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아비브 욥바교회 샤밧예배 2025년 3월 1일 설교 이익환 목사
Kingship 6: 여호사밧
“여호사밧이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니 온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들도 여호와 앞에 엎드려 여호와께 경배하고 그핫 자손과 고라 자손에게 속한 레위 사람들은 서서 심히 큰 소리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니라” (대하 20:18-19)
남유다에서 선한 왕으로 평가되는 왕은 8명 정도 된다. 그 중에서도 ‘다윗의 길로 걸었다’라는 극찬을 받은 왕이 있는데, 여호사밧, 히스기야, 요시야, 이 세 명 뿐이다. 오늘은 여호사밧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그가 어떻게 다윗의 길로 걸었는지 함께 살펴 보며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음성을 듣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대하 17:1-2, “아사의 아들 여호사밧이 대신하여 왕이 되어 스스로 강하게 하여 이스라엘을 방어하되 유다 모든 견고한 성읍에 군대를 주둔시키고 또 유다 땅과 그의 아버지 아사가 정복한 에브라임 성읍들에 영문을 두었더라” 솔로몬 당시 이스라엘은 강국이었다. 그러나 나라가 분열된 후 남 유다는 축소된 상태로 어려운 시절을 겪어야 했다. 남 유다는 이러한 변화에 적응하는 데 60년이 걸렸다. 기원 전 871년, 35세의 나이로 즉위한 여호사밧은 이러한 상황을 역전시키기 시작한다. 그는 먼저 국방을 강화한다. 그는 남 유다의 중요 성읍들에 군대를 주둔 시킨다. 14절 이하를 보면 그가 모집한 총 군사의 수가 116만 임을 알 수 있다.
대하 7:3-4, “여호와께서 여호사밧과 함께 하셨으니 이는 그가 그의 조상 다윗의 처음 길로 행하여 바알들에게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아버지의 하나님께 구하며 그의 계명을 행하고 이스라엘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였음이라” 여호와께서 여호사밧과 함께 하신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그가 우상들을 추구하지 않았고, 오직 하나님께 구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대하 17:7, 9, “그가 왕위에 있은 지 삼 년에 그의 방백들 벤하일과 오바댜와 스가랴와 느다넬과 미가야를 보내어 유다 여러 성읍에 가서 가르치게 하고… 그들이 여호와의 율법책을 가지고 유다에서 가르치되 그 모든 유다 성읍들로 두루 다니며 백성들을 가르쳤더라” 여호사밧은 그 어느 왕도 시도해본 적이 없는 개혁을 단행한다. 그것은 온 백성에게 성경을 가르치는 시스템을 만든 것이다. 그의 아버지 아사 역시 두 차례에 걸쳐 종교개혁을 실시했었다. 그러나 남 유다에서 우상 숭배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여호사밧은 그 이유가 백성들의 마음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변화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 같다. 그는 진정으로 나라를 바꾸는 것은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경외하는 백성이 세워져야 함을 알았던 것이다. 이 말씀을 통한 개혁의 결과는 무엇일까?

대하 17:10-11, “여호와께서 유다 사방의 모든 나라에 두려움을 주사 여호사밧과 싸우지 못하게 하시매 블레셋 사람들 중에서는 여호사밧에게 예물을 드리며 은으로 조공을 바쳤고 아라비아 사람들도 짐승 떼 곧 숫양 칠천칠백 마리와 숫염소 칠천칠백 마리를 드렸더라” 여호사밧이 하나님과 그의 말씀을 전심으로 구한 결과 남 유다는 주변 나라들이 두려워하는 강한 나라가 되었다. 사사시대 때부터 이스라엘을 늘 괴롭혔던 블레셋이 여호사밧에게 예물을 드리며 조공을 바친다. 아라비아 사람들도 많은 짐승 떼를 여호사밧에게 바친다. 사나운 짐승처럼 남 유다를 위협하며 힘들게 했던 나라들이 이처럼 여호사밧에게 고개를 숙이고, 얌전한 강아지처럼 꼬리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이런 기적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가 전심으로 하나님을 구하며 그분을 섬길 때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신다.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면 우리는 풍요와 축복을 경험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우리 주변의 어느 누구도 우리를 함부로 못하는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나를 괴롭혔던 사람들도 나에게서 그들이 이해할 수 없는 묘한 분위기를 감지한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권위다. 그래서 이전에 사나왔던 사람들도 나에게 얌전히 꼬리를 흔드는 일이 일어나는 것이다. 주변 사람들이 여러분에게 여전히 사납게 군다면 그 때 여러분은 다른 걸 할 때가 아니다. 그 때는 기도하며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야 한다.
