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라포션 20 위기 속의 예배

텔아비브 욥바교회 2020년 3월 28일 설교 이익환 목사

토라포션 20 위기 속의 예배

여호와께서 회막에서 모세를 부르시고 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여호와께 예물을 드리려거든 가축 중에서 소나 양으로 예물을 드릴지니라” (레 1:1-2)

예배는 속세에 사는 인간이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가는 행위다. 그런데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가기 위해 모이는 예배가 지금처럼 위험한 행위가 된 적이 없는 것 같다. 지금 교회 주변의 이웃들이 교회에게 요구하는 것은 한가지다. “제발 모이지 말라”는 것이다. 이스라엘도 지난 수요일 정부의 가이드라인에 따라 모든 회당이 문을 닫았다. 기도하는 민족 이스라엘이 회당문을 닫은 건 이스라엘에서도 처음 있는 일이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 지금 모여서 드리는 예배가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다. 교회의 예배는 위기에 처해 있고 우리는 위기 속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다.

오늘부터 토라포션은 레위기서가 시작된다. 레위기는 모세오경 중 가장 중심을 차지하는 책이다. 레위기 전체가 예배에 관한 책이라 할 수 있다. 레위기는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있는지 여러가지 제사법와 절기들을 설명하고 있다. 오늘 우리는 위기 속에서 어떤 예배를 드려야 할지 함께 살펴보며 은혜를 나누고자 한다.   

레 1:1-2, “여호와께서 회막에서 모세를 부르시고 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여호와께 예물을 드리려거든 가축 중에서 소나 양으로 예물을 드릴지니라”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가까이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희생제물을 드려야 했다. 죄 있는 인간이 하나님께 가까이 간다면 죽을 수 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의 죄를 덮어주시기 위해 그 대신 속죄의 제사를 요구하셨다. 레위기는 이렇게 말한다. 레 17:11,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제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죄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히브리서도 이렇게 말한다. 히 9:22, “율법을 따라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하게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성경은 죄의 대가가 사망이라고 말한다. 죄에 대해 분노하시고 그 죄를 심판하시는 것, 그것은 하나님의 공의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죄를 지은 인간을 대신해서 다른 짐승이 피를 흘리며 죽게 하셨다. 그리고 그 속죄의 제사로 인해 사람들은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갈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자비였고, 은혜였다. 2절에서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은 히브리어로 “코르반(קורבן)”이다. 같은 어근을 가진 히브리어 ‘카로브(קרוב)’는 ‘가까이’라는 뜻이다. 코르반은 ‘제단 가까이 가져온 것’이란 뜻이다. 예물을 ‘드리다’는 히브리어로 ‘레하크리브(להקריב)’다. ‘가까이 가져오다 (to bring something close)’는 뜻이다. 나의 죄를 대신하는 희생제물을 드리며 하나님께로 가까이 갈 수 있었던 것이 ‘구약의 예배’였다.

구약 백성들은 이 예배를 철처히 드렸다. 문자 그대로 이 예배의 절차들을 지키면서 속죄함을 얻었고 하나님께로 가까이 가는 특권을 누렸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그들은 죄를 지어도 제사만 잘 드리면 그것으로 별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이중성을 싫어하셨다. 그들의 타락한 예배에 대해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통해 경고하셨다. 하나님은 호세아 선지자를 통해 이렇게 말씀하셨다. 호 6:6,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아모스 선지자를 통해 하신 경고의 말씀은 이렇다. 암 5:21-24, “내가 너희 절기들을 미워하여 멸시하며 너희 성회들을 기뻐하지 아니하나니 너희가 내게 번제나 소제를 드릴지라도 내가 받지 아니할 것이요 너희의 살진 희생의 화목제도 내가 돌아보지 아니하리라 네 노랫소리를 내 앞에서 그칠지어다 네 비파 소리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 구약 시대 예배가 위기에 빠진 것은 외부 환경 때문이 아니었다. 구약백성 안에 공의와 인애가 사라졌고 예배라는 형식만이 남았기에 예배가 위기에 빠진 것이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 제사라는 형식 자체가 하나님이 의도하신 예배의 본질이 아님을 말씀하셨다. 렘 7:22-23, “사실은 내가 너희 조상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날에 번제나 희생에 대하여 말하지 아니하며 명령하지 아니하고 오직 내가 이것을 그들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내 목소리를 들으라 그리하면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겠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 너희는 내가 명령한 모든 길로 걸어가라 그리하면 복을 받으리라 하였으나” 하나님이 원하신 예배의 본질은 무엇인가? 번제나 희생제물을 형식을 갖춰 잘 드리는 것, 그 자체가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명령하신 모든 길로 걸어가는 것, 그것에 예배의 본질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강하게 경고하셨다. 사 1:11-13,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내가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선지자들이 분노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배를 잘 못드렸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들이 분노한 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예배는 잘 드리면서 세상에서는 버젓히 악을 행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부정과 불의를 행하기 때문이었다.

