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장길 아웃팅

2021년 12월 4일 브엘세바와 헤브론, 족장들이 다니던 길로 아웃팅을 갔다.

아브라함과 사라가 나그네를 환대 했을 듯한 에셀나무 아래에서 김범석 집사님이 쏘신 피자를 먹었다.
역시 환대는 즐겁고 맛있다.
에셀 나무
에셀나무는 소금물을 먹고 자라며 잎사귀를 통해 소금을 뱉어낸다고 한다.
창 21:33,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 에셀 나무를 심고 거기서 영원하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으며”
Genesis 21:33, Abraham planted a tamarisk tree in Beersheba, and there he called upon the name of the LORD, the Eternal God.
종교개혁의 증거인 제단뿔
7세기 초반 건설된 곡식 저장소 벽에서 발견된 제단뿔이다. 8세기 경 산당의 제단으로 사용되다가 히스기야의 종교개혁(주전 720년) 당시 파괴되어 곡식저장소를 건축할 때 벽돌로 다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브엘세바, ‘일곱개의 샘’ ‘맹세의 샘’이란 뜻
창 21:30-31, “아브라함이 이르되 너는 내 손에서 이 암양 새끼 일곱을 받아 내가 이 우물 판 증거를 삼으라 하고 두 사람이 거기서 서로 맹세하였으므로 그 곳을 브엘세바라 이름하였더라”
Genesis 21:30-31, He replied, “Accept these seven lambs from my hand as a witness that I dug this well.” So that place was called Beersheba, because the two men swore an oath there.
성문 City Gate
성문에 앉은 하준이.
성문에서는 계약이 체결되거나(룻 4:1) 장로들이 재판을 했으며(암 5:15),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기도 했다(왕상 22:10). 

너희는 악을 미워하고 선을 사랑하며 성문에서 정의를 세울지어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혹시 요셉의 남은 자를 불쌍히 여기시리라
Hate the evil, and love the good, and establish judgment in the gate:
it may be that the Lord God of hosts will be gracious unto the remnant of Joseph.
– Amos 5:15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살았던 브엘세바..
그들이 걸었을 이 마을길을 우리도 걷는다.
이 날 하늘은 예술! 파랑 바탕에 하얀 물감을 찍어 놓은 듯 하다.
카자흐스탄에서 온 아미르
아브라함의 믿음을 중앙아시아 땅에 심는 자가 되길 축복한다.
전망대에 올라 우리는 우리의 믿음이 자녀들 세대에 이어지길 기도했다.
이 날 온 사람은 아는 아주 비싼 사진 한 컷.
뒤로 네게브 광야가 펼쳐져 있다.
일년 강수량 200mm,
물이 귀한 이곳에서 어떻게 살았는지 보기 위해 17m 아래 지하 물저장소로 내려간다.
예준 하준, 엄마 아빠의 믿음을 이어가는 아들로 자라다오!
헤브론 막벨라 굴
아브라함과 사라, 이삭과 리브가, 야곱과 레아가 여기에 묻혔다.
“이곳이야말로 4천년 유대인의 역사가 시작된 곳,
시간과 공간 속에 닻을 내렸던 곳이다”
– 폴 존슨
“우리의 아버지, 아브라함”의 가묘
헤브론은 ‘연결하다’는 뜻의 ‘레하벨’에서 온 말.
갈 3:29, “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이방인인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아브라함의 유업과 연결된다는 나눔을 하고 있다.
우리는 모니카 자매에게 유대인으로서 헤브론은 어떤 의미가 있는지 물었다.
우리는 모니카 자매가 유대인과 교회를 연결하는 자가 되기를 축복했다.
우리는 김범석 집사님 가정이 이스라엘을 한국과 열방에 연결하는 가정이 되길 축복했다.
또한 청년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한 새 사람이 되어 아버지께 나아갈 수 있기를 기도했다.

But now in Christ Jesus you who once were far away have been brought near through the blood of Christ. For he himself is our peace, who has made the two one and has destroyed the barrier, the dividing wall of hostility, by abolishing in his flesh the law with its commandments and regulations. His purpose was to create in himself one new man out of the two, thus making peace, and in this one body to reconcile both of them to God through the cross, by which he put to death their hostility. He came and preached peace to you who were far away and peace to those who were near. For through him we both have access to the Father by one Spirit.
– Ephesians 2:13-18
오미크론의 영향인지 이 날 회당 내에는 우리 외에 아무도 없었다.
우리는 하셈 예수아, 예수 어린 양 존귀한 이름을 조용히 찬양하며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게 되길 기도했다.
이 날 청년들은 다시 교회에 와서 하누카 촛불을 밝히며 월남 국수를 먹고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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