그러나 여호사밧은 잘 나갈 때 결정적인 실수를 한다. 대하 18:1, “여호사밧이 부귀와 영광을 크게 떨쳤고 아합 가문과 혼인함으로 인척 관계를 맺었더라” 북 이스라엘의 가장 악한 왕 아합과 정략결혼을 한 것이다. 여호사밧은 자기 아들 여호람을 아합의 딸 아달랴와 결혼시킨다. 자 그런데 이 아달랴는 그의 엄마 이세벨의 나쁜 점을 쏙 빼 닮은 자였다. 나중에 아달랴는 남 유다의 모든 왕자들을 죽이는 일을 벌이게 된다.결국아합과 혼인동맹을 맺은 여호사밧은 아합이 일으킨 아람과의 전쟁에 휘말리게 된다. 그 전쟁에서 아합은 죽임을 당하고, 여호사밧은 간신히 목숨을 구하여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 때 선지자 예후가 그를 찾아와 하나님의 진노의 메시지를 전한다. 대하 19:2, “왕이 악한 자를 돕고 여호와를 미워하는 자들을 사랑하는 것이 옳으니이까 그러므로 여호와께로부터 진노하심이 왕에게 임하리이다” 이 예언대로 여호사밧은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게 된다. 대하 20:1-2, “그 후에 모압 자손과 암몬 자손들이 마온 사람들과 함께 와서 여호사밧을 치고자 한지라 어떤 사람이 와서 여호사밧에게 전하여 이르되 큰 무리가 바다 저쪽 아람에서 왕을 치러 오는데 이제 하사손다말 곧 엔게디에 있나이다 하니” 모압이 연합군을 이끌고, 남유다를 넘보기 위해 침략해 온 것이다.
여호사밧은 두려웠다. 엔게디 광야 가득히 자신을 치러온 연합군의 소식은 그를 두렵게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 두려움을 하나님을 향한 경외심으로 치환한다. 대하 20:3-4, “여호사밧이 두려워하여 여호와께로 낯을 향하여 간구하고 온 유다 백성에게 금식하라 공포하매 유다 사람이 여호와께 도우심을 구하려 하여 유다 모든 성읍에서 모여와서 여호와께 간구하더라” 여호사밧은 모든 백성들이 금식하며 하나님을 찾도록 명령한다. 금식이란 히브리어 ‘쫌(צום)’은 입을 덮어 씌우는 행위이다. 금식은 내가 스스로 무기력해지겠다는 선택이다. 대신 오직 하나님의 도우심만 간절히 구하겠다는 결단이다. 여호사밧은 상황 때문에 두려움을 느끼며 거기에 주저 앉아 있지 않았다. 여호사밧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여호와께로 낯을 향하여’ 하나님 앞에 나아갔던 것이다. 그는 자신을 두렵게 하는 이 상황을 해결할 분이 하나님 뿐임을 알았다. 그래서 오직 그분을 찾고, 그분께 기도했던 것이다. 그가 어떠한 내용으로 기도했을까?
대하 20:6,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하늘에서 하나님이 아니시니이까 이방 사람들의 모든 나라를 다스리지 아니하시나이까 주의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능히 주와 맞설 사람이 없나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권세와 능력을 인정하고, 그것을 의지하는 기도이다. 원수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권세와 능력을 끊임없이 의심하게 한다. 우리를 힘들게 하는 상황이 더 커 보이게 하며, 그래서 더욱 큰 두려움에 빠지게 한다. 그러나 여호사밧은 환경 너머에 계신 하나님을 의지했다. 그는 누구도 하나님과 맞설 사람이 없다고 선포하고 있다. 그는 또 이렇게 기도한다.대하 20:12, “우리 하나님이여 그들을 징벌하지 아니하시나이까 우리를 치러 오는 이 큰 무리를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 여호사밧은 자신의 연약함을 고백하며 오직 하나님의 도우심을 요청한다.
하나님은 이러한 여호사밧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셨다. 그리고 레위 사람 아하시엘을 통해 예언의 말씀을 주셨다. 대하 20:15, “너희는 이 큰 무리로 말미암아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라 이 전쟁은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라” 하나님은 또한 이런 지시를 하신다. 대하 20:17, “이 전쟁에는 너희가 싸울 것이 없나니 대열을 이루고 서서 너희와 함께 한 여호와가 구원하는 것을 보라” 이에 여호사밧은 군인들 앞에 찬양대를 세워 찬양하게 한다. 대하 20:21, “백성과 더불어 의논하고 노래하는 자들을 택하여 거룩한 예복을 입히고 군대 앞에서 행진하며 여호와를 찬송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 하게 하였더니” 전쟁 상황에서 찬양대를 앞세운 것은 상식적인 일이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찬양을 시작했을 때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대하 20:22, “그 노래와 찬송이 시작될 때에 여호와께서 복병을 두어 유다를 치러 온 암몬 자손과 모압과 세일 산 주민들을 치게 하시므로 그들이 패하였으니” 하나님께서 개입하신 것이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들을 위하여 친히 싸우기 시작하신 것이다. 찬양과 함께 하나님의 임재가 있었고, 하나님의 임재가 구원을 가져온 것이다.
