’라고 말한다.  랍비들은 하나님께서 다윗을 헤브론으로 인도하신 이유가 그를 유대인들의 정신적인 뿌리인 족장들과 연결시켜주기 위해서라고 설명한다. 다윗의 정통성을 그들의 조상과 연결시켜주신 것으로 보는 것이다. 나름 의미가 있는 설명이다.

 

다윗은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헤브론에 올라간다. 두 아내와 자기와 함께 했던 600여명의 추종자들, 그리고 그들의 가족들을 다 데리고 올라가 헤브론 각 성읍에 살게 한다.

 

삼하 2:4, “유다 사람들이 와서 거기서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유다 족속의 왕으로 삼았더라” 다윗은 유다 지파의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는다. 그의 두번째 기름부음이다. 왕이 되어 그가 했던 첫번째 일은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과 관계 맺는 것이었다. 삼하 2:4, “어떤 사람이 다윗에게 말하여 이르되 사울을 장사한 사람은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이니이다 하매” 다윗은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의 왕이 아니었다. 그들은 사울에게 속한 사람이었다. 그들은 사울에게 은혜를 입은 사람들이었다. 암몬 사람들이 길르앗 야베스를 침략하려 했을 때 사울이 전쟁을 이끌며 그들을 구해주었다. 사울이 길보아 산에서 죽었을 때 누구보다도 슬퍼했던 사람들이 바로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블레셋이 사울의 시체를 벧산 성벽에 못 박았다는 사실을 알고 위험을 무릅쓰고 그의 시체를 가져와 장사하고 칠 일 동안 애도하며 금식했다. 어떤 사람이 다윗에게 이 사실을 말해준 것이다.

 

삼하 2:5-7절의 NLT번역이다. he sent them this message: “May the LORD bless you for being so loyal to your master Saul and giving him a decent burial. May the LORD be loyal to you in return and reward you with his unfailing love! And I, too, will reward you for what you have done. Now that Saul is dead, I ask you to be my strong and loyal subjects like the people of Judah, who have anointed me as their new king.”

 

loyal이란 단어가 세 번 쓰였다. ‘충성스러운’이란 뜻이다. 다윗은 사울에 대한 그들의 충성을 칭찬했다. 하나님께서 충성된 그들을 충실하고 변함없는 사랑으로 갚아주시기를 축복했다. 그리고 한가지 더 그는 길르앗 사람들에게 유다사람들처럼 ‘자신의 강하고 충성된 국민 (my strong and loyal subjects)’이 되어주길 요청했다. 하나님 나라는 충성된 사람들을 통해 세워지고 확장됨을 다윗은 알았던 것 같다.

 

 

삼하 2:8-9, “사울의 군사령관 넬의 아들 아브넬이 이미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을 데리고 마하나임으로 건너가 길르앗과 아술과 이스르엘과 에브라임과 베냐민과 온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았더라” 사울의 군사령관이었던 아브넬은 사울의 아들을 왕으로 세우고 다윗과 대결하게 된다. 다윗은 지역은 작지만 헤브론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에 기초에 확고한 기반을 다지고 있었다. 반면 아브넬은 옛 영광을 빼앗길까봐 힘을 규합하며 다윗보다 훨씬 더 많은 많은 지역을 확보한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기초하지 않았기에 아브넬은 보이는 힘을 추구하며 거기서 안전감을 얻으려 했던 것이다.

 

 

삼하 2:12-13, “넬의 아들 아브넬과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의 신복들은 마하나임에서 나와 기브온에 이르고 스루야의 아들 요압과 다윗의 신복들도 나와 기브온 못 가에서 그들을 만나 함께 앉으니 이는 못 이쪽이요 그는 못 저쪽이라” 사울의 군대장관 아브넬의 부대와 다윗의 군대장관 요압의 부대가 기브온 못가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다. 아브넬은 요압에게 먼저 싸움을 제안한다. 이스보셋 편의 12명과 다윗의 신복 중에 12명이 대표로 싸웠다. 결과는 다윗의 신복들의 승리였다. 어디서 차이가 났을까? 나는 그것이 충성의 차이라고 보고 싶다. 다윗의 신복들은 광야에서 다윗과 함께 고생하며 충성된 관계로 맺어졌던 것이다. 충성된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를 위해 자신을 던질 수 있는 것이다.

