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아비브 욥바교회 샤밧예배 2025년 2월 8일 이익환 목사
Kingship 3: 오므리
“오므리가 행한 그 남은 사적과 그가 부린 권세는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왕상 16:27)

남을 지배하여 강제로 복종시키는 공인된 힘을 권력(權力)이라고 한다. 이 단어에서 ‘권(權)’이란 한자는 나무 목(木)과 황새 관(雚)이 합쳐진 글자다. 황새가 나무 위에서 균형을 잡고 있는 모양을 형상화한 것이다. 이 단어는 권력의 본질이 상대방을 복종시키는 힘이 아니라 힘의 균형을 유지하며 공평함을 추구하는데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오므리는 기원전 885년부터 874년까지 북이스라엘을 통치했던 여섯번째 왕이었다. 우리가 읽은 본문은 “그가 부린 권세는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었다”라고 말한다. 여기서 권세는 히브리어로 ’게부라(גבורה)’다. 용사를 뜻하는 ‘깁보르(גבור)’에서 온 말이다. 용사가 가진 힘, 권력이란 뜻이다. 열왕기 기자는 그가 행사했던 권력을 어떻게 평가했을까? 오늘 함께 살펴보며 은혜를 나누고자 한다.

왕상 16:15-16, “유다의 아사 왕 제이십칠년에 시므리가 디르사에서 칠 일 동안 왕이 되니라 그 때에 백성들이 블레셋 사람에게 속한 깁브돈을 향하여 진을 치고 있더니 진 중 백성들이 시므리가 모반하여 왕을 죽였다는 말을 들은지라 그 날에 이스라엘의 무리가 진에서 군대 지휘관 오므리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으매” 정치적으로, 종교적으로 정통성을 상실한 북이스라엘서는 피 흘림에 의한 정권의 교체가 일어난다.오므리는 원래 북이스라엘의 군 지휘관이었다. 당시 왕은 엘라였는데, 그는 2년 동안 통치하다가 전차 부대 지휘관인 시므리에 의해 암살된다. 내란이 일어난 것이다. 이를 싫어했던 백성들은 당시 블레셋과의 전투를 위해 깁브돈에 진치고 있던 오므리를 자신들의 왕으로 삼는다.
왕상 16:17-18, “오므리가 이에 이스라엘의 무리를 거느리고 깁브돈에서부터 올라와서 디르사를 에워 쌌더라 시므리가 성읍이 함락됨을 보고 왕궁 요새에 들어가서 왕궁에 불을 지르고 그 가운데에서 죽었으니” 오므리와 그의 군대는 당시 수도인 디르사로 진군한다. 이 소식에 시므리가 자결함으로 시므리의 쿠데타는 7일 만에 끝난다.

왕상 16:21-22, “그 때에 이스라엘 백성이 둘로 나뉘어 그 절반은 기낫의 아들 디브니를 따라 그를 왕으로 삼으려 하고 그 절반은 오므리를 따랐더니 오므리를 따른 백성이 기낫의 아들 디브니를 따른 백성을 이긴지라 디브니가 죽으매 오므리가 왕이 되니라” 시므리의 쿠데타는해결 됐지만 백성의 절반이 디브니를 지지하며 그를 왕으로 세운다. 그리하여 내전이 4년간 지속된다. 그러나 결국 오므리의 부하들이 디브니를 제거함으로 본격적인 오므리 왕조가 시작된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이제 북이스라엘은 힘있는 자가 권력을 차지하는 나라가 되었다. 이전 왕들은 어땠는가? 이스라엘의 왕이 되려면 먼저 하나님의 뜻이 있어야 했다. 하나님의 뜻이 있는 자에게 선지자가 가서 기름을 부음으로 왕이 세워졌다. 그러나 이제 그런 절차가 사라졌다. 힘이 있으면, 그리고 지지하는 백성이 있으면 누구든지 왕이 되는 시대가 되었다. 독일의 신학자 허버트 돈너(H. Donner)는 북이스라엘의 왕들 중에서 가장 위대한 왕은 ‘오므리’라고 말했다. 그가 어떤 면에서 가장 위대한 왕으로 평가될까?

왕상 16:23, “유다의 아사 왕 제삼십일년에 오므리가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십이 년 동안 왕위에 있으며 디르사에서 육 년 동안 다스리니라” 오므리가 왕이 되었을 때 북이스라엘의 수도는 디르사였다. 그는 그곳에서 6년간 통치한다. 이 도시는 1946년부터 1960년까지 프랑스 고고학팀에 의해 발굴되었는데, 그 결과 지금의 텔 엘-파라로 밝혀졌다. 시므리가 자결하면서 궁에 불을 질렀다는 기록이 있는데, 실재 화재로 인해 파괴된 증거도 나왔다고 한다.

