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라포션 2 레크레카

이번 주 토라포션: 창12:1-17:27 /사40:27-41:16 /마1:1-17

 

토라포션 2 레크 레카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땅으로 가라 [2] 내가 너로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 12:1-3)

지난 주 전병태 박사님으로부터 한자 하나를 배웠다. 魔, 마귀 마자다. 나무 목자가 두 개 있고, 그 아래 귀신 신자가 있다. 생명나무와 선악과 나무 사이에 뱀으로 위장되어 있는 귀신이 마귀라는 것이다. 한자가 상형문자이기도 하지만 스토리를 담고 있는 조합으로 된 단어가 있다는 말씀도 하셨다. 배 선(船) 자 역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인류 최초의 배(舟)인 노아의 방주에는 여덟 명의 식구가 타고 있다는 뜻이다. 어떻게 중국 한자에 성경의 내용이 담겨 있을까? 중국으로 이동한 인종이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이동해 온 인종이기 때문이다. 이들이 한자를 만들 때 자신들의 조상이 전해 준 이야기를 담아 낸 것이다. 자 그렇다면 혀 설(舌)자에는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을까? 바벨탑 사건 이후 혀가 꼬이면서 천가지 소리를 내게 되었다는 뜻이다.

노아의 홍수는 대략 기원전 2350년경에 일어난 사건이다. 노아의 방주가 아라랏산에 머물고 난 뒤 노아의 자손들은 땅에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인류는 시날 평지에 모여 바벨탑을 쌓았다. 하나님께서는 온 땅에 충만하라고 했는데 그들은 하나로 뭉쳐 흩어짐을 면하자고 말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셔서 이들을 온 지면에 흩으신다. 야벳은 유럽 지역으로, 함은 이집트와 아프리카쪽으로 가게 된다. 그리고 셈 자손들은 메소포타미아 지역으로 흩어져 인류 최초의 문명인 수메르문명을 꽃피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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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주인공은 아브라함이다. 아담에서 노아까지가 열 세대이다. 노아의 아들 셈부터 아브라함까지가 다시 열 세대이다. 창세기 10장에는 노아의 후손으로 70명의 이름이 나온다. 이들은 각각의 나라를 형성한다. 노아는 70개 국가의 아비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바벨탑 사건으로 온 인류는 흩어지고 만다. 하나님은 이 흩어진 인류를 위한 새로운 구원 역사를 진행하셔야 했다. 이들을 구원하기 위해 한 사람을 선택하신다. 아브라함이다. 아브라함은 창세기 11장 바벨탑 사건에 이어 창세기 12장에 등장한다. 흩어진 열국이 다시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하기 위하여 그는 열국의 아비로 부르심을 받는다.

창 12: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레크 레카’라는 단어가 여기서 나온다. ‘레크’는 히브리어 할라크, ‘걷다, 가다’의 명령형이다. 그리고 ‘레카’는 ‘너 자신을 위해서’ ‘for yourself’라는 뜻이다. 즉 레크 레카는 ‘너 자신을 위해서 가라’는 말이다. 가기 위해서 전제 되는 것이 떠남이다.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야 했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갈대아 우르는 그 시대 가장 문명이 꽃 피웠던 문명의 중심지였다. 그의 아버지 데라는 이곳에서 다른 신들을 섬겼다. 하나님께서는 셈의 후예인 아브라함을 택하여, ‘레크 레카!’, 너 자신을 위해서 가라고 명령하셨다. 아브라함은 익숙한 것을 떠나야 했다. 낯선 가나안을 향해 발걸음을 옮겨야 했다. 그러나 그것은 결과적으로 그 자신을 위한 발걸음이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떠남으로 그는 그 시대의 우상과 결별할 수 있었다. 시대의 우상에게 돌아서고, 그는 하나님과 함께 걷는 삶을 시작한 것이다.

창 12:2-3, “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그는 땅에서 복을 얻기 위해 애쓰는 삶에서 이제 자신의 존재 자체가 다른 사람에게 복이 되는 존재의 전환이 이루어진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창세기 17장에서 그의 이름을 바꾸어 주신다.

창 17:4-5, “보라 내 언약이 너와 함께 있으니 너는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될지라 [5]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함이니라”

자 이제 그러면 아브라함의 인생은 대로가 열린 것일까? 그렇지 않았다. 가나안에 와서 24년이 지나도 아들 소식이 없었다. 육신이 쇠하고 인간적인 소망이 사라지고 나서야 그는 아들을 얻게 된다. 여인의 죽은 태를 여신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한 것이다. 이사야서 40장 29절 말씀처럼 ‘무능한 자에게 힘을 더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사 41:8-10, “그러나 나의 종 너 이스라엘아 내가 택한 야곱아 나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아 [9] 내가 땅 끝에서부터 너를 붙들며 땅 모퉁이에서부터 너를 부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나의 종이라 내가 너를 택하고 싫어하여 버리지 아니하였다 하였노라 [10]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하나님께서는 레크 레카라는 명령에 반응하여 길을 떠난 당신의 백성들을 책임져 주신다. 함께 하시며 도와주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또 한 번의 레크 레카를 명령하신다. 창 22:2,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여기서 정확히 레크 레카라는 표현을 쓰신다. 너 자신을 위하여 가라는 것이다.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는 것도 쉽지 않았는데, 이제 노년에 얻은 아들을 떠나 보내야만 했다. 그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을 드려야 했다. 소중한 것을 떠나며 다시 한번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임을 선택해야 했다.