구약의 선지자들은 사람들이 성전에 제물은 열심히 가져오지만, 일상의 삶에서는 부정과 불의가 가득한 현실을 본 것이다. 하나님의 공의를 실현해야 할 백성들이 뇌물을 주고, 가난한 자들을 짓밟으며, 권력을 남용하는 부조리한 현실을 본 것이다. 하나님을 잘 섬기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다. 이웃들을 잘 섬기는 것이다. 예배 행위만 잘 드리면 되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삶에서도 하나님의 사랑으로 다른 사람들을 잘 섬기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미가 선지자는 그 사실을 이렇게 강조한다. 미6”6-8,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 내가 번제물로 일 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그 앞에 나아갈까 여호와께서 천천의 숫양이나 만만의 강물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내 영혼의 죄로 말미암아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고자 하는 예배행위는 반드시 우리의 직장과 삶 속에서 정의를 행하고, 이웃에 대해 인애와 자비를 베푸는 모습으로 연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배와 삶은 분리된 것이 아니다. 교회와 세상도 분리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곧 이웃을 섬기는 것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은 곧 이웃을 존중하는 것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아론 퓨어스타인이란 사람의 일화를 소개하며 설교를 마치고자 한다. 그는 메사츄세스 로렌스라는 작은 마을의 직물 공장인 말덴밀즈사의 사장이었다. 지금은 ‘폴라텍’이라는 회사로 이름이 바뀌었다. 그런데 1995년 큰 화재로 공장이 다 불에 타게 된다. 공장을 폐쇄하면 아론에게 지급될 화재보험료는 3억 달러였다. 많은 사람들이 그가 이 기회에 사업을 정리하거나 공장을 해외로 이전하리라 예상했다. 당시 이 공장에는 3400명의 직원이 있었다. 공장이 문을 닫으면, 그들은 모두 일자리를 잃고 그 가족들 역시 고통에 처하게 될 상황이었다. 아론은 그들에게 책임감을 느꼈다. 다음날 그는 기자회견을 통해 공장 문을 닫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그리고 직원들을 향해 그들의 일자리가 안전할 것이고, 공장이 세워질 때까지 그들의 월급을 전액 지원하겠다고 발표한다. 직원들은 환호했고 감사의 눈물을 흘렸다. 그는 실제로 공장이 다시 지어지기까지 2천 오백만 달러 (당시 한화로 300억) 가량의 손해를 감수했다.

그와의 인터뷰에서 사회자가 물었다. “사람들이 그런다. 70세의 노인이 왜 3억 달러의 보험금을 받아서 그냥 퇴직하지 않았냐고” 그러자 그가 대답한다. “그 돈으로 뭐하려고? Eat more? Buy another suit? 더 많이 먹으려고? 옷 한벌 더 사려고? 그리고 퇴직해서 죽는다고?… 그것은 나의 옵션이 아니다. 그런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고 그는 말한다. 그는 왜 그런 결정을 했냐는 질문에 ‘그것이 옳은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대답한다. 그러면서 성경에 나오는 구절을 언급한다. “You are not permitted to oppress the working man because he’s poor and needy amongst your brethren and amongst the non-Jews in your community” 신명기 24장 14절 말씀을 인용한 것이다. 신 24:14, “곤궁하고 빈한한 품꾼은 너희 형제든지 네 땅 성문 안에 우거하는 객이든지 그를 학대하지 말며”

아론은 신앙심이 깊은 정통 유대인이었다. 그는 하나님의 뜻을 실천했고, 그렇게 함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했다. 그는 위기에 직면했을 때 유대교의 전통을 끌어낼 수 있었다고 말하며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When all is moral chaos, this is the time for you to be a mensch,” the Yiddish word for an honorable, decent, compassionate person who embodies justice and strives for righteousness. 모두가 도덕적인 위기에 처했을 때, 그 때가 바로  당신이 ‘멘쉬’가 되어야 할 때이다. ‘멘쉬’는 이디시어로 정의를 구현해 내고 공의를 추구하는, 명예롭고 고결하고 인정많은 사람이라는 뜻이다. 아론은 그 때부터 “The mensch of Malden Mills,” “말덴 밀즈의 고결한 사람”으로 불리게 된다.

구약의 예배는 지금 아무도 드릴 수 없다. 성전이 파괴되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한국 교회는 주일성수를 목숨처럼 지켜왔다. 그리고 그러한 열심이 그나마 지금의 한국을 지켜온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 N번방 사건에서 드러나고 있는 것처럼 한국사회는 지금 은밀한 폭력과 착취가 일상화된지 오래인듯하다. 이웃을 나의 돈벌이와 쾌락을 위한 도구로 삼고 있는 것이다. 먹고 살기에 급급해, 자신의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인정을 베풀고 공의를 행하는 보아스와 같은 사람, 아론 퓨어스타인 같은 사람을 찾아보기가 힘든 세상이 되었다. 사회에 정의와 공의가 마를 때 하나님은 성전문을 닫으셨다. 지금은 예배를 모여서 드릴 수 있느냐 없느냐로 논쟁할 때가 아니다. 이웃을 생각하고 이웃의 어려움을 돌아봐야 할 때이다. 코로나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어려움에 처하고 있다. 일자리를 잃은 사람도 많아지고 있다. 나보다 더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이 함께 일어설 수 있도록 우리는 책임과 연대의식으로 함께 일어서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이 위기 속에서 드릴 수 있는 참된 예배인 것이다.

이번 주 Zoom을 이용해서 여집사님들과 히브리서 성경공부를 해보았다. 생각보다 괜찮았다. 마무리하면서 각자가 받은 도전을 나누는 시간이 있었는데, 한 집사님께서 히브리서 말씀을 언급하셨다.히 13:16,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누어 주기를 잊지 말라 하나님은 이같은 제사를 기뻐하시느니라” 집사님이 지난 주 마스크를 받고 보니 주변에 마스크를 구하지 못하는 분들이 있었는데, 이걸 나눠야하나 좀 갈등이 있었다고 하셨다. ‘그런데 지금 이 말씀이 눈에 들어오네요’라고 하셨다. 작은 것이지만 말씀을 적용하는 모습을 보며 내 안에 기쁨이 있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선을 행하고 서로 나누어주는 작은 실천들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인 줄로 믿는다. 바라기는 오늘 함께 예배드리는 우리 모두가 우리의 직장에서, 우리 이웃들 사이에서 하나님의 인애와 자비를 나누는 고결한 사람, ‘멘쉬’들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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