왕위 경쟁자들을 제거한 후, 오므리는 북이스라엘 왕국에 새로운 현실을 만들어내기 시작한다. 사마리아라는 산을 매입하여 그곳에 성읍을 짓고 수도를 옮긴 것이다. 왕상 16:24, “그가 은 두 달란트로 세멜에게서 사마리아 산을 사고 그 산 위에 성읍을 건축하고 그 건축한 성읍 이름을 그 산 주인이었던 세멜의 이름을 따라 사마리아라 일컬었더라” 사마리아로 수도를 옮긴 것은 안보를 강화하고 무역을 장려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높이 90m 산 위에 세워진 사마리아는 방어하기 좋은 곳이었다. 또한 해변길과 더 가까와 페니키아 지역의 나라들과 무역하기에 더 용이한 곳이었다. 1908에서 1910년까지 하버드대 고고학팀이 처음으로 사마리아 성을 발굴한다. 그들은 사마리아의 정상에서 궁전 구조물을 발견했고, 이것을 ‘오므리 궁전’이라고 확인했다. 오므리는 페니키아의 여러 나라 중 시돈과 동맹 관계를 맺기 위해 그의 아들 아합을 시돈 왕 엣바알의 딸 이세벨과 결혼시킨다. 이 결혼을 통해 번영하는 지중해 상업 도시들과 무역이 활발해지면서 북이스라엘의 경제가 발전하게 된다.


