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행전 5 길갈: 왕을 보라
“백성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사울이 어찌 우리를 다스리겠느냐 한 자가 누구니이까 그들을 끌어내소서 우리가 죽이겠나이다 [13] 사울이 이르되 이 날에는 사람을 죽이지 못하리니 여호와께서 오늘 이스라엘 중에 구원을 베푸셨음이니라 [14] 사무엘이 백성에게 이르되 오라 우리가 길갈로 가서 나라를 새롭게 하자 [15] 모든 백성이 길갈로 가서 거기서 여호와 앞에서 사울을 왕으로 삼고 길갈에서 여호와 앞에 화목제를 드리고 사울과 이스라엘 모든 사람이 거기서 크게 기뻐하니라” (삼상 11:12-15)
욕을 먹으면 오래 산다는 말이 있다. 얼마전 신해철 씨가 사망했다. 그는 생전에 하도 욕을 먹어 자신은 이미 영생의 길에 도달해 가는 중이라고 너스레를 떨곤 했다. 그런 그가 너무도 일찍 세상을 떠났다. 욕을 하도 먹어 거의 영생의 수준에 이르는 사람들이 있다. 전현직 대통령들이 아닐까 한다. 그 분들은 당선 전에는 나라를 지키고 경제를 살릴 최선의 인물로 등장한다. 그러나 그들의 재임기간과 퇴임 후 받는 욕들은 대를 이어도 그치지 않는다. 국민들이 기대했던 것만큼 실망도 크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는 백성들의 환호 속에서 길갈에서 왕으로 등극하는 사울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왕에 대한 백성들의 기대와 왕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를 살펴보면서 지금 우리는 어떤 왕을 구하고 있는지 돌아보고자 한다.
사울은 제비뽑기를 통해 미스바에서 이스라엘의 초대왕으로 뽑힌다. 그토록 원했던 왕이 선출되자 백성들은 왕의 만세를 외치며 좋아 한다. 그러나 사울이 왕됨을 탐탁지 않게 바라봤던 사람들도 있다. 삼상 10:27, “어떤 불량배는 이르되 이 사람이 어떻게 우리를 구원하겠느냐 하고 멸시하며 예물을 바치지 아니하였으나 그는 잠잠하였더라” 사울은 평소 주먹계를 평정할 만큼 명성이 있었던 사람이 아니었던 것 같다. 단지 제비뽑기로 사다리타서 졸지에 왕이된 사람이었다. 그가 잠잠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던 중 사울은 왕으로서 자신의 능력을 보여줘야 하는 사건이 터졌다. 암몬사람 나하스가 쳐들어 온 것이다. 암몬 군대는 요단강 동편 길르앗 야베스 앞에서 진을 친다. 길르앗은 므낫세의 장자 마길이 받은 땅이었다. 위기에 처한 야베스 사람들은 적장인 나하스에게 사람을 보내 제안한다. 삼상 11:1절, “우리와 언약하자 그리하면 우리가 너를 섬기리라” 이 제안에 나하스가 대답한다. 삼상 11:2절, “내가 너희 오른 눈을 다 빼야 너희와 언약하리라 내가 온 이스라엘을 이같이 모욕하리라” 이 말을 듣고 야베스 사람들이 다시 제안한다. 삼상 11:3, “우리에게 이레 동안 말미를 주어 우리가 이스라엘 온 지역에 전령들을 보내게 하라 만일 우리를 구원할 자가 없으면 네게 나아가리라” 그리고 나서 전령을 사울이 사는 기브아로 급히 보낸다.
전령들이 기브아에 이르러 상황을 전하자 백성들이 소리 높여 울기 시작한다. 사울은 마침 밭에서 소를 몰고 오다가 이 상황을 접한다. 왕인데도 소를 몰며 밭을 갈았다. 자기 먹고 살 것을 마련해야하는 자비량 왕이었던 것 같다. 참 폼 나지 않는 왕이었다. 사울왕은 백성들에게 묻는다. “무슨 일로 우느냐” 그러자 그들이 야베스 사람들의 말을 전한다. 그 말을 듣고 사울은 크게 분노한다. 그리고 소 두 마리를 잡아 각을 떠서 이스라엘 각 지파에게 보낸다.
