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라포션 16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

텔아비브 욥바교회 2020년 2월 15일 설교 이익환 목사

토라포션 16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출 19:5-6)

초등학교 때 학교에서 가훈(家訓)을 조사한 적이 있었다. 그 때 아버지와 함께 급히 정했던 가훈이 있었다. ‘정직 성실 근면’이었다. 아마도 한 50%의 가정이 똑같은 가훈을 쓰지 않았을까 한다. 가훈은 그 가족이 지향하는 가치를 담은 사명 선언문이다. 우리나라에도 ‘기적의 사명선언문’이란 책이 소개되면서 한동안 개인이나 기업에서 사명선언문을 작성하는 것이 유행했던 적이 있다. 예수님도 사명선언문이 있었다.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그것을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다!” 이처럼 ‘사명선언문’은 개인이 추구하는 삶의 핵심가치를 담고 있다. 그렇기에 한 개인이 계속 그러한 가치를 따라 살도록 동기부여를 하는 것이다. 오늘 본문에는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라는 사명선언문이 나온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사명선언이었다. 역사상 한 민족이 이러한 사명선언을 갖는 건 전무후무한 일이다. 하나님께서는 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이라는 사명선언을 주셨을까? 그리고 이것은 오늘 우리와 어떤 상관이 있을까? 함께 생각해보며 은혜를 나누고자 한다.

출 19:1,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을 떠난 지 삼 개월이 되던 날(In the third month) 그들이 시내 광야에 이르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유대력 세번 째 달인 시반월에 시내산에 도착한다. 그리고 시반월 6일 모세는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받는다. 이 날이 바로 유월절로부터 오십일 째인 오순절날이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출 19:5-6, “세계가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말을  듣고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하나님께서는 애굽에서 노예였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제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이 되라는 사명을 주신 것이다. 실로 엄청난 변화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시킨 목적이 있었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을 제사장나라와 거룩한 백성으로 만들기 위해서다. ‘제사장 나라’는 히브리어로 ‘맘레켓 코하님(כֹּהֲנִ֖ים מַמְלֶ֥כֶת)’이다. ‘제사장들의 왕국’이라고 번역할 수 있다. 제사장은 누구인가?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이어주는 사람이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복이 사람들에게 전해지도록 통로 역할을 하는 사람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 전체가 제사장의 사명을 감당하는 나라로 세워지기 원하셨다. 그리하여 이 민족을 통해 열방에 하나님의 복을 전하기 원하셨다. 이것은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부터 갖고 계셨던 하나님의 비전이었다. 창 12:2-3,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이제 막 애굽에서 나와 난민과도 같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열방을 축복하는 제사장나라로 세워질 것을 상상해보라. 이 사명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현되었을까?

모세는 광야생활을 끝내고 가나안 진입을 앞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신 4:5-6, “내가 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규례와 법도를 너희에게 가르쳤나니 이는 너희가 들어가서 기업으로 차지할 땅에서 그대로 행하게 하려 함인즉 너희는 지켜 행하라 이것이 여러 민족 앞에서 너희의 지혜요 너희의 지식이라 그들이 이 모든 규례를 듣고 이르기를 이 큰 나라 사람은 과연 지혜와 지식이 있는 백성이로다 하리라” 모세는 광야 40년 동안 토라의 내용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르쳤다. 그리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은 한 명도 예외없이 토라의 내용을 아는 자들이 되었다.

