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 설교_ 어린 양의 노래

텔아비브 욥바교회 설교 2019년 4월 20일 이익환 목사

부활절 설교_ 어린 양의 노래

또 내가 보니 불이 섞인 유리 바다 같은 것이 있고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이 유리 바다 가에 서서 하나님의 거문고를 가지고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 어린 양의 노래를 불러 이르되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하시는 일이 크고 놀라우시도다 만국의 왕이시여 주의 길이 의롭고 참되시도다 주여 누가 주의 이름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오리이까 오직 주만 거룩하시니이다 주의 의로우신 일이 나타났으매 만국이 와서 주께 경배하리이다 하더라 (계 15:2-4)

유월절이 시작됐다. 이번 유월절에는 실제 유월절 사건이 있었던 이집트에 가보고 싶었다. 그래서 지난 일요일 갑작스럽게 타바 국경을 통해 이집트에 갔다. 급히 출애굽했던 이스라엘 백성처럼 급히 이스라엘을 빠져나갔다. 이스라엘을 당신의 언약백성으로 세우셨던 시내산에 오르는게 이번 여정의 목적이었다. 새벽 2시부터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아내는 1km도 못가서 거의 혼수상태였다. 요즘 부쩍 무릎이 아프다고 호소했는데, 그런 아내를 끌고온 게 이미 무모한 일이었다. 유창이는 엄마가 이 상태로는 올라갈 수 없다고 말했다. 한 1 km를 더 갔는데 다행히 낙타가 나타났다. 아내를 낙타에 태우고 유창이와 나는 3570개의 계단을 올랐다. 생각보다 힘들었다. 힘들어 죽겠는데 아내는 낙타 등위에서 밤하늘의 별을 보며 찬양을 불렀다.

새벽 6시경 정상에 올랐다. 그날 구름이 있어서 일출은 생각보다 멋있지 않았다. 사람들이 빠져 내려간 뒤 시내산 꼭대기에서 칼바람을 맞으며 찬양했다. ‘가돌 엘로하이,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키코 아하브..’ 찬양하며 내려다본 시내산 풍경이 그야말로 감동이었다. 이스라엘을 다시 하나님의 언약 아래 두고 싶은 마음에 시내산 정상에 이스라엘 국기를 펼쳐 놓고 사진을 찍었다. 유월절, 그 구원의 은혜가 다시 이 민족에게 임하게 되길 소원한다.

오늘 우리는 우리의 상상력을 동원하여 역사의 현장속으로 이동했으면 한다. 먼저 우리가 이동할 현장은 기원전 1446년 출애굽이 있었던 이집트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명령대로 출애굽을 준비했다. 가족대로 어린 양을 택하여 유월절 양으로 잡았다. 우슬초 묶음을 가져다가 그릇에 담은 피에 적셔서 그 피를 문인방과 좌우 기둥에 뿌렸다. 그날밤 그 피를 뿌린 집은 죽음의 사자가 건들지 못하고 넘어갔다. Pass over, 사망의 권세가 유월(逾越), 넘어간 것이다. 애굽 전역에서는 장자들의 죽음으로 인한 통곡이 있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통곡소리를 들으며 급히 라암셋을 떠났다. 이스라엘 백성이 살아남은 것은 그들이 의로워서가 아니었다. 사망의 권세가 유월절 어린 양의 피로 인해 넘어갔기 때문이다. 이것은 장차 이루실 하나님의 완벽한 구원의 모델이 되는 것이다.

다음으로 우리가 이동할 곳은 요단강 예수님 세례터다. AD 27년경 세례요한은 주의 길을 예비하기 위해 베다니 부근 요단강에서 세례를 베풀고 있었다. 세례요한은 이곳에서 자기에게 나아오시는 예수님을 본다. 그리고 외친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 1:29) 세례요한은 계시를 통하여 그가 인류의 죄를 위해 죽임당하실 하나님의 어린 양임을 직감했다. 그의 직감대로 예수님은 그로부터 3년 뒤 유월절 양잡는 시각에 골고다 언덕에서 피를 흘리며 죽게 된다. 어제 사마리아 유월절 행사에 다녀왔다. 정확히 해가 지는 시각에 대제사장의 명령이 떨어지자 사마리아의 젊은이들이 일제히 양을 도살했다. 그들의 죄를 사하기 위해 어린 양이 대신 피흘리며 죽어야 했던 것이다.