삼상 11:6-7, “사울이 이 말을 들을 때에 하나님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매 그의 노가 크게 일어나 [7] 한 겨리의 소를 잡아 각을 뜨고 전령들의 손으로 그것을 이스라엘 모든 지역에 두루 보내어 이르되 누구든지 나와서 사울과 사무엘을 따르지 아니하면 그의 소들도 이와 같이 하리라 하였더니 여호와의 두려움이 백성에게 임하매 그들이 한 사람 같이 나온지라”
피가 철철 흐르는 절단 난 소를 보고 백성들은 겁을 먹는다. 그리고 군기가 바짝 들어 한 사람이 나오는 것 같이 이스라엘 전 지역에서 베섹으로 모인다. 이스라엘 자손이 30만, 유다사람이 3만, 총 33만이 군대로 모인다. 그리고 암몬족속을 향해 출격한다.
자, 그런데 여기서 질문 하나가 있다. 사울이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의 말을 듣고 왜 그리 열받았을까? 소의 각을 떠서 각 지파에 보낼만큼 야베스 사람들의 위기에 왜 그렇게 심각하게 반응한 것일까? 그것을 알기 위해서 우리는 사울이 속한 베냐민 지파와 길르앗 야베스 사이의 역사를 들춰봐야 한다.
사울왕의 목베인 시체가 달렸던 벳샨
“그 이튿날 블레셋 사람들이 죽은 자를 벗기러 왔다가 사울과 그의 세 아들이 길보아 산에서 죽은 것을 보고
사울의 머리를 베고 그의 갑옷을 벗기고 자기들의 신당과 백성에게 알리기 위하여
그것을 블레셋 사람들의 땅 사방에 보내 그의 갑옷은 아스다롯의 집에 두고 그의 시체는 벧산 성벽에 못 박으매
길르앗 야베스 주민들이 블레셋 사람들이 사울에게 행한 일을 듣고
모든 장사들이 일어나 밤새도록 달려가서 사울의 시체와 그의 아들들의 시체를 벧산 성벽에서 내려 가지고
야베스에 돌아가서 거기서 불사르고 그의 뼈를 가져다가
야베스 에셀 나무 아래에 장사하고 칠 일 동안 금식하였더라”
사무엘상 31:8-13
사사기 19장에는 기브아에서 발생한 레위인 첩 사건이 나온다. 기브아는 사울의 고향이고 베냐민 족속의 땅이다. 한 레위인이 자기 첩을 데리고 이곳에서 하룻밤 머물게 된다. 그런데 그 첩이 그 지역 불량배에게 집단 강간을 당하고 죽는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화가 난 레위인은 그 시체를 12도막 내어 각 지파에게 보낸다. 사건의 내막을 알고 이스라엘 11지파가 분노하며 미스바에 모인다. 그리고 베냐민 지파에게 그 불량배들을 자신들에게 넘기라고 요청한다. 그들을 죽여 이스라엘에서 악을 제거하겟다는 제안이었다. 그런데 그 제안을 베냐민지파가 거절한다. 그리고 군사를 소집해 싸움을 준비한다. 결국 이스라엘 11지파 연합군 40만과 베냐민 지파 2만 6천명간의 싸움이 벌어진다. 결과는 뻔하다. 베냐민 지파는 남자 600명을 제외하고 전멸한다.
이스라엘의 한 지파가 사라질 위기에 처한다. 그러자 연합군은 베냐민 지파를 다시 살릴 목적으로 이들에게 아내를 구해다 준다. 600명의 처녀 중 400명이 길르앗 야베스에서 잡아 온 처녀들이다. 즉 사울 당시 베냐민 지파 3분의 2가 그 외가집이 길르앗 야베스에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길르앗 야베스가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을 듣고 기브아에 있던 할머니들이 목놓아 울었던 것이다. 사울도 크게 분노한 것을 보니 그의 외가도 길르앗 야베스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고 보면 사울이 왕이 된 것은 기적이다. 사사시대 말 600명으로 출발했던 베냐민 지파, 진멸될 수도 있었던 가장 미약한 지파에서 이스라엘의 초대왕이 나온 것이다.