오므리의 통치 기간은 12년이었다. 내전으로 불안했던 북이스라엘은 그를 통해 강하고 안정적인 국가로 발전한다. 그리고 그의 왕조는 그의 아들 아합과 손자 아하시야, 여호람으로 40년 동안 이어지는 강력한 왕조가 된다. 오므리의 명성을 알 수 있는 성경 외의 기록들이 있다. 1868년, 독일의 한 선교사가 고대 모압의 도시 디본에서 오므리의 이름이 적힌 비문을 발견한다. 이 석비는 지금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데, 거기엔 이런 내용이 있다. “오므리는 이스라엘의 왕이었고, 그는 모압을 여러 날 동안 괴롭혔다… 오므리는 메드바의 온 땅을 차지하였고 자기의 날과 자기 아들의 절반 날 동안, 곧 사십 년을 거기에서 살았다.” 이 비문을 모압 왕 메사가 기록했는데, 성경은 메사에 대해 이렇게 기록한다. 왕하 3:4, “모압 왕 메사는 양을 치는 자라 새끼 양 십만 마리의 털과 숫양 십만 마리의 털을 이스라엘 왕에게 바치더니” 모압 왕 메사는 오므리의 아들 아합에게 조공을 바치던 사람이었다. 이 사실은 오므리가 세운 왕조가 얼마가 강력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또 다른 기록이 있다. 앗수르 제국의 수도였던 님루드(Nimrud)에서 발견된 오벨리스크다. 이 오벨리스크는 영국의 고고학자 레이야드(Austern Henry Layard)가 1846년에 발굴한 것이다. 지금 영국의 대영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 오벨리스크에 앗수르의 왕 살만에셀 3세(Shalmaneser Ⅲ)가 “오므리의 아들 예후에게 조공을 받았다”는 기록이 새겨져 있다. 자세히 보면 북이스라엘 왕 예후가 살만에셀 3세 앞에 바짝 엎드려 조공을 바치는 장면이 있다. 자, 그런데 예후는 오므리의 아들이 아니다. 예후는 아합의 군대 장관으로 나중에 왕이 된 사람이었다. 그러나 앗수르의 왕은 그를 오므리의 아들로 기억했던 것이다. 그만큼 앗수르의 통치자들에게 오므리는 북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왕이었던 것이다.이처럼 오므리는 국내 정치와 국제 정치에서 모두 뛰어난 능력을 발휘했던 왕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오므리 왕에 대한 성경의 평가는 어떨까?왕상 16:25-26, “오므리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되 그 전의 모든 사람보다 더욱 악하게 행하여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모든 길로 행하며 그가 이스라엘에게 죄를 범하게 한 그 죄 중에 행하여 그들의 헛된 것들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노하시게 하였더라” 열왕기서 기자의 평가는 아주 냉혹하다. 왜 그는 오므리의 정치적, 경제적, 외교적 업적들은 모두 생략한 채, 그가 그 전의 왕들 보다 더 악하게 행했다고 평가했을까? 성경에서 왕에 대한 평가의 기준은 ‘그가 하나님 앞에서 어떤 사람이었는가’라는 것이다. 그가 왕으로서 아무리 뛰어난 능력을 발휘했다 해도, 왕이 자신의 권력으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공평을 추구하지 않았다면 그는 악한 왕으로 평가되는 것이다.
오므리가 건설한 사마리아는 후에 우상 숭배의 온상이 된다. 왕상 16:30-33, “오므리의 아들 아합이… 시돈 사람의 왕 엣바알의 딸 이세벨을 아내로 삼고 가서 바알을 섬겨 예배하고 사마리아에 건축한 바알의 신전 안에 바알을 위하여 제단을 쌓으며 또 아세라 상을 만들었으니 그는 그 이전의 이스라엘의 모든 왕보다 심히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노하시게 하였더라” 오므리가 지혜를 발휘하여 맺은 동맹이 결국 이스라엘 땅에 바알 우상 숭배의 문을 연 것이다. 오므리는 정치적 수완이 아주 좋았다. 그는 남유다 왕국과도 좋은 관계를 맺는다. 그는 그의 손녀를 남유다 왕 여호람에게 시집 보낸다. 대하 22:2-3, 아하시야가 왕이 될 때에 나이가 사십이 세라 예루살렘에서 일 년 동안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아달랴요 오므리의 손녀더라 아하시야도 아합의 집 길로 행하였으니 이는 그의 어머니가 꾀어 악을 행하게 하였음이라” 이 오므리의 정치적 탁월함 때문에 남유다에도 바알 신앙이 들어 가게 된다. 대하 24:7, “이는 그 악한 여인 아달랴의 아들들이 하나님의 전을 파괴하고 또 여호와의 전의 모든 성물들을 바알들을 위하여 사용하였음이었더라” 이 구절에서 우리는 오므리의 손녀 아달랴 때문에 그녀의 아들들도 바알 숭배에 빠지게 된 사실을 알 수 있다.
한편 미가 선지자는 오므리가 그의 권력으로 만든 법령에 대해 이렇게 고발한다. 미 6:16, “너희가 오므리의 율례와 아합 집의 모든 예법을 지키고 그들의 전통을 따르니 내가 너희를 황폐하게 하며 그의 주민을 사람의 조소 거리로 만들리라 너희가 내 백성의 수욕을 담당하리라” 미가 선지자는 오므리가 왕이 된 지 150년 이후에 활동했던 선지자다. 그 때까지 오므리가 만든 율례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가 만든 율례가 얼마나 하나님의 뜻에 반대되는 것이었는지 우리는 이 구절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오므리는 분명 성공한 왕이었다. 그는 능력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성경은 그의 성공과 능력에 주목하지 않는다. 오므리는 그의 권력을 하나님의 공평을 이루는데 사용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성경의 기자는 그를 그 이전의 어떤 왕보다 악한 자라고 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의 제자들 중 야고보와 요한은 권력 의지가 강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에 예수님께 부탁했다.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 이 말을 듣고 다른 제자들이 그들에게 화를 냈다. 화를 냈다는 것은 그들도 그만큼 권력 의지가 강했다는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막 10:42-44,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권력을 남을 복종시키는데 사용하지 말고 섬기는데 사용하라는 말씀이다. 예수님은 이 땅에 섬김을 받기 위해 오시지 않았다. 도리어 섬기려 하고 당신의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기 위해 오셨다. 이러한 예수님의 본은 우리 인간의 잘못된 권력의지를 돌아보게 한다. 우리도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섬기는 자로 살 때 잘못된 권력 의지가 해체되고, 대신 하나님 나라의 공평과 정의가 이 땅에 세워지는 것이다.
우리는 매일 권력이 작동하는 사회속에서 살고 있다. 인간이 있는 곳에는 항상 권력이 존재한다. 권력이 있으면 그만큼 혜택이 따라온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더 큰 권력을 향한 의지를 불태우며 산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에서 권력은 다른 사람보다 우위에 서기 위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권력은 나에게 주어진 힘으로 다른 사람을 섬기기 위해 사용하는 것이다. 나에게 주어진 힘으로 하나님의 공평과 정의를 이루기 위해 사용하는 것이 권력이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 땅에서 얼마나 높은 권력의 사다리에 올랐는가에 관심이 없으시다. 하나님이 우리의 인생을 평가하실 때, 그분은 우리가 가진 권력으로 우리가 이 세상에서 얼마나 힘의 균형을 이루며 하나님의 공평을 이루기 위해 살았는가를 평가하실 것이다. 오므리처럼 하나님이 없는 성공을 추구하지 말라. 힘의 균형을 이루지 못하고, 하나님의 공평을 추구하지 않는 권력은 황새가 철이 되어 둥지를 떠나듯 어느 순간 홀연히 사라질 수 있는 것이다. 권력은 고대의 왕이나 지금 시대의 대통령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에게도 우리의 위치에서 크고 작은 권력이 있다. 그 권력을 하나님을 위해 사용함으로 그분께 영광이 되는 삶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