예수님은 유월절 마지막 식사를 제자들과 하실 때 잔을 들고 말씀하셨다. 마 26:28,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죄의 댓가는 죽음이지만 예수님이 흘리신 피를 믿음으로 받아들인 사람은 구원받았다. 그들이 의로워서가 아니다. 예수님이 대신 피흘려 죽으셨기 때문에 우리를 향한 사망권세가 유월(逾越), 넘어가게 된 것이다. 이 사실을 깨달은 사도 바울이 이렇게 외쳤다. 고전 5:7,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느니라

우리가 마지막으로 이동할 곳은 오늘 요한계시록의 배경이 되는 천국이다. 사도요한은 AD90년경 밧모섬에 유배되어 있다가 환상 중에 하늘의 열린 문을 통해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가게 된다. 사도 요한은 거기서 일곱 인으로 봉해진 두루마리를 열기에 합당한 자가 보이지 않아 운다. 그러나 그는 곧 어린 양으로 상징되는 존재를 보게 된다.계 5:5-6, 장로 중의 한 사람이 내게 말하되 울지 말라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겼으니 그 두루마리와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 하더라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한 어린 양이 서 있는데 일찍이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요한은 이어서 이십사 장로들와 천사들이 부르는 새노래를 듣게 된다. 계 5:9-10, 그들이 새 노래를 불러 이르되 두루마리를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이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그들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들을 삼으셨으니 그들이 땅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하더라

우리가 지금까지 상상속에서 이동한 현장들에서 공통적으로 본 것이 있다. 그것은 죽임 당한 어린 양이었다. 먼저 출애굽 유월절 밤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대신해서 죽은 어린 양이었다. 그 다음 골고다 언덕에서 온 인류를 대신해서 죽임 당한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였다. 그리고 이제 부활하여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신 승리하신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였다.  

우리는 또한 오늘 본문인 요한계시록 15장에서 어린 양의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이 노래를 부르는 사람은 누구인가? 계 15:2, 또 내가 보니 불이 섞인 유리 바다 같은 것이 있고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이 유리 바다 가에 서서 하나님의 거문고를 가지고 그들은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이라고 묘사되어 있다. 이들은 짐승과 우상에게 절하지 않고 믿음을 지킨 하나님의 사람들이다. 다니엘은 바벨론 제국에 살면서 사자굴에 들어갈지라도 느부갓네살왕이 만든 금신상에 절하지 않았다. 로마제국에 살던 기독교인들도 순교의 제물이 될지언정 황제 앞에 절하지 않았다. 하나님 한 분에 대한 믿음을 지킨 사람들이 천상에서 부르고 있는 노래가 바로 어린양의 노래인 것이다. 계 15:3,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 어린 양의 노래를 불러 이르되 주목할 것은 이들이 부르고 있는 노래를 모세의 노래라고도 표현하고 있다는 것이다. 왜 그런지 살펴보자.

먼저 천상의 성도들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다.계 15:3,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하시는 일이 크고 놀라우시도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홍해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을 경험했다.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들은 홍해 건넌 후 노래를 부르며 전능하신 하나님을 찬양했다. 출 15:1-2, 이 때에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이 이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니 일렀으되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 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시로다 그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찬송할 것이요 내 아버지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높이리로다” 애굽이라는 강력했던 제국도 하나님의 전능하심 앞에 무릎 꿇어야 했다. 하나님의 전능하신 손길로 구원을 경험한 자들은 그 하나님이 하신 일들을 찬양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어서 천상의 성도들은 의로우신 하나님을 찬양했다. 계 15:3, 만국의 왕이시여 주의 길이 의롭고 참되시도다 신명기에서도 모세는 의로우신 하나님을 찬양한다. 신 32:4, 그는 반석이시니 그가 하신 일이 완전하고 그의 모든 길이 정의롭고 진실하고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시니 공의로우시고 바르시도다 모세의 노래를 계시록에서도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 날에 주의 백성인 우리들도 이 공의롭고 참되신 하나님을 찬양하게 될 것이다.

신 32:43, 너희 민족들아 주의 백성과 즐거워하라 주께서 그 종들의 피를 갚으사 그 대적들에게 복수하시고 자기 땅과 자기 백성을 위하여 속죄하시리로다 모세가 노래했던 이 예언은 언제 이루어지는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자기 백성을 위하여 속죄하심으로 이루어진다. 하나님이신 그분이 의로우신 심판의 대상이 되어 친히 희생의 피를 흘리신 것이다. 아무 죄없으신 분이 어린 양처럼 순순히 죽임 당하신 것이다. 예수님께서 우리가 받아야 할 하나님의 공의의 진노를 받으신 것이다. 하나님의 속죄를 노래하고 있는 이 모세의 노래는 결국 예수님을 통한 완전한 속죄를 노래하는 어린 양의 노래인 것이다. 요한계시록에서 천상의 성도들은 유월절 어린 양 예수님이 만국의 왕이시며, 그의 구원이 의롭고 참되다고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천상의 성도들은 또한 주의 거룩하심을 찬양하며 만국이 주께 나아와 경배할 것을 노래한다.계 15:4, 주여 누가 주의 이름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오리이까 오직 주만 거룩하시니이다 주의 의로우신 일이 나타났으매 만국이 와서 주께 경배하리이다 하더라 

인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 그것은 하나님의 어린 양이 죽임을 당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순종하여 죽임 당하신 어린 양이 영원한 경배의 대상이 되게 하셨다. 또한 하나님의 계획은 이 땅에서 어린 양을 노래하며 따르는 자들을 일으키는 것이었다. 성경은 어린 양을 따르지 않는 자들의 운명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계 13:8,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이름이 기록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그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이것이 인간 삶의 실제이다.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지 않는 사람들은 결국 이 땅에서 힘을 가진 세력, 짐승으로 묘사되는 세상의 시스템에게 절할 수 밖에 없다. 그들은 그들의 반석이신 예수를 업신여기고, 결국은 멸망하게되는 세상의 권력에 머리를 조아리며 살게 되는 것이다.