사울은 암몬족속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끈다. 삼상 11:11, “이튿날 사울이 백성을 삼 대로 나누고 새벽에 적진 한가운데로 들어가서 날이 더울 때까지 암몬 사람들을 치매 남은 자가 다 흩어져서 둘도 함께 한 자가 없었더라” 이 전쟁의 승리로 사울은 왕으로서의 입지를 다지게 된다. 삼상 11:12, “백성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사울이 어찌 우리를 다스리겠느냐 한 자가 누구니이까 그들을 끌어내소서 우리가 죽이겠나이다” 백성들의 마음이 완전히 사울에게 향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백성들의 지지와 환호 가운데 선지자 사무엘은 길갈로 가서 나라를 새롭게 하자고 제안한다.그리고 그곳에서 사울왕의 즉위식을 화려하게 거행한다. 이후 사울왕은 더 이상 밭에서 소를 몰지 않았을 것이다. 자 그런데, 왜 길갈일까?
길갈이 어떤 곳인가?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요단강을 건넌 후 열두 돌을 세운 곳이다. 수 4:19-24, “첫째 달 십일에 백성이 요단에서 올라와 여리고 동쪽 경계 길갈에 진 치매 [20] 여호수아가 요단에서 가져온 그 열두 돌을 길갈에 세우고 [21]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후일에 너희의 자손들이 그들의 아버지에게 묻기를 이 돌들은 무슨 뜻이니이까 하거든 [22] 너희는 너희의 자손들에게 알게 하여 이르기를 이스라엘이 마른 땅을 밟고 이 요단을 건넜음이라 [23]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요단 물을 너희 앞에서 마르게 하사 너희를 건너게 하신 것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 앞에 홍해를 말리시고 우리를 건너게 하심과 같았나니 [24] 이는 땅의 모든 백성에게 여호와의 손이 강하신 것을 알게 하며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항상 경외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라” 이 열두 돌은 하나님이 그들을 인도하셨음을 기억하기 위한 돌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볼 때마다 더욱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기 위한 목적으로 그 돌을 세웠던 것이다.
길갈의 유력한 추정지인 여리고 근처 히샴 궁전터
길갈은 또한 이스라엘 모든 남자들이 할례 받은 곳이다. 할례는 자신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표시를 몸에 새기는 것이다. 그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오면서 하나님은 이곳에서도 우리의 왕이시며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임을 몸과 마음에 새긴 것이다. 수 5:9,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오늘 애굽의 수치를 너희에게서 떠나가게 하였다 하셨으므로 그 곳 이름을 오늘까지 길갈이라 하느니라” 애굽의 수치가 굴러가면서 이제 이스라엘은 하나님나라의 백성으로 새롭게 시작한다. 새로운 땅에 들어가면서 그들은 많은 두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길갈에서 하나님이 자신들의 왕임을 선포했기에 두려움없는 백성으로 선 것이다. 길갈은 그들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정리된 곳이다. 그곳이 바로 길갈이다. 사무엘은 비록 백성들의 요구로 인간왕을 세우지만, 그들이 하나님 앞에 다짐했던 언약들을 상기시키기 위해 이 길갈에서 즉위식을 하자고 제안했던 것이다. 이스라엘의 왕은 세상 왕과는 달리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어야 함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사울은 왕이 되고 2년 후 바로 이 길갈에서 왕으로써 실패한다. 세상 왕과는 달리 하나님을 경외하며 철저히 순종해야한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자기 맘대로 번제를 드렸기 때문이다. 그런 그에게 사무엘이 말한다. 삼상 13:13-14,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도다 왕이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에게 내리신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리하였더라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위에 왕의 나라를 영원히 세우셨을 것이거늘 [14] 지금은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령하신 바를 왕이 지키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여 여호와께서 그를 그의 백성의 지도자로 삼으셨느니라”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가, 아닌가, 그것이 왕을 평가하는 하나님의 기준이었다.