다윗도 찬양을 통해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했기에 그는 이렇게 노래했다. 시 22:3-4,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계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니이다 우리 조상들이 주께 의뢰하고 의뢰하였으므로 그들을 건지셨나이다” 여기서 ‘계시다’는 히브리어로 ‘야샤브(ישב)’다. ‘앉다, 거하다’란 뜻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찬양할 때 우리 가운데 자리 잡고 앉으시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가 하는 찬양이 주님의 임재를 불러 오는 것이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선포한다.시 149:5-6, “성도들은 영광 중에 즐거워하며 그들의 침상에서 기쁨으로 노래할지어다 그들의 입에는 하나님에 대한 찬양이 있고 그들의 손에는 두 날 가진 칼이 있도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찬양이 영적 전쟁을 위한 강력한 무기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개역 한글 성경은 성도가 찬양 할 때 그 입에는 ‘하나님에 대한 존영’이 있게 된다고 말한다. 여기서 존영은 King James Version에선 ‘high praise’로 번역되었다. 즉 성도들이 찬양할 때 그들의 입에는 하나님의 영광을 높이는 ‘차원 높은 찬양’이 있게 된다는 것이다. 또한 그들의 손에는 ‘두 날 가진 칼’이 주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즉 그의 백성들이 찬양할 때 그것은 하나님께 영광이 되며 그들의 찬양은 두 날 가진 검이 된다는 것이다. 시편은 이어서 이렇게 노래한다. 시 149:7-9, “이것으로 뭇 나라에 보수하며 민족들을 벌하며 그들의 왕들은 사슬로, 그들의 귀인은 철고랑으로 결박하고 기록한 판결대로 그들에게 시행할지로다 이런 영광은 그의 모든 성도에게 있도다 할렐루야” 우리가 찬양할 때 원수를 향한 하나님의 심판이 시작되는 것이다. 우리가 찬양할 때 원수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 그들은 사슬과 철고랑으로 결박 당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심판이 여호사밧이 세운 찬양대의 찬양을 통해 일어났던 것이다. 대하 20:24-26, “유다 사람이 들 망대에 이르러 그 무리를 본즉 땅에 엎드러진 시체들뿐이요 한 사람도 피한 자가 없는지라 여호사밧과 그의 백성이 가서 적군의 물건을 탈취할새… 그 물건이 너무 많아 능히 가져갈 수 없을 만큼 많으므로 사흘 동안에 거두어들이고 넷째 날에 무리가 브라가 골짜기에 모여서 거기서 여호와를 송축한지라 그러므로 오늘날까지 그 곳을 브라가 골짜기라 일컫더라” 브라가(ברכה)는 히브리어로 ‘송축’이라는 뜻이다. 처음에 두려움이 가득했던 골짜기는 그들이 찬양하자 ‘송축의 골짜기’로 바뀌게 된 것이다.찬양하던 백성들은 이제 삼일 동안 전리품을 거두며 승리의 기쁨을 맛보게 된다. 결국 그들의 입에서 선포된 ‘높은 찬양’이 하나님의 영광과 승리를 가져오게 한 것이다.

다윗은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노래했다. 다윗이 그렇게 고백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누구보다도 ‘높은 찬양’를 하며 자신과 항상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여호사밧과 그의 백성이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의 인자하심을 찬양하기 시작했을 때, 두려움의 골짜기가 변하여 브라가 골짜기, 송축의 골짜기로 바뀌었다. 그런데 찬양은 여호사밧 만의 전유물이 결코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찬송 중에 거하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래서 우리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만날 때마다 여호사밧의 하나님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께 기도하며 찬양할 때 하나님은 때로 예언의 말씀을 주신다. 그 말씀을 붙잡을 때 두려움이 확신으로 변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전심으로 찬양할 때 우리가 붙잡게 되는 정서가 있다. 그것은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확신이며,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믿음이다. 이것이 있을 때 두려움을 주는 상황은 이미 종료 되는 것이다.
여호사밧은 가장 절박하고 어려운 순간, 자신의 힘을 의지하지 않았다. 금식하고 기도하며 하나님을 낯을 향했다.그리고 두려움 앞에서 온 백성과 함께 하나님만 전심으로 찬양했다. 그 ‘높은 찬양’이 원수를 심판하는 검이 되어 하나님의 승리를 맛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여러분은 지금 어떤 골짜기를 통과하고 있는가? 가장 절박하고 어려운 순간에 전심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원한다. 문제가 크고, 상황이 어려워도 끝까지 기도하며 하나님을 향한 찬양을 멈추지 않길 바란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승리를 경험하고, 원수의 전리품을 거두는 여러분이 되길 소망한다. 결국 여러분의 인생에 찾아온 두려움의 골짜기가 여러분의 ‘높은 찬양’을 통해 송축의 골짜기로 변하는 은혜를 체험하게 되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