모세는 이어서 말한다. 신 4:8-10, “오늘 내가 너희에게 선포하는 이 율법과 같이 그 규례와 법도가 공의로운 큰 나라가 어디 있느냐 오직 너는 스스로 삼가며 네 마음을 힘써 지키라 그리하여 네가 눈으로 본 그 일을 잊어버리지 말라 네가 생존하는 날 동안에 그 일들이 네 마음에서 떠나지 않도록 조심하라 너는 그 일들을 네 아들들과 네 손자들에게 알게 하라 네가 호렙 산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섰던 날에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기를 나에게 백성을 모으라 내가 그들에게 내 말을 들려주어 그들이 세상에 사는 날 동안 나를 경외함을 배우게 하며 그 자녀에게 가르치게 하리라 하시매” 모세는 토라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토라처럼 그 규례와 법도가 공의로운 큰 나라가 어디 있느냐”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그 토라의 내용을 자녀들에게 가르치라고 명령한다. 이처럼 토라는 소수 엘리트들만 이해하는 비밀문서가 아니었다. 모든 아이들까지도 배우고 알 수 있는 것이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토라를 가르쳐 지키며 제사장 나라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제사장 나라란 ‘모든 백성이 하나님의 법을 알고 지키는 나라’라고 정의할 수 있다.

한편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거룩한 백성’이 되라는 사명을 주셨다. 거룩한 백성은 히브리어로 ‘고이 카도쉬(קָדֹ֑ושׁ גֹ֣וי)’이다. ‘거룩한 나라’라는 뜻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어떻게 거룩한 나라가 되었을까?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이 거룩하게 하신 것이 두가지가 있다. 하나는 ‘샤밧’이라는 시간이다. 창 2:3,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 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샤밧은 우리의 활동을 멈추는 날이다. 그리고 시간의 주인이신 하나님 안에서 안식하는 날이다. 그래서 십계명은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고 명령한다. 또 하나 하나님께서 거룩하게 하신 것은 법궤가 있는 성막이라는 공간이었다. 출 29:43, “내가 거기서 이스라엘 자손을 만나리니 내 영광으로 말미암아 회막이 거룩하게 될지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성막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했다. 이 성막 위로 구름이 떠오를 때 이스라엘은 이 구름을 따라 이동해야 했다. 그리고 구름이 떠오르지 않을 때는 멈춰서야 했다. 철저히 하나님 중심으로 움직여야 했던 것이다. 이처럼 이스라엘은 광야에서부터 안식일을 지키고, 성막 중심으로 살아감으로 거룩한 나라가 되었다. 이 민족 자체가 거룩해서가 아니라 이들이 시간과 공간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중심으로 살아갔기에 거룩한 나라가 된 것이다.

이스라엘은 강력한 왕이 있어서 거룩한 나라가 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왕의 권좌가 없었기에, 하나님 한 분만이 그들의 왕이 되었기에 거룩할 수 있었다. 또한 이스라엘은 다른 나라들처럼 영토가 있어서 나라가 된 것이 아니었다. 그들에게 영토가 주어지기 전인 광야시절부터 그들은 거룩한 나라로 규정된 것이다. 이스라엘은 하나님 외에 어떠한 것도 숭배하기를 거절했다. 그들은 결코 타협하지 않았다. 그래서 많은 나라의 적이 되었다. 심지어 그들은 그들 국가와 주권을 잃어도 하나님나라 백성되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것은 그들이 영토와 상관없이 이미 광야에서부터 ‘거룩한 나라’라는 사명선언이 있었기 때문이다.

유대인이었던 베드로는 신약교회 성도들을 향해 같은 맥락의 사명선언문을 제시한다. 벧전 2: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제시했던 사명선언과 같은 내용이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이러한 사명 선언에 따라 왕같은 제사장으로, 거룩한 나라로 살아갔다. 그들은 그들을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으로 들어가게 하신 예수님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기 시작했다. 초대교회 성도들 모두가 왕같은 제사장으로, 열방과 이웃들에게 복된 소식을 전하는 자로 살기 시작한 것이다. 당신의 백성들을 불러 제사장 나라가 되게 하신 하나님의 비전은 이렇게 교회를 통해 다시 새롭게 전개된 것이다.