결국 이 땅에 사는 우리는 누가 세상의 주인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그것은 어린 양을 따를 것이냐, 짐승을 따를 것이냐의 선택이다. 아무 힘없는 어린 양을 따르는 것은 무력해 보인다. 바보같아 보인다. 세상에서 힘을 가진 짐승 편에 서는 것, 그것이 더 안전하게 보일 수 있다. 부와 힘과 윤택함을 보장 받는 길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결국 무너지고 마는 길이다.

오늘날 우리 역시 짐승의 시대를 살고 있다. 과학기술의 진보와 인본주의의 영향으로 예수님을 업신여기고, 그를 따르는 것이 조롱받는 시대를 살고 있다. 오늘날 누가 이 짐승의 시대에 맞설 수 있을까? 권력이 있는 자가 아니다. 부자가 아니다. 어린 양을 따르며 어린 양을 향해 노래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최후 승리가 어린 양께 있음을 아는 자들이다.죽어도 다시 살게 됨을 믿는부활신앙을 가진 자들이다. 우리가 그런 사람들이기를 축원한다. 요 11:25-26절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셨다.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이 말씀이 믿어지는 역사가 오늘 이 부활절에 임하길 축원한다.

성경은 짐승의 시대를 사는 자들에게 최후 승리가 어디있는지 보여준다. 계 17:13-14, 그들이 한 뜻을 가지고 자기의 능력과 권세를 짐승에게 주더라 그들이 어린 양과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 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므로 그들을 이기실 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받고 택하심을 받은 진실한 자들도 이기리로다

사실 사단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힘을 가진 자가 아니다. 어린 양과 그 분이 흘리신 보혈이다. 그리고 그 어린 양을 따르는 자들이다. 의로우신 분이 순종하며 흘리신 보혈 앞에 사탄은 두려워 떨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 함께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우리를 위해 희생당하신 예수님을 노래하길 원한다. 그분이 흘리신 보혈의 능력을 찬양하길 원한다. 유월절 어린 양으로 오셨던 예수님은 이제 승리하신 메시야로 다시 이 땅에 오실 것이다. 그 때 어린 양의 혼인잔치에 다같이 참여하는 주의 백성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2 thoughts on “부활절 설교_ 어린 양의 노래

  1. 홍순욱 답글

    샬롬, 이 목사님! 인천의 홍순욱 목사입니다.
    이 목사님의 부활절 설교문을 읽고 감동되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이 참에 평소에 가지고 있던 의문을 말씀드려 봅니다;
    첫째, 유대인들에게 어린양의 대속의 피가 필요했던 이유는 그들이 죽을 죄를 저질렀기 때문일텐데
    유대인들이 이집트제국에서 노예생활을 하면서 저지른 죽을 죄는 무엇이었을가요?

    둘째, 엄격하게 따지자면 성경에는 부활절이란 단어는 없습니다.
    유월절-무교절과 연관된 절기는 부활절이 아니라 초실절이 아닙니까?
    저는 이 문제에 평생 걸려 있습니다.

    셋째, 고전 15장에 보면 메시아 예수님께서 사망 권세를 이기셨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그 사망 권세가 이집트제국의 장자들을 죽인 하나님의 권세입니까?
    아니면 유대인들의 장자들을 죽인 이집트제국의 바로의 권세입니까?

    질문 같지도 않은 愚問을 드려서 죄송합니다만 그래도 저는 답답해서 愚問을 드렸습니다.

    • telavivchurch33 글쓴이답글

      네 목사님 반갑습니다. 질문해 주셔서 감사하고 간단히 제 답변을 드립니다.

      1. 요셉이 죽은 이후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이 퇴보했음을 우리는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백성들이 애굽의 신들을 섬겼다는 사실을 우리는 여호수아 24장 14절에서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그를 섬기라 너희의 조상들이 강 저쪽과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치워 버리고 여호와만 섬기라” 하나님의 백성들이 아브라함 이후 자신들에게 주신 사명을 잊어버리고 애굽의 우상들을 섬긴 것, 그것이 가장 큰 죄가 아니었을까 합니다.

      2. 예수님은 정확히 초실절에 부활하셨습니다. 바울도 고린도전서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고전 15장 20절,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예수님은 초실절에 부활하심으로 절기의 의미를 완성하셨습니다. 부활절은 기독교의 절기로 정해지는 과정에서 이교도적인 요소들이 반영된 부분이 분명 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절기로 정착된 이상 예수님의 부활이라는 본질적인 사실에 집중하여 절기를 지키면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3. 사망 권세는 아담의 불순종으로 인해 모든 인류에게 임한 운명이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로마서 5:12,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고린도전서 15-21-22,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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