왕의 실패를 지켜보는 것은 백성된 입장에서 참 씁쓸한 경험이다. 하나님께서는 왕의 제도의 한계를 이미 성경에서 설명해주셨다. 삼상 8:10-18, “사무엘이 왕을 요구하는 백성에게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말하여 [11] 이르되 너희를 다스릴 왕의 제도는 이러하니라 그가 너희 아들들을 데려다가 그의 병거와 말을 어거하게 하리니 그들이 그 병거 앞에서 달릴 것이며 … [15] 그가 또 너희의 곡식과 포도원 소산의 십일조를 거두어 자기의 관리와 신하에게 줄 것이며 [16] 그가 또 너희의 노비와 가장 아름다운 소년과 나귀들을 끌어다가 자기 일을 시킬 것이며 [17] 너희의 양 떼의 십분의 일을 거두어 가리니 너희가 그의 종이 될 것이라 [18] 그 날에 너희는 너희가 택한 왕으로 말미암아 부르짖되 그 날에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응답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니”
히샴 궁전(Hisham Palace), 이 곳에도 움마야드 왕조의 어느 왕이 살았을 것이다.
인간왕에 대한 한계는 영원한 왕에 대한 기대를 갖게 한다. 세상만사를 바로 잡을 절대적인 왕, 유대민족이 기다려온 메시아가 바로 그런 왕이었다. 그리스도는 기름부음을 받은 자, 메시아라는 뜻이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따르며 그 분을 그리스도라고 고백한다. 막 8:29-30,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 [30] 이에 자기의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 경고하시고” 그런데 예수님은 이후에 베드로의 기대를 꺽는 말씀을 하신다. 막 8:31-32,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비로소 그들에게 가르치시되 [32] 드러내 놓고 이 말씀을 하시니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매” 베드로가 왜 항변했을까? 그가 기대했던 왕의 모습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메시아가 고난을 받다니, 악을 정복할 인물이 죽임을 당한다니 말이 되지 않았다. 유대인 베드로는 어려서부터 메시아가 오면 모든 악을 끝내고 보좌에 오를 것이란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던 것이다. 베드로는 자신이 고난받을 것이라고 말하는 예수님을 향해 강력히 항의한다. 베드로의 인생설계에 고난은 포함되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예수님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위해 화를 낸 것이다.
성경은 예수님은 인류 위에 군림하기 위해 오신 왕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 죽으러 오신 왕임을 보여준다. 그분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나라의 백성이 된다. 나를 위해 전부를 주신 왕이 있다면, 나를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주신 왕이 있다면 우리는 그 왕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모든 것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살아있는 것이 은혜이기에 그 왕께 사랑과 헌신으로 복종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왕을 위해 고난까지도 기꺼이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 성경은 그 왕이 우리를 위해 다시 사셨다고 말한다. 성경은 그 왕이 만왕의 왕이라고 말한다. 계 19:16, “그 옷과 그 다리에 이름을 쓴 것이 있으니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라 하였더라” 성경은 그 왕이 우리를 위해 다시 오신다고 말한다.
히샴 궁전에 있는 모자이크 ‘생명의 나무’
“복종하면 평화롭게 생명의 나무를 뜯어 먹도록 할 것이다. 아니면 나는 사자가 될 것이다.”
나무에 달린 15개의 과일은 술탄 Abes al-Malik의 통치 알래 있던 15개 나라를 상징한다.
왕을 왕으로 알아볼 때,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그 왕의 백성이 된다. 길갈은 우리 믿음의 선조들이 하나님이 우리의 왕이심을 선포하며 돌을 세웠던 곳이다. 길갈은 또한 하나님을 반역하여 왕을 구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 요구를 들어주시면서 다시금 하나님나라의 백성으로 새롭게 하신 곳이다. 삼상 12:22절은 말한다. “여호와께서는 너희를 자기 백성으로 삼으신 것을 기뻐하셨으므로 여호와께서는 그의 크신 이름을 위해서라도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실 것이요”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수준과 상관없이 우리를 당신의 백성 삼으신 것을 기뻐하신다.
지금 여러분의 왕은 누구인가? 여러분이 구하고 있는 왕은 누구인가? 여러분은 이미 오신 왕을 만나셨는가? 그리고 지금 살아 계신 그 왕을 따르고 있는가? 그리고 장차 영원한 왕으로 오실 그 왕을 기다리고 있는가? 그 왕을 향한 여러분의 고백과 충성이 새로워지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텔아비브 욥바교회 샤밧설교 2014년 11월 1일