복음이 초대교회 성도들을 통해 로마 제국에 퍼지면서 로마는 313년 기독교를 제국의 종교로 공인한다. 로마사회의 많은 사람들이 황제가 믿는 기독교를 믿기 위해 교회로 몰려왔다. 그것이 그들에게 이익이 되었기 때문이다. 교회는 성장했지만, 그러나 교회는 급속히 세속화된다. 그러면서 교회는 영적인 일을 담당하는 사제 그룹과 일반인 그룹으로 나뉜다. 일반인들은 스스로를 세큘라, 세속인이라 불렀다. 영적인 일은 사제들에게 맡기고 그들은 세속적인 일에 전념했다. 그 결과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과 섬기지 않는 사람의 구분이 생겼다. 영적인 일을 담당하는 사제들은 점점 종교권력이 되었고, 일반인들은 교회의 다수였지만 그들은 더이상 제사장적인 삶을 살지 않았다. 성경을 알지도 못했고, 가르치지도 않았다. 결국 사제나 일반인들이나 모두 제사장 직분의 본질을 잃어버리면서 교회는 오랜 암흑의 시대를 맞게 된다.

이것을 뒤집은 것이 루터의 종교개혁이었다. 루터는 ‘모든 신자가 제사장’임을 강조했다. 사제만 읽을 수 있었던 라틴어 성경을 독일말로 번역하여 모두가 읽게 했다. 다시 모든 사람들이 성경을 읽고 이해하며, 제사장 나라가 되는 사명이 회복된 것이다. 종교개혁이 이루어진지 500년이 지났다. 그런데 아직도 많은 성도들은 ‘내가 제사장’이라는 정체성을 갖고 있지 못한 것 같다. 목사가 제사장이지 나는 아니라는 것이다. 목사가 영적인 부분을 담당해야지 나는 그럴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성도들이 제사장 직분을 회복하지 못하고 그저 교회 안에서 수동적인 군중으로 앉아있다면 교회는 중세시대 교회와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비전은 당신이 부르신 백성들을 군중이 아니라 제사장 나라로 만드는 것이다. 이 비전은 성경의 마지막 책인 계시록에까지 이어진다. 계 5:9-10, “일찍이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그들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들을 삼으셨으니 그들이 땅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나라와 제사장들’은 ‘A Kingdom of Priests, 제사장들의 나라’로 번역된다. 하나님의 자녀들 모두가 온 세상을 하나님께 연결하기 위해 제사장으로 살아가는 것, 그것은 구약시대나 신약시대나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들을 향해 갖고계신 변함없는 사명 선언인 것이다.

우리는 이 사실을 어떻게 적용해야 할까? 먼저 우리는 어린 아이서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모두 성경을 잘 알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 부지런히 성경을 읽고 배워야 한다. 그랬을 때 우리는 제사장 나라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또한 시간과 공간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중심으로 살아야 한다. 내가 왕이 아니라 하나님이 왕이 되시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랬을 때 우리는 거룩한 백성으로 살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여기 있는 우리 모두가 제사장처럼 살기 원하신다. 이 땅에 이미 시작되었지만 장차 완성될 하나님 나라는 제사장들의 나라다. 계시록은 구원받은 백성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노릇 할 것”(계 20:6)이라고 말한다. 우리 모두가 장차 주님과 함께 왕노릇하는 제사장들이 되길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지금부터 제사장으로 살아야 한다.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다른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제사장으로 살아야 한다.

제사장은 군림하는 자가 아니라 섬기는 자다. 세상 사람들을 섬기며 그들을 하나님께로 연결하는 사람이다. 제사장 나라로 부름받은 이스라엘이 그 사명을 망각하고 군림했을 때 이스라엘은 망했다. 중세 교회가 제사장의 사명을 망각하고 제왕적 권위를 남용했을 때 교회는 암흑의 시대를 맞이했다. 성도 스스로가 제사장으로 살지못하고 목사들에게 제왕적 권위를 부여할 때 교회는 스스로 망하는 길을 가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교회로서 우리의 사명을 새롭게 확인해야 한다. 여기 있는 우리 모두의 사명은 베드로가 선언한 것처럼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가 되는 것이다.바라기는 이 사명을 가지고 주님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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