 

이 싸움에서 요압의 동생 아사헬이 아브넬을 뒤쫓다가 그에 의해 살해된다. 그리고 이후 아브넬은 요압에 의해 살해된다. 다윗은 아브넬의 죽음을 슬퍼하며 애가를 지어부른다. 자신과 적의 관계였지만 다윗은 음식먹기를 거부하며 그의 죽음을 애도한다. 삼하 3:36-37, “온 백성이 보고 기뻐하며 왕이 무슨 일을 하든지 무리가 다 기뻐하므로 이 날에야 온 백성과 온 이스라엘이 넬의 아들 아브넬을 죽인 것이 왕이 한 것이 아닌 줄을 아니라”

다윗은 적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하나님 앞에 충성되었기에 자신의 유익을 위해 행동하지 않았다. 그의 기준은 하나님이었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큰 지도자였던 아브넬의 죽음을 안타까워했다. 그리고 자기 사람이지만 칼로 악을 행한 요압을 오히려 저주한다.

 

아브넬의 죽음 이후 권력의 공백을 틈타 쿠데타가 벌어진다. 이스보셋왕의 군지휘관 두 명이 이스보셋을 살해한 것이다. 그들은 그의 머리를 다윗에게 가져온다. 다윗이 좋아했을까? 그렇지 않았다. 이번에도 그의 판단기준은 자신의 유익이 아니라 하나님이었다. 다윗은 무죄한 자를 피를 흘린 그들을 헤브론 못가에서 처형한다.

 

이스라엘 군대장관이었던 아브넬도 죽었고 왕인 이스보셋도 죽었다. 북쪽 지파의 장로들은 더이상 버틸 수가 없었다. 그들은 결국 다윗을 찾아와 그를 온 이스라엘 왕으로 기름붓는다. 헤브론에서 유다의 왕이 된지 7년 6개월 만에 이제 다윗은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된다. 그가 처음 사무엘에게 기름부음을 받았을 때 그 기름부음은 사울을 대신하는 왕이 되는 것이었다. 따라서 그의 비전은 유다 족속의 왕위를 유지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이스라엘 전체를 마음속에 품을 수밖에 없었다. 그가 유다지파 외 다른 이스라엘 지파를 적으로 여기지 않았던 이유가 거기에 있다. 이스라엘 모든 지파의 장로들은 다윗의 중심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고백한다.

 

삼하 5:1-2, 이스라엘 모든 지파가 헤브론에 이르러 다윗에게 나아와 이르되 보소서 우리는 왕의 한 골육이니이다 전에 곧 사울이 우리의 왕이 되었을 때에도 이스라엘을 거느려 출입하게 하신 분은 왕이시었고 여호와께서도 왕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며 네가 이스라엘의 주권자가 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라”

 

그들은 “우리는 왕의 한 골육이니이다(הִנְנ֛וּ עַצְמְךָ֥וּֽ בְשָׂרְךָ֖ אֲנָֽחְנוּ׃)”라고 고백한다. ‘에쩸’은 뼈, ‘바살’은 살이다. 우리가 한 피로 맺여진 형제라는 것이다. 그들은 또한 하나님께서 다윗을 이스라엘의 주권자가 되게 하실 것을 알고 있었다. 다윗은 하나님이 그에게 심어놓으신 언약과 비전을 충성스럽게 마음에 간직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비전에 따라 상황을 판단했고 행동으로 옮겼다. 처음 기름부음을 받고 이제 37세가 된 다윗은 20년이 넘는 시간을 이 비전을 따라 살았고 마침내 이스라엘 전체의 왕이 된 것이다. 다윗은 하나님이 인도하신 헤브론에서 하나님의 비전에 충성되었기에 그는 결국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는 축복을 받게 되었다. 그는 자기를 대적하는 사람들을 적으로 만들지 않았고 결국은 다시 하나로 결속된 이스라엘 전체의 왕이 된 것이다.

 

우리는 지금 점점더 파편화되고 개인화되는 사회를 살아가고 있다. 자신의 유익이 기준이기에 공동체 안에서도 헌신되고 오래된 충성된 관계를 찾기가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나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충성된 사람들을 통해 이 땅에 세워진다. 많은 현대인들이 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모르기에 힘을 규합하고 자기 세력을 확장하는 것을 통해 안전감을 누리려 하는 것이다. 그런 과정에서 자신에게 해를 끼친다고 생각되면 언제든지 다른 사람들을 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지금 여러분이 있는 곳이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헤브론이 되길 바란다. 하나님은 하나님나라를 위하여 서로가 연결되는 중심에 우리가 있기를 원하신다. 그렇기에 나를 힘들게하는 사람이 나타나도 우리의 기준은 보다 높은 곳에 있길 바란다. 하나님의 나라는 결국은 뼈와 살이 만나는 인간관계를 통해 이 땅에서 확장된다. 그리고 장차 우리는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주님을 만나게 될 것이다. 쉬운 관계, 유익이 되는 만남만을 추구하려는 이 세대에도 변함없이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사람들과 그 가치에 충성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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