어떻게 아브라함은 두번째 레크레카에 순종할 수 있었을까? 그는 첫번 째 순종의 결과 하나님깨서 약속을 이루시는 분임을 경험했다. 이 경험이 또 다른 순종으로 이어진 것이다.그래서 순종은 더 큰 순종을 낳는 것이다. 하나님은 더 큰 순종을 한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말씀 하신다. 창 22:12,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아브라함은 소유에 대한 집착보다 하나님을 경외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런 그에게 하나님은 다시 한번 약속하신다.

창 22:16-18, “…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17]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18]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여기까지가 유대인들이 아는 토라포션의 ‘레크 레카’의 내용이다. 이 토라의 레크 레카는 신약에서 어떻게 연결 될까? 아브라함의 순종은 예수님의 순종으로 연결된다. 예수님 역시 ‘레크 레카’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하늘 영광을 버리고 낮고 낮은 이 땅, 가나안 땅에 오셨다.

빌 2:6-7,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예수님에게도 두번째 레크 레카의 명령이 있었다. 예수님은 그 명령에 순종하여 골고다 언덕에 오르셨고, 자신을 제물로 드리셨다. 빌 2: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순종은 쉽지 않지만 순종은 결과적으로 가장 좋은 것을 선택하는 것이 된다. 순종하신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높여주셨다.

빌 2:9-11,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이 예수님의 순종 때문에 아브라함의 언약이 유대인이 아닌 우리에게도 의미있는 것이 되었다. 갈 3:16,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한 사람을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 이 말은 바울이 창세기에 나오는 아브라함의 언약을 해석한 것이다. 창 22:17-18,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18]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여기서 씨는 히브리어로 ‘제라’인데 단수로 씌였다. 즉 유대인 ‘자손들’이 아니라 자손 한 사람 예수님이라는 것이 바울의 해석이다.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갈 3:29, “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따라서 아브라함의 언약은 단순히 그의 혈통적 후손인 유대인들이 받는 것이 아니다. 세상의 구원자로 오신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받는 것이다. 롬 4:13, 16, “아브라함이나 그 후손에게 세상의 상속자가 되리라고 하신 언약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 오직 믿음의 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 [16] 그러므로 상속자가 되는 그것이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되나니 이는 그 약속을 그 모든 후손에게 굳게 하려 하심이라 율법에 속한 자에게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에게도 그러하니 아브라함은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이라”

하나님은 지금도 모든 인류가 회복의 길로 돌아오길 바라신다. 낙원을 잃어 버린 인류가 생명의 길로 돌아 오길 원하신다. 거짓 아비 마귀에 속아 한 평생 바벨탑을 쌓으며 사는 것이 아니라 거기서 돌아 서길 원하신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레크 레카!, 너 자신을 위해 가라, 익숙한 것을 떠나라, 하나님을 반역하여 높아가는 바벨의 문화에서 돌아 서라.’ 우리는 과연 나에게 익숙한 것을 떠날 수 있겠는가? 익숙한 것을 떠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떠난 자에게 하나님은 ‘참으로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내가 너를 도와 주리라’고 약속하신다.

교회 안에 대부분의 성도들은 첫번째 레크 레카에 응답하여 믿음의 길을 걷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런 우리에게 두번째 레크레카의 명령이 떨어질 수 있다. 내가 지금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 그것이 무엇인가? 나의 자녀들인가, 재물인가, 성공인가?

예수님은 약속하셨다. 마 6: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예수님은 또한 그의 제자들에게 명령하셨다. 마 28:19-20,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주님은 우리의 인생의 목적이 바뀌기 원하신다. 복을 얻기 위해 애쓰다 살다가는 삶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복이 되는 존재가 되기 원하신다. 갈 3:14,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 주님은 우리를 통해 아브라함의 복이 우리 이웃에게, 모든 민족에게 전해지기 원하신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왕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으로 부르신 이유이다.

우리는 이전보다 이동이 많은 삶을 살고 있다. 낯선 곳으로의 떠남을 준비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어디까지 왔든지 하나님은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 걷는 사람들이 되길 원하신다. 그것은 하나님을 위한 길이 아니라 결국 우리 자신을 위한 길이다. ‘레크 레카! 너 자신을 위해 걸어라, 너 자신을 위해 가라’ 말씀하실 때 기꺼이 순종하며 따라가는 우리가 되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텔아비브욥바교회 샤밧설교 2015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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